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K-민주주의의 원년, 이 특별한 해에 잘 호응하는 책 권태면의 《가지 못한 길》이 나왔다. 이 책 《가지 못한 길》의 마지막 구절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길을 간다. 민족의 역사도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흘러간다.”
이 책을 낸 권태면은 외무고시를 수석으로 합격한 엘리트 외교관이다. 그는 높은 관직에의 욕망보다는 지식인의 고뇌를 품고 살아온 서생 외교관이다. 그동안 그가 썼던 책을 보아서 그렇다. 《밖에서 바라본 한국》은 한국의 사회문화를 내부자와 외부자의 두 시선으로 바라본다. 《우리 역사 속의 외교관》은 신라 이래 우리 역사에서 외교활동을 한 인물들을 탐사한다. 《북한에서 바라본 북한》은 그가 업무상 북한에 살면서 쓴 체험적 관찰기이다. 《구별연습》은 그의 시를 엮은 시집이다. 나는 그의 외교부 동료이자 애독자다. 이번에 나온 《가지 못한 길》은 분단체제 속에서 고뇌하는 한 외교관이 오랜 숙려 끝에 세상에 내놓은 노작(勞作)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소위 외교관으로 35년을 살았다. 그것은 늘 세계지도를 옆에 두고 보면서 나라가 가야 할 방향을 고민해 보는 직업이었다. … 수십년간 남북의 외교관들은 수많은 국제회의와 전 세계 각국에서 서로 비난하고 싸우는 외교를 해 왔다. 한 핏줄인 형제와 같은 남한과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서로 삿대질만 해대는 모습을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바라볼까?”
이런 문제의식과 통일 한국에의 갈망과 모색이 《가지 못한 길》에 짙게 투영되어 있다.

이 책의 주인공 김용중에 대하여 지은이는 손녀 김성희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저의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는 여러분처럼 저도 모르고 자랐습니다. 일제 치하에서 열 여덟 살에 미국으로 망명하러 가서 크게 성공한 사업가로만 알고 자랐지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그분이 일제시대에는 독립운동가로, 분단시대에는 통일운동가로, 독재시대에는 민주화 운동가로 평생을 바친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독재시대에 반정부 인사로 낙인이 찍혀서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유골이라도 38선 근처에 뿌려 달라는 유언과 함께 미국 땅에서 한 많은 생을 마쳤지요. ‘한반도 중립화 통일’은 할아버지의 지론입니다. ‘중립의 길’은 할아버지가 그토록 갈구하던 ‘가지 못한 길’입니다. 그 길이 이제는 너무 멀리 와버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길인지, 그래도 조국의 긴 역사를 생각한다면 이제라도 꼭 가보아야 할 길인지는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김용중은 몽양 여운형의 권유와 주선으로 18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미래를 준비했다. 노동판의 맨손이 거부가 되었고 하바드대학을 다녔다. 1928년 7월 학생 신분으로 보스턴 선데이(BostonSunday)신문에 기고한 글이다.
“일제는 동북아에서 최고의 도둑이 되겠다는 꿈을 필사적으로 펼치고 있다. 조선과 만주에 대해 일본이 펼치고 있는 정책을 보라. 일본은 서방세계에 거짓을 말하면서 조선을 강탈했으며, 평화를 사랑하는 조선인들에게 비수를 들이대어 일본 군국주의자들 앞에 무릎을 꿇게 하였다.”
조국이 해방과 함께 분단되자 김용중은 38선 철폐. 미소 양국 군대의 철수를 줄기차게 주장한다. 《가지 못한 길》은 김용중의 고투어린 자주독립 운동을 세밀화처럼 보여 준다.
“1946년 1월 8일 용중은 크리스챤 사이언스 모니터 신문에 한반도 내 외국군 철수, 중립국 감시 하 남북한 총선거로 통일정부 수립을 주장하는 기고를 한다. 1946년 6월에는 트루만과 스탈린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미소공동위 재개를 촉구하면서, 38선의 철폐와 외국군대의 철수를 주장한다. 미소 양국의 개입과 군대가 핵심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강대국의 간섭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자주독립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용중은 영세중립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김용중은 중립화 통일만이 한국의 길이라는 신념하에 고군분투한다. 이 책의 끝에 수록한 ‘김용중의 삶’에서 중립화통일 관련 주요 활동은 아래와 같다.
1948.12 파리 개최 유엔총회에 옵서버로 참가하여 한국의 중립화 통일방안을 제시하다.
1950.5. 유엔 사무총장에게 다시 한국의 중립화 통일방안을 제시하고, 한반도에서의 전쟁 가능성을 경고하다.
1955.6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에 한반도 중립화 통일방안을 호소하다.
1956.12 미국을 방문한 네루 인도 수상에게 한반도 중립화방안을 제시하다.
