[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돌아보면
보이는건 쓸쓸한 거리 불어오는 바람뿐인데
바람결에 휘날리는 머리카락 쓸어올리며
가던걸음 멈추어서서 또 뒤를 돌아다보네
어두운밤 함께하던 젊은소리가 허공에 흩어져가고
아침이 올때까지 노래하자던 내친구 어디로갔나
머물다 간 순간들 남겨진 너의 그 목소리
오월의햇살 가득한날 우리마음 따스하리
가수 이선희는 '오월의 햇살' 노래를 부른다. 이 노래는 이선희의 5집 앨범 '나의 거리 (1989)'에 수록되어 있는 노래로 작사와 작곡 모두 윤항기가 맡았다. 1980년 광주의 아픔을 표현한 곡으로 알려져 있으며, 5.18민주화운동으로 희생된 청춘들을 위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래는 전주가 브라스밴드로 시작하여 장엄한 피아노로 이어지고, 다시 부드러운 기타로 연결되면서 청춘의 넋을 달래주는 진혼곡으로도 평가되는 노래다.
이 이선희의 노래와 같은 이름의 연극 '오월의 햇살(극단 돋을양지, 대표 이기영)'이 서울 혜화동 미마지아트센터 눈빛극장에서 지난 12월 18(수)부터 12월 29(일)까지 공연되고 있다. 지난 23일 눈빛극장에서 만난 '오월의 햇살'은 내게 그동안 생각지도 않던 물음을 던져주었다. “정의를 위한 살인은 정당한가?, 정의 실현을 위한 자살은 옳은 선택인가?, 정의 실현을 위한 무고한 희생은 허용할 수 있는가?”라고 말이다.
연극을 보는 내내 출연진은 관객에게 계속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무대가 열리자, 이선희의 '오월의 햇살'이 배경음악으로 들리다가 갑자기 구타당하는 소리가 들린다. 조명이 들어오자, 무대에는 한 청년이 몽둥이로 맞으면서 문초를 받는 장면이 보인다. 이후 출연자들 사이에 끊임없이 오가는 “무엇이 정의인가?”라는 질문은 관객들의 뇌리에 깊숙이 자리 잡으면서 우리나라에 12월 초부터 벌어진 ‘계엄령’과 ‘탄핵’과도 연결시키고 있었다.
정상훈 연출은 “폭력, 폭정, 독재로 정의가 무너진 시대. 정의실현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삶은 투쟁, 혁명으로 이어지고 결국 생명을 위협하는 또 하나의 과격한 유혈사태를 일으킨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자신의 생명을 내놓는 살인은 정당할 수 있는가? 정의실현을 위해 파생되는 희생은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삶은 무엇인가?”를 이 사회에 묻고 있다.
소극장이지만, 극장은 관객들로 만원이다. 그뿐만 아니라 빠른 장면 전환이 없는 연극인데도 관객들은 연극이 끝날 때까지 자세를 흐트러지지 않는다. 서서히 서서히 빠져들어 간 것이다.
약수동에서 왔다는 강성희(36) 씨는 “나는 오월 광주를 체험하지 못한 세대다. 그런데 이 연극을 보면서 정상훈 연출이 말한 정의실현을 위해 희생은 어디까지 허용되는가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또 요즘 계엄령 사태를 맞닥뜨리면서 아직 오월의 햇살 곧 봄이 온 것이 아니기에 끊임없이 각성하는 눈을 가져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극 ‘오월의 햇살’은 이 시대에 우리가 꼭 보아야 할 것이란 생각이다.”
무대에 오른 출연진은 김은현, 김형범, 김형균, 안두호, 이진주, 강보윤, 오세철 등이며, 제작진에는 총괄프로듀서 이기영, 조연출 이지윤, 무대미술 조화성ㆍ박지민, 조명디자이너 김광훈, 사진ㆍ그래픽 박주혜, 진행 이대규ㆍ이지원이 함께 한다.
