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대서양의 아조레스섬에서 공자를

  • 등록 2025.05.01 11:4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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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대서양 바다에 들어온 최초의 조선인들
[돌아온 개화기 사람들] 28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북대서양에는 아조레스(Azores)군도가 있다. 이 섬은 어떤 대륙으로부터도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가장 가까운 포르투갈의 로카(Roca) 곶과는 830km, 아프리카의 가장 가까운 곳은 900km 이상, 아메리카 대륙의 가장 가까운 곳인 뉴펀들란드의 레이스(Race) 곶 까지는 1,000km 이상 떨어져 있다. 이 섬을 1883년 12월 조선인들이 방문한 사실이 동행한 미국 해군 소위 조지 포크(George Foulk)의 부모님 전 상서에 기록되어 있다. (전회 글 참고).

 

 

12월 24일 밤 11시 조지 포크가 트렌턴호 선상에서 쓴 부모님 전 상서의 일부를 여기 번역하여 공개한다.

 

트렌터호가 12월 1일 낮 11시에 출항했다는 건 알고 계시겠죠. 순탄하게 바다로 나아가는가 싶었는데 이 계절 대서양이 늘 그렇듯이 악천후를 만났습니다. 증기와 돛을 겸용하는 우리 배는 등 쪽에 강풍을 받으면서 놀라운 속도로 이틀 동안 달렸습니다. 그런 다음 돛만으로 만류(灣流)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3일과 4일 험한 날씨가 최고조에 이르렀습니다. 배가 덜컹대며 요동칩니다. 우리는 갑판 아래 깜깜한 곳에 몸을 납짝 엎드립니다. 총포 더미와 보트에 눌리자 좀 겁이 나더군요. 5일엔 날씨가 나아졌습니다. 7일인가 8일엔 큰 난파선을 목격했습니다. 나무 파편 따위가 몇 마일에 걸쳐 바다위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슬픈 광경이었습니다. 갑판은 모두 날아갔고 노도에 할퀸 배의 옆구리는 하얀 갈비뼈만 앙상했습니다. 돛대들은 부러지고 꺾기고 잘렸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디 있는가? 난파선 주변에 아무 배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모두 죽은 게 분명합니다. 우리가 멈춰서 난파선을 조사해 보기엔 파도가 너무 높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파도와 싸우는 해골 같은 난파선의 잔해를 뒤로 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했습니다.

 

3일과 4일의 폭풍 속에서 승선자들은 멀미를 했습니다. 저에게도 몇 차례 토기가 있었으나 별 탈은 없었습니다. 저의 임무는 전적으로 조선인들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세 명 가운데 서기관(서광범)과 수행원(변수)은 의연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들은 멀미 기색을 크게 드러내지 않았고 겁을 먹거나 불평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절단 특사 민영익의 경우는 딴판이었습니다.

 

 

저는 배멀리 하는 사람을 많이 봤지만 민영익처럼 극심한 사람은 처음입니다. 그는 잠도 자지 않고 먹지도 않고 눕지도 않습니다. 하루 종일 겁 먹은 눈동자, 하얗게 질린 입술을 한 채 선실 속의 칸막이 틀을 움켜쥐고 엉거주춤 앉아 있습니다. 가끔 손을 놓치면 몸이 선실을 날아다닙니다. 엔진이 굉음을 내기도 하고 증기가 쉭쉭 소리를 내며 엔진실로 새어 들어기도 합니다. 산더미 같음 파도가 배를 강타합니다. 그 때 마다 민영익의 눈동자는 튀어나올 듯 하고 피부는 레몬 그린(lemon green)색으로 변합니다. 극도로 겁에 질린 표정을 보니 비참한 느낌이 듭니다……

 

5일부터 11일까지 우리는 나아갔습니다. 날씨는 항상 좋지 않았지만 좋은 시간을 가졌답니다. ….저는 날마다 조선인들을 가르치고, 조선어, 프랑스어, 사진술을 배우거나 잡무를 처리하느라 늘 바빴습니다.