1961 장면 총리와 김일성 주석에게 더 구체화한 중립화 통일방안을 제시하면서 통일논의를 촉구하다.
1964 박정희와 김일성에게 공개편지를 보내 중립화 통일방안을 제시하다.
1971 김일성에게 재차 서한을 보내, 이극로를 통해 답을 받다.
1975년 9월 6일 한국의 가을 하늘을 유신독재의 먹구름이 뒤덮고 있던 그때 김용중은 울분과 실의 속에서 숨을 거두며 유언을 남긴다.
“내 죽어서라도 조국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고 싶소. 그러니 내 뼛가루는 화장해서 38선에 뿌려 주시오.”
유언은 지켜지지 못했다. 아니 지킬 수가 없었다. 독재정부가 그의 유골마저 입국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고국 땅에 돌아가지 못한 그의 유골은 수양아들이나 다름없는 재미교포 로광욱이 오랫동안 보관하였다. 독재 정권은 무엇이 그토록 두려웠던 것일까? 국민들이 깨어날까 봐 두려웠던 것일까?
유골이 고국에 돌아온 것은 사후 24년이 지난 1999년 말 김대중 정부 때였다. 한 서린 뼛가루의 절반은 파주 임진각 옆 비무장지대에 뿌려졌고 나머지 절반은 고향 금산의 선산으로 갔다. 이듬해 2000년, 정부가 선생을 독립유공자로 인정하고 5.18을 기해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이에 따라 선산에 묻혀있던 유해는 대전의 국립현충원으로 옮겨져 안장되었다.
묘비엔 김승자 시인의 글이 새겨졌다.
천지가 어둡던 때 조국광복 큰 뜻 세워 횃불 밝히신 님
갈라진 아픈 땅에 깃발 되신 선구자여!
이역의 절규 메아리쳐 산하를 울렸네
가셨어도 우리 끝내 아니 보낸 님이시여
민족 자주 평화통일의 기쁜 함성 지축을 흔들 때
함께 하소서 영원하소서
애국지사의 유골이 돌아오고 절절한 묘미명이 새겨져도 사람들은 좀처럼 보려 하지 않고 기억하지 않는다. 김용중과 그의 중립화 통일론을 아는 이 몇 명이나 될까? 놓쳐버린 길, 가지 못한 길, 언젠가 가야 할 길 ‘영세중립 코리아’를 눈앞에 불러낸 것이 바로 권태면의 이 책 《가지 못한 길》이다.
이 책은 제 사람에 의해 제때 나왔다. 이 책이 빛을 본 2025년(민기원년-民紀元年)이 얼마나 특별한 해인지를 상기해 보고 싶다. 민주 공동체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던 내란 세력과 숨가쁘게 싸운 한국인들이 K-민주주의의 금자탑을 이룩한 해이다. 또한 일제에 외교권을 강탈당한 지 120년, 광복 80돌이자 분단 80돌이다. 겨레의 역사에서 이 해만큼 어둠과 빛이 뒤엉켜 있는 때도 없어 보인다.
분단은 10년도 한없이 길다. 아니 분단 그 자체가 견딜 수 없도록 분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분단의 멍에를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마치 당연한 운명인 것처럼 기꺼이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다. 심지어는 다행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행여 분단선이 허물어질까 봐 걱정하는 사람들마저 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모두가 병들었으나 아무도 아파하지 않는다.
《가지 못한 길》이 잠든 아픔을 깨우고 새로운 길을 일깨우는 경종이 되리라 믿는다. 일독을 권하는 까닭이다.
지은이 권태면은 이 책을 내게 된 동기를 이렇게 토로한다.
“분단국가의 외교관으로 평생을 보내버렸다는 사실에 허탈하던 차에, 우연히 재미 독립운동가인 귀암 김용중 선생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간 선생의 이야기는 교과서나 역사 관련 서적에 거의 소개되지 않아 잘 알려지지 않았다. 선생은 광복 직후부터 분단이 되면 내란이 일어날 것이 뻔하므로 그것을 기필코 막아보려 애를 쓰고, 결국은 전쟁이 터지고 말자 중립화를 통해 분단을 해소하고 통일을 이루기 위해 미국 내에서 평생을 바친 선각자이다.
(…)
역사에서 우리는 어떤 사람들을 존경하고 기려야 하는가? 나라를 위해 무기를 들고 싸운 장군들이나, 공과의 논란이 많은데도 높은 자리에 있던 정치 지도자들만 기억하고 가르쳐야 하는가? 그러한 질문과 문제의식에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
(…)
우리의 역사적 상처인 분단의 과거를 되돌아보며, 우리의 후손인 다음 세대들이 분단 백 년이 가기 전에 꼭 통일을 이루어, 명실상부한 자주독립 국가를 만들어 주기를 간절히 비는 마음으로 책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