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ㅁ 교수는 K 교수에게 《월간 에세이》라는 잡지를 소개하였다. ㅁ 교수는 그 잡지에 ‘과학 에세이’라는 이름으로 연재하고 있는데, ‘환경 에세이’라는 이름으로 한번 연재해 볼 생각은 없겠느냐고 물어본다. 자기가 아는 편집자를 소개해 주겠단다. K 교수는 “생각해 보겠다”라고 미지근한 답변을 했다.
ㅁ 교수의 말에 의하면 월간 에세이에 쓰는 글은 길이를 두 쪽 이내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 독자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참을성이 없다는 점이다. 다섯 쪽을 넘어가면 벌써 지루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글은 짤막해야 잘 읽히고, 그래서 길이를 두 쪽 이내로 제한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추세가 계속된다면 앞으로 장편소설을 써서 인세 받기는 아예 기대할 수 없을 것 같다.
스파게티는 그런대로 맛이 있었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고 칼국수에 칼이 없다는 말이 있다. 불고기 스파게티에 불고기는 없었지만, 매운맛이 약간 나도록 고추장을 넣은 소스를 쳐서 만들었는데, 라면에 불고기 소스를 넣은 것처럼 그런대로 우리 입맛에 맞았다. 아마도 불고기 소스를 친다고 해서 불고기 스파게티라고 이름을 붙였나 보다. 음식 이름이야 어찌 되었든, 따스한 봄날 오후에 세 사람의 교수들은 숲속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유감스럽게도 두 사람은 여복이 없어 미스 K를 보지 못했지만, 세 사람은 즐겁게 지냈다.
그동안 학교에는 미스 K에 관한 여러 가지 소문이 나돌았다. 이혼녀라는 이야기도 들렸다. 이화여대 미술대를 나왔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그렇다면 나이로 보아서 K 교수와 친한 ㅂ 교수의 부인과 동창생일지도 모른다. ㅂ 교수보다 나이가 3살 아래인 부인이 미대 출신이니까 한번 물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K 교수는 ㅂ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부인의 동창이나 선후배 가운데 K 씨 성을 가진 미스코리아가 있었느냐고 물어보라고 부탁했다. K 교수는 또한 다른 대학 신문방송학과 교수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1978년 미스 코리아에 대해서 당시의 신문에 어떤 기사가 나왔는지 한번 알아보라고 부탁했다.
연애도 그렇지만, 다른 사람과 교제를 시작할 때 상대방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일이 꼭 필요하다. 손자병법에도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뭘 어떻게 해 보겠다는 것보다 K 교수는 일단은 미스 K에 관한 궁금증을 풀고 싶었다. 미스코리아는 실제로는 여러 명을 뽑는다. 미스코리아 진, 선, 미 외에도 수영복 부문, 사진 부문 등 해마다 여러 명의 미스코리아를 뽑는다. 미스 K가 꼭 미스코리아 ‘진’이 아닐지도 모른다. 호기심 많은 K 교수는 미스 K의 정체를 알고 싶었다.
그런데 엉뚱한 곳에서부터 일이 풀려가기 시작했다. K 교수가 구내식당에서 우연히 ㅅ 교수를 만나 식사를 같이하였는데, ㅅ 교수가 얼마 전 모 여성잡지에서 읽은 미스 K에 관한 기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잡지 기사에 의하면, 미스 K는 이화여대 무용학과를 졸업했는데 미스코리아 ‘진’ 당선 뒤에 평범한 사업가와 혼인했다는 것이다. 두 아들은 지금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고, 남편도 미국에 있다고 한다. 미스 K는 이탈리아에 가서 스파게티 요리법을 배워서 한국 처음으로 스파게티 전문점을 압구정동에 내었는데 성업 중이라고 한다. 잡지 기사에서 이혼녀라는 말은 없었다고 했다.
ㅂ 교수의 부인에게서 들은 이야기로는 1년 후배로서 미술과가 아니고 무용과 출신 미스코리아가 있었다고 한다. 미스 K는 부도가 난 패션회사의 회장 부인이었다고 한다. 회사가 부도가 나자, 남편은 미국으로 도피했다는 소문이 있다고 한다. 신문방송학과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1978년 신문에 ‘지성과 미를 겸비한 최초의 미스코리아’라는 제목으로 크게 신문 보도가 났었단다. 그전에는 대개 미스코리아가 세칭 일류대가 아닌 지방대학이나 전문대 출신이 많았는데, 그해 미스코리아는 이화여대 출신이라고 해서 화제가 되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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