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촌이 살아야 국운이 끊어지지 않는다

  • 등록 2025.01.28 10:5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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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에서 온 편지 (3)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1945년 해방 직후 아시아 최빈국이었던 우리나라는 오늘날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자 선진국(2023년 기준 1인당 국민소득 36,000달러)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모든 국민이 경제 성장의 혜택을 골고루 받지는 못하고 빈부격차와 도농격차로 인한 불평등이 심해지고 있다.

 

우리나라 인구 중 시골(농촌, 어촌, 산촌 포함)에 사는 사람은 2022년 기준 961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8.6%를 차지한다. 이 가운데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은 216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4.2%에 불과하다. 농민 1인당 경작면적은 0.69ha(약 2,000평)에 불과하며 가구당 농가소득은 연 5,000만 원 정도일 뿐이다. 농업을 생계로 하는 대부분 농민은 아직도 상대적으로 가난하다.

 

내 주변에도 귀촌한 사람들은 안정된 연금을 받거나 도시에 있는 건물의 임대소득이 있는 사람들로서 비교적 풍족하게 살고 있다. 각종 취미 생활을 즐기며, 나라 안팎 여행을 즐기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토박이 농민 가운데는 농사일을 하면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농사일이라는 것이 최근에 많이 기계화되었다고 해도 단계 단계에서 사람 손이 많이 간다. 우리 집 오른쪽에 사는 최씨 아저씨를 보면, 하루 종일 밭에 나가 일을 한다. 우리 집 왼쪽에 사는 노인회장을 보면 나이가 80을 넘겼는데도 여전히 밭일한다. 농토가 많은 대농이라면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여 농사를 짓기도 하지만, 소농의 경우 아직도 대부분의 농사일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평창, 용평, 장평, 후평, 평촌 등등 평창군은 유난히 평(‘平’ 또는 ‘坪’의 훈은 ‘평평할 평’임) 자가 들어가는 지명이 많다. 평창군은 산세가 험하고 고도가 높지만, 구석구석에 벼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 숨겨져 있다. 우리 동네 토박이 노인에게 들은 말에 의하면, 예전에는 인접한 영월군이나 정선군에 사는 처녀들이 평창으로 시집간다고 하면 “쌀밥 먹을 수 있게 되었다”라고 주변에서 부러워했다고 한다.

 

전국적으로 도시가 팽창하고 주택단지가 늘어나 논의 면적이 줄고 있다. 평창군의 논 면적 역시 점점 줄어들고 있다. 평창군에는 인구가 늘고 주택이 늘어서 논 면적이 감소하는 것이 아니고 벼를 재배하던 땅에 밭작물을 재배하기 때문에 논이 줄어들고 있다. 밭작물의 수입이 더 좋기 때문이다. 2021년 평창군 통계연보에 의하면 식량작물의 재배면적은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가 쌀은 자급한다고 해도, 나머지 곡류와 가축 사료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서 2023년 현재 곡물 자급율은 22%에 불과하다. 우리가 생존하는 데 필요한 곡물 수요의 78%를 나라 밖에서 수입하고 있는데, 이러한 곡물 자급율은 OECD국가 가운데서 가장 낮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 위기 또는 전쟁 등으로 나라 밖에서 곡물을 수입하지 못하면, 우리나라는 생존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농촌을 살리고 농토를 보전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지 않는듯해서 매우 유감이다.

 

면(面) 단위에 하나밖에 없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평창군의 학생들은 모두 수도권에 있는 대학교로 진학하기를 원한다. 청년들은 농업에 농사짓기를 원하지 않는다. 농민 부모도 자녀들이 농업을 이어받기를 원하지 않고 있다. 청년들은 모두 수도권에서 교육받고 수도권에서 일자리를 얻기를 원한다. 이러한 추세는 인위적으로 막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이처럼 위기에 처한 농촌 현실에 주목한 박진도 교수(경제학 전공)는 2018년에 국민총행복전환포럼 이사장에 취임한 뒤 농촌을 살리는 길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박진도 교수는 2021년 12월 6일 <국민총행복 10대 정책 과제 심포지움> 기조연설에서 “정부는 국민 행복을 위해 존재한다”라고 말하면서 오랫동안 국가정책의 근간이었던 <경제성장=행복성장> 이라는 단편적인 생각을 바꾸어야 할 시기가 왔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에 동조하는 도올 김용옥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우리나라 농산어촌의 문제가 과연 무엇인지, 그 현황에 대해 우리 국민이 너무 모른다는 데 가장 큰 문제가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서로 인신공격이나 정책의 생산적 논의가 결여된 무근지설로부터 보다 본질적 문제로 관심의 방향을 틀어야 합니다. 단지 농어촌의 문제가 선거표수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천박한 상념 때문에 정치판에서 외면시 된다면 이 나라의 희망은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다함께 농어촌을 살리는 행진을 계속합시다. 농어촌이 살아야 국운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두 사람의 주장을 풀이하면, 돈은 행복에 필요하지만, 돈의 양과 비례하여 행복이 커지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국가 정책의 목표를 경제성장이 아닌 행복성장으로 바꾸고 농촌을 살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일종의 계몽운동으로서 “국민총행복과 농산어촌 개벽 대행진”을 제창하였다.

 

개벽대행진은 2021년 10월 26일 전남 해남군 땅끝마을에서 시작되었다. 개벽대행진 추진위원회는 전남의 해남군과 곡성군, 전북의 김제시ㆍ완주군ㆍ익산시, 충북의 옥천군ㆍ괴산군, 경기의 수원시ㆍ파주시, 경북의 영천시ㆍ안동시, 경남의 창원시ㆍ진주시, 충남의 아산시ㆍ공주시ㆍ홍성군, 강원의 평창군ㆍ춘천시 등 전국의 8개도 18개 시군을 순회하면서 행사를 진행하였다.

 

개벽대행진 추진위원회는 두 달 동안 전국 민초들의 지혜와 열망을 모은 뒤 2022년 1월에 전국대행진 행사를 서울청계광장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진행하였다.

 

 

필자는 2021년 12월 14일 평창읍에서 열린 순회 행사에 참여하였다. 2022년 1월 19일 서울에서 열린 전국대행진 행사에도 참석하였다.


 

 

전국대회에서 우리는 농정대전환을 위한 3대 강령과 6대 방략을 제안하였다.

 

3대 강령

1. 기후위기 대응 농어촌으로!

2. 먹을거리 위기 대응 농어촌으로!

3. 지역위기 대응 농어촌으로!

 

6대 방략

1. 공익적 직접지불 확대

2. 먹을거리 기본법 제정

3, 지속가능한 농어업 실현

4. 농어촌 주민수당 지급

5. 농어촌 주민 행복권 보장

6. 농어촌 주민 자치 실현

 

그러나 아쉽게도 “농촌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라는 이러한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22년 5월 대선에서 어느 후보도 농촌을 살리겠다는 정책을 공약으로 채택하지 않았다. 전 국민의 4.2%를 차지하는 농민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대선 후보는 나타나지 않았다. 안타까운 농촌 현실이다.

 

(계속)

 

 

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muusim222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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