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키 산맥의 자작나무와 한국의 새 대통령

  • 등록 2025.06.05 11:4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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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맨 앞에 소년공 출신이 깃발을 들고 서 있다
[돌아온 개화기 사람들] 33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로키산맥 정상 부근에 군락을 이루고 있는 자작나무는 무릎을 꿇은 상태로 엎드려 산다고 한다. 가까스로 싹이 트고부터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지악스러운 찬서리와 거친 비바람을 맞받으며 이겨내려면, 무릎 꿇고 엎드린 모습으로 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악기를 만드는 사람들은 이 자작나무를 베어내 바이올린을 제작한다. 세상의 어떤 나무보다 공명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김주영의 <아라리 난장>에서)

 

싹이 트고부터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찬 서리와 거친 비바람을 맞받으며 꿋꿋이 살았던 한 소년공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는 기적이 어제 새벽에 일어났다.

 

나는 그날만큼은 해돋이를 보아야겠다고 며칠 전부터 마음먹고 있었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그날 서울의 해는 5시 12분에 뜬다고 했다. 자칫 놓칠세라 새벽 2시 무렵부터 침대에서 뒤척인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퍼뜩 깨어나 시간을 보는 일을 반복한다. 해가 뜨려면 아직 멀었지만 내 마음속에는 이미 황홀한 해가 솟았다 사라졌다 한다. 몰록 시상(?)이 떠오른다.

 

     해가 뜬다.

     날마다 뜨는  해가

     일천 년 만에 뜬다.

 

새해 봄에는 야산에서 따온 찻잎으로 차를 만들어 마신다. 늦게 발견한 인생 가장 큰 행복이다. 어제 새벽 4시 좀 넘어 찻잎을 유리잔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으려 하는데 바로 눈앞의 허공에 검은 점 하나가 보인다. 유심히 보니 거의 멈춰있을 정도로 미세하게 움직거린다. 이게 뭐지? 날파리? 잡아 보려고 내민 나의 손가락이 멈칫한다. 이 상서로운 날에 살생한다고? 안 될 일이지.

 

나는 강보에 싸인 아이에게 손을 내밀 듯 조심스레 손가락을 내밀어 점처럼 작은 생명체를 감촉해 보려 한다. 나의 손가락이 몸에 닿으려 하자 갑자기 그의 몸짓이 빨라진다. 분명 수직으로 상행한 듯싶었는데 일순간에, 시야에서 사라지고 만다. 어디 갔지? 천정을 살펴보니 맙소사, 어느 순간에 거기 밀착하여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

 

나는 직감한다. 적들이 우글거리는 이 집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 생명체는 야음을 틈타 활동하면서 생존을 이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포식자의 갑작스러운 출현에 얼마나 놀랐을까? 지금, 이 순간 그는 생사의 위기감에 사로잡힌 채 나를 노려보고 있을 것이다. 나는 죽은 척하고 있는 이 거미를 사진 찍어 두었다. 그런데 이 웬일인가. 오늘 새벽 그의 천장 거처를 살펴보니 자취가 없다. 필시 은신처를 옮긴 것이렸다.

 

 

나는 거미의 안녕을 비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길동무 한 분이 버티고개역에서 기다리고 있다. 4시 50분이다. 날씨는 상쾌하고 맑다. 숲길로 접어든다. 온갖 새들이 동시에 소리를 터뜨린다. 멀리서 첫 햇살이 터오는 순간을 그들은 그렇게 집단으로 기념한다. 잰걸음으로 매봉산에 오른다. 막 해가 떠오르고 있다.

 

 

천지창조는 매 순간 일어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날 해돋이는 더욱 그런 느낌이다. 켜켜이 쌓인 어둠 뚫고 민기(民紀)의 찬란한 해가 마침내 떠오른 것이다. 가라앉아 있던 심장이 벅차오른다.

 

나보다 훨씬 더 팔자 좋은 어떤 친구는 그날의 해돋이를 보려고 가족과 함께 강릉을 찾아간 모양이다. 동해에서는 5시 06분에 해가 떠올랐다고 한다. 오늘 새벽 그가 보내온 일출 사진을 여기 올린다.

 

 

불과 반년 전 내란의 밤은 얼마나 어둡고 무서웠던가를 떠올린다. 거기에서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지금으로부터 약 150년 전 일본의 후카자와 유기치는 조선과 조선인에 대해 이렇게 논평했다.

 

“최근 논자들은 ‘조선의 문명은 퇴보했다’라고 한다. 옛날부터 일본은 조선에서 문명을 흡수하기 위해 서로 통했다. 문자. 유학. 불교. 의학. 역법. 공예 등 일본으로 건너오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조선은 실로 ‘일본 문명의 선생’이라고 말해야만 한다.

 

그런데도 작년 강화도사건이 있을 때부터 조선국의 상황을 들어보면 ‘병기(兵器)의 조악함’, ‘지론(持論, 늘 가지고 있는 의견)의 완고함’, ‘풍속의 야비함’, ‘국민의 빈약함’이 말이 아니다. 모두 배를 움켜쥐고 웃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보면 우리가 선생이고 조선이 종복(從僕, 줏대 없이 남이 시키는 대로 따라서 하는 사람)이다. 도저히 적대할 상대가 아니다. 심하게 퇴보하여 현상이 현격하게 뒤집어진 상태에 이르렀다.

