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대서양 아조레스섬, 1402년 조선의 세계지도에?

  • 등록 2025.04.25 11: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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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초 1402년, 조선은 세계지도를 그린 문화강국이었다
[돌아온 개화기 사람들] 27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2025년 5월 1일 <지도 포럼 창립 총회>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나는 그 날의 세미나에서 강리도(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壹疆理歷代國都之圖, 1402년 조선에서 만들어진 세계지도)에 대해 발표하고 싶다고 자청하였다. 까닭이 있다. 최근에 구한 미의회도서관의 자료에서 북대서양의 아조레스섬(Azores)을 조선인이 1883년 12월 어느날 방문한 기록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 기록은 조선인이 쓴 것이 아니고 동행한 미국인 조지 포크(George Foulk) 소위가 쓴 것이다.

 

 

1883년 12월 1일 조선인 3인과 함께 미군함 트렌턴호(Trenton)에 몸을 싣고 뉴욕항을 출항한 조지 포크가 조선인들과 함께 악천후로 죽을 고생을 한 뒤 지브롤타로 향하고 있던 중에 부모님 전 상서를 썼다(위 편지). 여기에서 그는 며칠 전의 아조레스 방문에 대해 적었다. 그 내용이 매우 여실하여 인문지리학자의 보고서로서 손색이 없는 것 같다.

 

“…… 11일(1883.12.11) 우리는 다시 돌풍을 만나 밤새 악전고투했습니다. 자정께 큰 위기를 가까스로 넘겼습니다. 12일 날이 밝자 돌풍은 사라지고 날씨가 좀 좋아졌습니다. 우리는 항해를 계속했는데 그 날 밤 또 다시 돌풍을 만났습니다. 한 숨도 자지 못하고 악전고투를 반복했습니다. 13일 돌풍은 소멸되었지만 맞바람이 불어 이틀 동안 매우 조금밖에 못 나갔습니다.

 

17일 일요일 선상에서 두 명이 천연두에 걸린 것 같다는 의사의 보고가 있었습니다. 이건 큰 골치거리였습니다. 함장은 즉시 아조레스로 뱃머리를 돌리라고 명했습니다. 남남서쪽으로 나아갔습니다. 환자는 다행이 홍역이라 합니다. 그점 안도하였지만, 조선인들이 걱정되었습니다. 코카시언족에게 홍역은 별 게 아니지만 다른 종족에겐 치명적이기 때문입니다. 1873년엔가 한 영국인이 피지(Fiji)섬 사람들에게 홍역을 옮겼는데 한 달이 못되어 4만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12월 17일 낮 2시 우리는 호르타(Horta) 연안에 닻을 내렸습니다. 호르타는 아조레스 군도 가운데서 파이얄(Fayal)섬에 있는 마을 이름입니다. 이 마을에서 환자의 병세가 빨리 호전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일은 1050 마일 남은 지브롤타까지 항해할 수 있도록 넉넉한 분량의 석탄을 배에 싣는 것 뿐입니다. 150톤의 석탄을 다음날 하루 종일 실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시간 여유가 생겼지요.

 

파이얄섬(Fayal)섬을 비롯한 아조레스 군도에 대해 제가 알게 된 모든 이야기를 늘어 놓으면 아마 따분해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좀 쓰겠습니다. 저는 이곳에 호기심이 가고 흥미를 느낍니다. 또 가족들도 좀 듣고싶어 할 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조레스 군도는 9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모두 화산 폭발로 생긴 섬으로 가파른 초록 경사면을 지니고 있습니다. 약 400년 전에 포르투갈 사람들이 발견했습니다. 당시 무인도였는데 섬에 굉장히 많은 아소르스(Acors)라는 매가 살고 있어 섬 이름을 그렇게 불렀습니다. 섬은 포르투갈령이 되었고 포르투갈인들이 섬으로 이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인구 24만을 헤아립니다. 각 섬에는 한 둘의 마을이 있습니다. 주요 세 마을엔 각각 약 6,000명 가량의 사람이 삽니다.

