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시골집에 살면서 텃밭을 가꾸고 싶다는 것은 도시에 사는 많은 사람들의 꿈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텃밭이란 “집의 울타리 안에 있거나 집 가까이 있는 밭”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나는 40대 후반 4년 동안 (1997~2000) 경기도 화성군 봉담읍 수기리에 있는 시골집에서 4년 동안 살아본 경험이 있다. 그때 텃밭을 가꾸어본 경험은 15년 뒤인 2015년에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면온리에 귀촌한 뒤에 텃밭을 가꾸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텃밭을 가꾸려는 사람들이 명심해야 할 가장 중요한 원칙은 텃밭은 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 번이라도 텃밭에 채소를 길러 본 사람은 작물의 생산성에 놀랄 것이다. 고추 한 그루에서 고추가 계속해서 얼마나 열리는지는 고추를 길러 본 사람만이 안다. 한 가족 부부가 먹을 목적이라면 고추는 다섯 그루만 심어도 충분하다. 가지 역시 다섯 그루만 심어도 충분하다. 가장 많이 심는 채소인 상추는 10포기만 심어도 충분하다. 이 세 가지만 심는다면 땅은 3평이면 충분할 것이다. 김치 재료로서 배추는 필요하기는 한데, 벌레가 잘 생겨서 농약을 치지 않으면 제대로 수확하기가 어렵다. 텃밭 농사에서 배추는 권장할 만한 작목이 아니다.
작물의 생산성을 잘 아는 나는 텃밭을 10평 정도만 가꾸는 것으로 만족한다. 귀촌하여 살면서 텃밭을 100평 넘게 만드는 사람에게 내가 꼭 해주는 조언이 있다. “당신은 이제 나이도 60이 넘었는데, 텃밭 가꾼다고 여름 내내 중노동을 할 생각이신가요?” 내가 그렇게 조언해도 나처럼 10평 텃밭에 만족하는 사람을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슈마허의 책 제목처럼, 나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들 대부분은 큰 것을 추구한다.
통 크게 텃밭을 300평 넘게 가진 사람은 농부라고 말할 수 있다. 농부를 법률 용어로 농업인이라고 하는데, 농업인이 되려면 첫째 “1000m2(300평) 이상의 농지를 경작”하고, 둘째 “농업 경영을 통한 농산물 판매액이 연간 120만 원 이상”이고, 셋째 “1년 중 90일 이상 농사에 종사”해야 한다. 세 가지 조건 중에서 첫째가 가장 중요하고 둘째와 셋째는 조사하기가 불가능하므로 유명무실하다고 생각된다.
농촌에 살고 있지 않은 도시인도 주민등록이 시골로 되어 있고 농지를 300평 이상 소유하면 농업인이 될 수 있다. 농업인으로 등록이 되면 정부에서 제공하는 여러 가지 혜택이 뒤따른다. 제일 먼저 농지의 취득·등록세를 50% 감면받는다. 둘째 건강 보험료를 30% 적게 낸다. 셋째 비료와 농약을 일반인보다 싼 값에 살 수 있고, 농기계를 살 때 보조금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귀촌하려는 사람이 농업인이 받는 혜택 때문에 300평 이상의 농지를 소유하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라고 볼 수는 없다. 300평 이상의 농지 구입비가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명 푸성귀라고도 부르는 채소는 3종류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열매를 먹는 ‘열매채소’로서 고추, 토마토, 콩, 호박, 가지 등이다. 둘째는 잎을 먹는 ‘잎채소’로서 배추, 상추, 시금치, 근대, 머위, 곰취 등이다. 셋째는 뿌리를 먹는 ‘뿌리채소’로서 무, 당근, 비트, 감자, 땅콩 등이다. 이들 작물을 모두 한곳에서 심을 수는 없다. 기호(嗜好)에 따라 그리고 토질과 기후에 따라 적당한 작물을 심는 것이 좋다. 귀촌한 처음 해에는 모든 것이 생소하므로 작물의 선택은 마을에서 오래 살아온 원주민의 조언을 들어서 결정할 일이다.
내가 사는 집의 해발 고도가 550m나 되기 때문에 아직도 봄이 늦게 오고 가을이 빨리 온다. 5월 초순에도 서리가 내리기도 한다. 추위에 가장 강한 채소는 대파다. 대파는 겨울에도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 그다음으로 추위에 강한 채소는 상추다. 상추는 농약을 치지 않아도 잘 자라기 때문에 가장 기르기가 쉬운 채소이다.
