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역 삼국지, 태백산맥, 토지 천만 부 넘게 팔려

  • 등록 2025.04.06 12:3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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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뭐꼬의 장편소설 <꿈속에서 미녀와> 8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그동안 K 교수는 전공과목 교재를 2권 써 본 경험이 있다. 전공 교과서의 경우 워낙 시장이 좁다 보니 한 해에 1,000부만 팔려도 베스트셀러 대열에 낄 수 있다. 계산해 보시라. 한 학과의 정원이 40명이라면 25개 대학교에서 교재로 선택해야 1,000부가 팔린다.

 

공대교수로서 전공 서적 아닌 수필집을 내는 일은 흔치 않다. 수필집의 경우 10만 부는 팔려야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인세는 대개 정가의 10%이다. 책 가격이 10,000원이면, 한 권의 인세가 1,000원이고 10만 부가 팔리면 1억 원의 인세가 들어온다는 계산이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1,000원씩이 쌓여도 10만 부면 큰돈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은 워낙 책을 안 읽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10만 부 팔리기가 어렵다. 책 대부분은 초판 2,000부를 넘기지 못한다.

 

출판 역사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베스트셀러는 1954년에 발표된 정비석 작가의 소설 《자유부인》이다. 이 작품은 대학교수 부인의 불륜을 주제로 했는데,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내용이었으며 사회적인 반향이 엄청나게 컸다. 《자유부인》은 10만 부가 팔려서 ‘우리나라 첫 베스트셀러’로 기록되었다.

 

1981년에 김홍신 작가가 쓴 10권으로 된 장편소설 《인간시장》은 처음으로 100만 부가 팔린 밀리언셀러다. 《인간시장》은 인신매매와 창녀촌을 비롯한 사회적 모순을 배경으로 하며, 주인공 장총찬이 정의를 위해 악과 싸우는 이야기를 다루었다. 이 소설은 정의가 무너진 시대적 현실(책이 출판된 1981년은 전두환 통치 시절임)을 비판하는 내용으로서 당시의 독자들에게 강렬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세월이 가도 꾸준히 팔리는 책을 스테디셀러라고 한다. 스테디셀러로서 유명한 법정 스님의 《무소유》는 1976년에 초판이 문고판으로 나온 뒤에 소리 없이 꾸준히 팔렸다. 그런데 2011년에 법정 스님이 돌아가시면서 저서를 더 이상 출판하지 말라고 유언을 남기셨다. 애독자에게는 매우 아쉬운 유언이다.

 

법정스님을 좋아하는 필자는 1991년에 출판된 문고판 《무소유》 책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데, 당시 정가는 1,000원이었다. (필자가 검색해 보니 문고판 《무소유》는 현재는 중고서점에서 60,000원에 팔리고 있다. 특히 1976년 초판은 100만 원 이상으로 거래된 사례가 있다고 한다.)

 

 

 

《무소유》는 1976년 4월 초판이 나온 이후 44년이 지난 2010년 4월까지 3판 87쇄를 발행하였다. 《무소유》는 모두 330만 부가 팔린 것으로 추산하는데, 불교계의 명저를 넘어서서 국민 필독 도서로 자리 잡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지금까지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이문열 작가의 열 권짜리 《평역 삼국지》로서 1988년 펴낸 이래 모두 2,000만 권이 팔렸다고 한다. 조정래 작가의 작품도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대하소설 3부작 《태백산맥》(전10권 1986), 《아리랑》(전12권 1995), 《한강》(전10권 2001)은 누적판매 부수가 1,300만 권에 달한다. 이 가운데서도 《태백산맥》은 용공 시비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3부작 가운데서는 가장 많은 860만 부가 팔렸다고 한다. 박경리 작가의 대하소설 《토지》 (전16권 1969~1994)는 집필과 연재에 모두 25년이 걸렸는데, 이 작품 역시 1,000만 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에 속한다.

 

수필집을 내고서 K 교수는 나름대로 광고에 신경을 많이 썼다. 친구 중에 소설가가 있어서 책 뒤편에 넣을 서평을 부탁했다. 동아일보 기자로 근무하는 친구를 통하여 동아일보에 중간 크기의 서평을 돈 들이지 않고 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책이 팔리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10만 부가 팔리면 1억 원 인세가 들어올 것이라는 즐거운 상상이 사그라지는 데는 몇 주가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K 교수는 시인인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왜 내 책은 팔리지 않느냐고. 그랬더니 출판계를 잘 아는 친구의 대답은 “자네 책은 내용이 있어서 안 팔린다. 요즘 책은 내용이 없어야 잘 팔린다”라는 다소 선문답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설명을 들어보니, 현대인은 머리 쓰는 일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책도 진지하게 생각하게 하는 그런 책은 골치 아파서 안 읽는다는 것이다. 전철을 타고 가면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 깊은 뜻은 없어도 그저 만화 읽듯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을 현대인은 선호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K 교수의 책은 뭔가 인생과 세상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무거운 내용이 들어있기 때문에 ‘좋은 책’은 될지언정 ‘팔리는 책’은 안 될 거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만화가 유행일 것으로 예측하였다. 이원복 교수의 《만화로 읽는 세계여행》 같은 책이 미래의 추세를 반영하는 대표적인 작품이라는 것이다.

 

(계속)

 

 

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muusim222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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