 

테르시에라(Terciera)섬의 앙공라(Angra)에는 아조레스 군도의 수령이 살고 있습니다. 천주교 주교는 상마구엘(San Miguel) 섬의 포르토 델그라도(Porto Delgrado)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파얄 섬의 호르타 마을(인구 6천 명)이 우리가 방문한 곳입니다. 고온다습한 기후로 오렌지, 포도, 사과, 베리, 바나나, 레몬 등의 열대성 과일이 풍부합니다. 곡물도 잘 자랍니다.우리가 닻을 내린 곳에서 맞은 편의 피코(Pico)섬 산정은 7,615피트 높이인데 연기를 내뿜고 있는 화산입니다. 종종 일어나는 지진으로 근처에서 섬들이 생겨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합니다……”

 

조지 포크의 안내를 받고 있는 조선인은 보빙사의 대표 민영익 대신 외 서광범과 변수였다. 포크의 부모님전 상서를 통해 우리는 이들 3인의 조선인이 유사 이래 처음으로 아조레스섬을 방문한 사실과 그 시기는 1883년 12월 17일 낮 2시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조선 사신들은 꿈에도 생각치 못했을 것이다. 지금 머물고 있는 그 섬을 선조들이 일찍이 1402년(태종 2년, 세종 5살)에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이하 ‘강리도’)라는 지도에 표시해 놓았음을. 그들은 그로부터 481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 섬을 방문한 것이다. 그들은 강리도에 그 섬이 그려져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를 뿐 아니라 조선초에 강리도라는 놀라운 세게지도가 나왔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을 것이다. 조선은 그렇게 쇠락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21세기 우리는 알고 있는가?

 

 

강리도 성주괴공(成住壞空)의 발자취는 우리나라의 흥망성쇠와 궤를 같이하는 묵시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강리도가 제작되고 조선에 머물러 있던 조선 초기에 우리는 가장 융성했는데 그것을 일본에 빼앗기고 그 존재조차 까맣게 잊으면서 우리는 쇠락하고 망국의 비운을 겪게 되었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관점이 타당하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며 어떤 교훈을 일깨우는가?

 

세계지도에 표준 따위는 없다(Jerry Brotton). 하지만 우리는 늘 보는 세계지도를 표준으로 여기고 그것이 실제의 세계라고 부지부식간에 믿는다. 학자들에 따르면, 3차원의 구체인 지구를 2차원의 평면에 정확히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따라서 세계 지도를 그리는 사람은 세계의 형태, 면적, 상대적 거리 가운데서 어떤 것의 왜곡을 피할 수 없다고 한다. 세계지도를 만들 때 선택되는 수 많은 투영법 자체가 왜곡이라고 한다(John Rennie Short). 이를 뒤집어 생각해 보면, 모든 세계지도는 나름의 의도와 선택으로 세계를 재구성한 도면이라 할 수 있겠다. 세계지도 제작자는 예나 지금이나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그릴 수도 없지만 애초부터 그런 의도 자체가 없는 경우도 많다.

 

무엇을 왜곡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것은 지도 제작자의 고민임과 동시에 초월적 특권이 아닐까 한다. 조물주가 제1의 창조주라면 세계지도 제작자는 제2의 창조주인 셈이다. 우리는 조물주가 만든 그대로의 세상을 인식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지도제작자가 재구성한 왜곡된 세계를 실제의 세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구글의 평면 세계지도(메르카토르 투영법/도법圖法) 또한 실제와 너무 다르다. 만일 창조주가 그걸 본다면,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이 진실이라 믿고 있음을 아신다면 크게 놀랄 게 틀림없다.

 

구글 세계도를 비롯한 메르카토르도법에 의한 세계지도가 상대적 면적을 엄청나게 왜곡했듯이 강리도 제작자 또한 그러했다. 강리도는 지도 아래 부분에 붙인 후기(postscript)에서 그 점을 이렇게 솔직히 토로한다. “이 참에 우리나라를 특별히 크게 늘리고 넓혔다(今特增廣本國 금특증광본국)” 그렇다면 조선을 얼마나 크게 그린 것일까? 아프리카보다 크고 면적 비례로 따지면 중국보다 5배는 큰 것 같다.