가장 추위에 약한 채소는 고추가 아닐까 한다. 늦가을에 서리가 내리면 다음 날 고추잎이 모두 쳐져 있다. 그러므로 고추는 추위가 오기 전에 제일 먼저 수확해야 한다. 고추는 재배하기 어려운 푸성귀다. 고추를 재배할 때 탄저병 때문에 수확을 망치는 경우가 많다. 탄저병은 포자가 비가 많이 올 때에 빗물에 의해 전파되기도 하고 바람으로도 전파된다고 한다. 탄저병이 발생한 고추는 즉시 제거하여 다른 고추로 퍼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나는 워낙 적게 고추를 심기 때문인지 아직 탄저병 때문에 고추 수확을 망친 적이 없다.
나는 명색이 환경주의자이고 생태계에 관한 책을 펴내기도 했기 때문에 우리 집 텃밭에 농약을 뿌려본 적은 아직 없다. 해마다 농협에서 파는 퇴비는 사다 뿌리지만 농약은 쓰지 않았다. 그러나 농사에 의존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농업인은 농약을 안 쓰기가 어렵다. 유기농을 하려면 훨씬 노동력을 많이 들여야 하고 생산량을 상당 부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옆집에 사는 노인회장은 토박이 농부인데 제초제를 뿌려서 잡초를 없앤다. 나는 그분에게 제초제는 생태계에 해로우므로 쓰지 말라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다. 농사는 그분에게는 생계가 직결된 매우 중요한 소득원이기 때문이다.
텃밭 가꾸기는 잡초와의 전쟁이라고 부를 수 있다. 잡초는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계속해서 나타난다. 우리집 텃밭은 아주 작아서 손으로 잡초를 제거하는 일이 어렵지 않다. 잡초는 뿌리가 내리기 전에 없애야 한다. 싹이 나고 키가 작을 때에는 손으로 쉽게 잡초를 제거할 수 있다. 잡초와의 전쟁에서 이기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내 경험으로 볼 때에 하루에 10분씩 날마다 잡초를 뽑으면 잡초를 이겨낼 수 있다.
여행을 가느라고 또는 게으름을 피워 일주일만 텃밭을 돌보지 않으면, 텃밭은 잡초밭으로 변하는 것을 감수해야만 한다. 온갖 종류의 풀이 무성할 것이다. 뿌리가 내린 잡초를 뽑으려면 맨손으로는 안 된다. 호미 같은 농기구를 사용해야 한다. 이미 키가 커진 잡초를 뽑으려면 힘이 든다.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서 잡초를 뽑다 보면 무릎이 아프고 허리가 아프다. 잡초가 원수처럼 보인다. 그러나 잡초를 미워하기만 할 일은 아니다.
생태계 전체를 본다면 잡초는 토양 유실을 막아주고 생태계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좋은 일도 하고 있다. 최근 잡초에서 화장품을 개발하는 연구가 성과를 거두고 있다. 경기도 산림환경연구소는 2021년에 호서대 이진영 교수팀과 함께 ‘긴병꽃풀’이라는 잡초에서 항산화, 미백, 피부 탄력 및 주름 개선 효과가 우수한 기능성 화장품을 개발하는 데 성공하였다.
잡초에서 의약품을 개발하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는데, 대표적인 잡초인 개망초의 항산화 효과가 이미 검증되었다. 머지않아 농부의 골칫거리이었던 잡초가 새로운 식물자원으로서 농가 소득 창출의 기회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평창군 미탄면에 있는 청옥산의 생태농장 앞에는 2019년 8월에 엉뚱하게도 잡초공적비가 세워졌다. 아마도 세계 처음일 것이다. 잡초공적비의 비문은 다음과 같다.
태초에 이 땅에 주인으로 태어나 잡초라는 이름으로 짓밟히고, 뽑혀져도 그 질긴 생명력으로 생채기 난 흙을 품고 보듬어 생명에 터전을 치유하는 위대함을 기리고자 이 비를 세우다.
잡초를 위대하다고 표현한 것은 조금 과장된 것 같다. 농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농업인에게 잡초는 농약을 사용하여 반드시 없애야 할 식물이다. 잡초를 죽이지 않으면 농부의 수입이 줄어든다. 귀촌한 사람에게 잡초는 귀찮기는 해도 부지런하기만 하면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는 식물이다.
농약을 친다고 해서 수만 년 동안 자연환경에 잘 적응해 온 잡초를 한 종류라도 멸종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농약을 쳐도 잡초는 다음 해에 또 나타난다. 잡초와의 전쟁은 해마다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