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섣달그믐 밤
- 강순예
“오늘밤에 온단다, 신 없는 아이.
고샅마다 집집마다 들어가
이 신발 저 신발 죄다 신어보곤
맞갖은 걸 골라, 하무뭇 해낙낙
홀딱 신고 가버리는…….”
깊은 밤 문 앞에 살며시
내다 놓았다.
“작아서 안 신는 신발이야. 맘에 들면 가져가렴.”
사흘 뒤면 섣달그믐날이 된다. 또 다른 말로는 ‘까치설날’인 섣달그믐날에 우리 겨레에겐 많은 세시풍속이 있었다. 특히 섣달그믐은 한 해를 정리하고 설을 준비하는 날이다. 그래서 집안청소와 목욕을 하고 설빔도 준비하며, 한 해의 마지막 날이므로 그해의 모든 빚을 청산한다. 곧 빚을 갚고, 또 빚을 받으러 다니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해 빌린 돈이나 빌려온 연장과 도구들을 꼭 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그 밖에 남은 밥을 모두 먹고, 바느질 등 그해에 하던 일을 이날 끝내야만 했다. 묵은해의 모든 일을 깨끗이 정리하고, 경건하게 새해를 맞이하기 위하여 생겨난 풍습이다.
또 재미난 것은 《동국세시기》에 나온 ‘양괭이귀신(야광귀, 夜光鬼) 물리치기’라는 것도 있었다. 섣달그믐 양괭이 귀신은 집에 와서 아이들의 신발을 모두 신어보고 발에 맞는 것을 신고 가는데 그러면 그 아이에게 불길한 일이 생긴다고 믿어, 신을 감추거나 뒤집어 놓는다. 그런 다음 체(가루를 곱게 치거나 액체를 거르는 데 쓰는 기구)를 벽이나 장대에 걸어놓고 일찍 잠을 잔다. 이때 양괭이귀신은 구멍이 많이 뚫린 이상한 모양을 한 물건을 보고 신기해서 구멍을 하나둘 세다가 새벽이 되면 물러간다고 믿었다.
그런데 여기 강순예 시인은 <섣달그믐 밤>이란 시에서 “이렇게 문 앞에 체를 걸어두면 수 세기 좋아하는 그 아이, 요 촘촘한 구멍을 세다가, 세다가, 세다…, 동살이 잡힐 무렵 ‘아이코, 내 신발!’ 하며 돌아간단다.” 할머니 얘기를 듣던 손주는 “밤 오면 또다시 안 오나요?”라고 묻는데 할머니가 “안 오긴, 이듬해에 또 오지!”라고 대답했다. 손주는 “작아서 안 신는 신발이야. 맘에 들면 가져가렴.” 하면서 깊은 밤 문 앞에 살며시 신발을 내다 놓았다.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김영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