공연시각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저녁 7시 30분, 토요일ㆍ일요일ㆍ공휴일은 낮 3시다. 입장료는 전석 50,000원이며, 예매는 인터파크 티켓(https://tickets.interpark.com/goods/24017599)에서 할 수 있다. 공연에 관한 문의는 전화(02-6377-9009)로 하면 된다.
오늘의 계엄과 탄핵, ‘오월의 햇살’에 오버랩될 것 극단 <돋을양지> 이기영 대표 대담
- 극단 <돋을양지>를 창단한 까닭은 무언인가?
“연극계에 대한 ‘채무감’ 때문이다. 나는 연극으로 시작한 사람인데 연극이 나를 빛나게 해줬다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연극계에 빚진 듯한 마음이 늘 있었다. 날 낳아준 부모에게 효도해야 할 것 느낌이랄까.
세계적인 반열에 오른 K-드라마나 K-영화의 산실은 대학로다. 그런데 대학로는 정작 무관심 속에서 젊은 연극인의 열정으로만 버티고 있다는 생각이다. 고군분투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 싶고, 이런 문화예술인들의 노력과 열정을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어서 <돋을양지>을 세워 활동하고 있다.”
- ‘오월의 햇살’과 ‘광주’와 관련이 있을까?
“당연히 있다. 알베르 카뮈의 작품을 우리나라 현실로 바꿔 각색한 까닭도 전두환과 노태우의 만행을 후세들에게 잊지 않고 기억하게 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포함돼 있다. 또 그때 그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아서 현재의 계엄ㆍ탄핵 상황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깨어 있어야만 오월 광주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 ‘오월의 햇살’은 빠른 장면의 전환 없이도 관객을 끌어들이는 매력을 보이고 있는데 그 까닭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알베르 카뮈 원작이 가지고 있는 힘일 것이다. 거기에 더하여 모두가 공감하는 우리의 이야기가 더해져 긴장감이 커진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80년 광주는 햇살이 따뜻하게 내리쬐었지만, 봄이 아니었다. 그때 광주 사람들의 피가 우리나라를 민주화로 이끌었지만, 그것이 완결로 맺지 못했기에 오늘 또다시 계엄과 탄핵이라는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오월의 햇살’이 현실에 오버랩되는 것이 아닐까?”
- 평소 사회문제에 목소리를 종종 낸다고 들었다. 연극 곧 예술과 사회와는 어떤 관계이길래 그렇게 할까?
“예술은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현실문제에 예술인이 어떤 형태와 형식으로든지 의견을 표현하는 게 당연한 일이라 믿고, 작은 목소리라도 힘을 보태겠다는 마음으로 행동하고 있다.”
- 최근 계엄과 관련해서 젊은 여성이 시위에 적극 참석하고 있는 것은 물론 시위 현장이 마치 잔치마당 같은 현상을 보이고, 더불어 사는 바람직한 모습도 보인다. 또 개화기 사람들의 만국공동회의 장작불이 촛불을 거쳐 요즘의 응원봉으로 바뀌었다. 이에 관해 한마디 한다면?
“우선, 밝게 웃고 항상 미래에 대한 꿈만 꾸기에도 시간이 부족할 젊은이들에게 이런 세상이 오도록 한 게 나인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다. 여의도에서 탄핵 촉구 집회 때 응원봉을 들고나온 어려 보이는 소녀들을 보면서 정말 큰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그날 꽤 추운 날씨였는데도 응원봉을 흔들면서 마치 축제처럼 시위하는 모습에 대한민국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는 것 같아 든든하고 감사했다. 역사에서 배우는 것처럼 항상 새 시대가 옳음을 느끼는 요즘이다.
- 꼭 한 마디 보태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희 연극 ‘오월의 햇살’을 많은 관객이 찾아주시고 극찬해 주셔서 애써 만든 연극의 보람에 하루하루가 행복한 요즘이다.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이번에 공연을 보지 못하신 분을 위해 이번 주에 공연을 마치고 곧바로 재공연할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그때 많이들 찾아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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