 

11일 우리는 다시 돌풍을 만나 밤새 악전고투했습니다. 자정께 큰 위기를 가까스로 넘겼습니다. 12일 날이 밝자 돌풍은 사라지고 날씨는 약간 좋아졌습니다. 그러나 그 날 밤 또 다시 돌풍이 닥쳤습니다. 역시 한 숨 자지 못하고 악전고투를 반복했습니다. 13일 돌풍은 소멸했지만 맞바람이 불러 이틀동안 아주 조금밖에 못나갔습니다.

 

17일 일요일, 선상에서 두 명이 천연두(small pox)에 걸린 것 같다는 의사의 보고가 있었습니다. 큰 골치거리였습니다. 함장은 즉시 아조레스로 뱃머리를 돌리라고 명했습니다. 남남서쪽으로 나아갑니다. 다행이 병은 홍역(measle)으로 밝혀졌습니다. 일단 안도하였지만 조선인들이 걱정이었습니다. 홍역은 코카시언족에겐 별 게 아니지만 다른 종족에겐 치명적이기 때문입니다. 1873년엔가 한 영국인이 피지(Fiji) 섬 사람들에게 홍역을 옮겼는데 한 달이 못되어 4만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12월 17일 낮 2시 우리는 호르타(Horta) 연안에 닻을 내렸습니다. …이 마을에서 환자의 병세가 몰라보게 좋아졌답니다. 이제 남은 일은 1,050 마일 남은 지브롤타까지 항해할 수 있도록 넉넉한 분량의 석탄을 배에 싣는 것 뿐입니다. 150톤의 석탄을 내일 하루 종일 실어야 합니다. 그래서 뭍에서 놀 수 있는 시간이 생겼습니다.

 

아조레스 군도는 9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모두 화산 폭발로 생긴 섬으로 가파른 초록 경사면을 지니고 있습니다. 약 400년 전에 포르투갈 사람들이 발견했습니다. 당시 무인도였는데 섬에 굉장히 많은 아소르스(Acors)라는 매가 살고 있어 섬 이름을 그렇게 불렀습니다. 섬은 포르투갈령이 되었고 포르투갈인들이 섬으로 이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인구가 24만을 헤아립니다. 각 섬에는 한 둘의 마을이 있습니다. …우리가 닻을 내린 곳에서 맞은 편에 피코(Pico) 섬의 산정은 7,615피트 높이인데 연기를 내뿜고 있는 화산입니다. 종종 일어나는 지진으로 섬들이 근처에서 생기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합니다.

 

 

초기의 포르투갈 이민자들은 지독히 가난하고 무식했답니다. 모두 로마 카톨릭 신자들인데 미신적인 종교 광기를 섬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아조레스는 미국 배가 자주 오지 않습니다. 영사관 사람들이 미국인을 만날 기회도 많지 않습니다. 이번에 미국인을 가득 싣고 함선이 온 것은 그들에게 보통 사건이 아닙니다. 그들은 우리를 보자 몹시 기뻐하더군요. 더욱 그들을 기쁘게 만든 것은 우리와 함께 온 특이한 방문객들입니다. 대서양 바다에 들어온 최초의 조선인들입니다. 이 조선인들은 아조레스를 처음 방문한 사람일 뿐 아니아 19세기 중에 이곳에 닿아보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할 겁니다. 영사관 사람들은 조선인들에 대해 호기심이 타올랐지요. 우리는 여인들과 끝없이 이야기를 주고 받았습니다. 피티언 함장은 영사 부인과 30년 전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곧 실습선이 호르타 연해에 정박했는데 삼사십명의 배고픈 사관생들이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기 위해 날마다 숫당나귀를 타고 영사관을 찾아갔었노라고. 조선인들은 영사의 딸 대브니양에게 공자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즐거워합니다. 그런데 대브니양은 내가 미국에서 만난 어떤 젊은 여성보다도 공자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이어짐)

 

 

김선흥 작가 greensprout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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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흥 작가

전직 외교관(외무고시 14회), 《1402강리도》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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