 

“지도에 그려진 세상은 항상 특정 방향에서 바라본 것이다.”(John Rennie Short). 강리도는 웅대한 조선에서 서쪽을 향해 바라보는 원근법적 구도를 취하고 있다. 그렇다면 강리도의 서단은 어디일까? 이 문제를 탐구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한반도에서 서쪽을 조망할 때 극서지역은 어디일까? 당연히 이베리아반도이겠다.

 

 

 

이베리아 반도에서도 가장 서쪽 극점은 깍아지른 바위로 이루어진 ‘바위 곶’이다. 포르투갈어로 ‘호카 카보(Roca Cabo-Rock Cape)’. 고대로부터 땅의 끝이라 여겨진 지점이다. 이곳 호카 카보(북위 약38도)가 <1402강리도>에 표시되어 있다면 믿을 수 있는가? 그러나 그게 거기에 있다!

 

 

호카 카보가 ‘剌可(랄가/라커-중국음)’로 표기되어 있다. 음이 매우 흡사하며 지리적 위치도 정확하고 해안선 윤곽도 실제와 호응한다. 한편 ‘剌可’ 다음의 한자 ‘撒布兒(살포아/사푸아-중국음)은 리스본(포르투갈인들은 ‘리스보아Lisboa’)일 것이다. ‘리스보아’에서 ‘리’를 빼면 ‘스보아'로 ‘사푸아’와 거의 일치한다. 아래 고지도를 보자.

 

 

붉은 글씨가 바로 Lisboa(리스보아). 이로 보아 리스보아는 광역 개념의 지명으로도 사용되었던 듯 하다. 보다시피 리스본/리스보아는 폭이 넓은 타구스강(Tagus River)에 접해 있다. 그렇다면, 혹여라도 강리도에 타구스강이 그려져 있지 않을까? 열심히 조사해 본 결과, 류코쿠본에는 아래 쪽으로 좀 떨어진 곳에 짧은 강이 희미하게 보인다. 타구스 강일 가능성이 있지만 확언할 수 없다.

 

 

이제 혼코지본(本光寺本: 일본의 절)을 살펴본다. 리스본과 접해 있는 타구스 강이 그려져 있는 게 아닌가!

 

 

이로써 강리도에 유라시아대륙의 서단인 리스본과 호카곶이 표시되어 있음이 증명된 셈이다. 강리도가 동으로는 일본과 주변 해역, 서로는 리스본 및 호카 곶과 인접해역에 이르는 초광역의 지리공간을 망라했음이 확인된 것이다. 이 지리적 공간은 당시 동서양의 어떤 지도도 담지 못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에 그치지 않는다. 다음 지도를 보자.

 

 

북대서양상의 아조레스군도가 강리도에 ‘鷄山(계산/지샨-중국음)’으로 강조되어 있다.( 김선흥, 《1402 강리도 》,188-196쪽)

 

 

더욱 자세한 내용은 5월 1일 오후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발표할 생각이다. 많은 관심과 지적 바란다.

 

참고로 행사 개요는 아래와 같다.

 

때: 2025년 5월 1일(목) 14:00-16:40

장소: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도서관 세미나실(지하 3층)

<지도 포럼 창립 기념 세미나>

-<세계 지도의 날 제정 필요성과 의의>: 김현명 지도포럼 공동위원장. 전 주이라크 대사

-<세계 지도의 날 제정을 위한 과제>: 이시형 한국외교협회부회장. 전 주OECD대사

-<김정호의 전국 답사와 백두산 등정설, 왜 잘못되었다고 말해야 하나?>: 이기봉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관

-<근대초기 유럽에서 지도학적 재현의 상징성>: 진종헌 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 회장

-<강리도의 서단 탐사>: 김선흥 《1402 강리도 》의 저자

 

 

김선흥 작가 greensprout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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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사진
김선흥 작가

전직 외교관(외무고시 14회), 《1402강리도》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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