 

조선을 보면, 옛날 병기는 예리하고 지금은 조악하다. 옛날 지론은 활발하고 지금은 완고하다. 옛날의 풍속은 고상하고 지금은 야비하다. 세계는 살아 있는 동물이다. 나라마다 문명부강을 향하여 걸음을 빨리하여 실력을 겨루고 있는 형국이다. 어찌 조선의 정체(停滯)를 비웃고 우리가 작은 진보에 안주할 것인가. 그럴 때가 아니다.”

                                               -후쿠자와 유기치, 1877년 2월 4일 <가정총담(家庭叢談)>(제48호)

 

마침내 조선이 망하자, 중국의 양계초는 이렇게 토로했다.

 

“조선은 귀족과 미천한 집안의 구분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매우 엄격하다. 이른바 ‘양반’이라는 자들이 나라의 정치ㆍ사회ㆍ생계상의 세력을 모두 농단하였다. 저 양반이라는 자들은 모두 교만하고 방탕하여 일하지 않고, 오직 벼슬하는 것을 유일한 작업으로 삼았다. 관리들은 오직 지나치게 번거롭고 까다로운 규칙과 예절만 힘쓰고 한번 벼슬을 하여 높아지면 시중드는 하인이 구름같이 많아진다. 모두 사리에 어둡고 미련하여 세계의 대세가 어떤 것인지 몰랐고, 정치가 어떤 것인지도 몰랐으며 또 논의하지도 않았다. 오직 강한 것만을 우러르고 오직 나를 비호해줄 수 있는 것을 따랐을 뿐이다.

 

조선 사람은 화를 잘 내고 일 만들기를 좋아한다. 한번 모욕을 당하면 곧 팔을 걷어붙이고 일어난다. 그러나 그 성냄은 얼마 안 가서 그치고 만다. 한번 그치면 곧 이미 죽은 뱀처럼 건드려도 움직이지 않는다. 이번에 합병조약이 발표되자 이웃 나라의 백성은 오히려 조선을 위해 흐느껴 울며 눈물 흘렸는데도, 조선 사람들은 술에 취해 놀며 만족했다. 고관들은 더구나 날마다 출세를 위해 운동하고, 새 조정의 작위를 탐하면서 기꺼이 즐겼다. 대체로 조선 사회에서는 음험하고 부끄러움이 없는 자가 늘 강한 자가 되고 번성하는 처지에 놓였고, 청렴하고 인자한 자는 약한 자가 되고 쇠멸하는 처지에 놓였다. 대체로 조선 정치의 문란함은 다스릴 수도 없고, 썩어 문드러져 가까이 갈 수도 없다.

 

조선이 스스로 망하는 길을 취하지 않았다면 비록 100개의 일본이라도 어찌할 수 있었겠는가? 아! 상서롭지 못한 나라로다! 아! 이제 조선은 끝났다. 황실의 위엄이 어디 있으며, 관리의 권세가 어디 있으며, 양반의 가문이 어디 있으며, 삼청동 여러 민씨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저택들이 어디 있으며, 뇌물을 쌓고 쌓던 전대가 어디 있는가? 이제는 모두 재처럼 타다가 날아가 없어지고 소리 없이 사라졌다. 깊이 생각하고 찬찬히 살펴보노라니, 그들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 그랬던가? 그런데도 조선 사람들은 실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지 않는가? 아!”

                                            (지은이 양계초, 옮긴이 최형욱, 《조선의 망국을 기록하다》에서)

 

이렇게 조롱받던 조선인이 과연 우리의 모습이었던가? 그러나 사실이었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말이다. 이런 조롱을 당할 일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한다면 속단이리라. 우리는 바로 지난해 그러니까 민전(民前) 1년 12월 3일 어디에 있었던가? 지옥문 앞에 서 있지 않았던가?

 

천 길 낭떠러지의 벼랑 끝에 서 있지 않았던가. 우리 후손들이 그런 위기에 또다시 내몰리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 권력자가 군대를 동원하여 저지르는 내란이 성공하지 못한 사례가 있었던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기적이 바로 우리 앞에서 일어났다. 우리가 어찌 그 위험천만과 의미를 잊을 수 있을까? 각골명심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양계초의 꾸중을 다시 듣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조선 사람은 화를 잘 내고 일 만들기를 좋아한다. 한번 모욕을 당하면 곧 팔을 걷어붙이고 일어난다. 그러나 그 성냄은 얼마 안 가서 그치고 만다. 한번 그치면 곧 이미 죽은 뱀처럼 건드려도 움직이지 않는다.”

 

후쿠자와 유기치와 양계초로부터 조롱을 받던 일은 아득한 옛일이 아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나라와 국민의 운명, 흥망성쇠는 갈수록 쉬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지정학적 특수성, 남북분단, 그리고 고질적인 한국병 등으로 늘 갈림길 위에 서 있다. 추락이냐, 도약이냐.

 

지금 다행히 희망을 본다. 이 천고(千古)의 기회는 민주공동체를 도약시키는 것을 넘어 지구촌에 문명사적 파동을 일으킬 것이다.

 

세상의 어떤 것보다 공명이 탁월한 생명체는 로키산맥 정상의 자작나무만은 아닐 것이다. 그 자작나무들처럼 긴 세월 찬 서리와 비바람을 견디며 살아남은 강인하고 흥 많은 한국인이 다시 일어섰다. 그 대열의 맨 앞에 소년공 출신이 깃발을 들고 서 있다. 대장정의 모험극이 그 서막을 연 것이다. 앞날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덕분에 우리집 거미 한 마리가 생명을 보존했으니…길조의 예감이 든다.

 

                                                                                  민기 1년 6월 5일 이글을 쓴다.

 

 

김선흥 작가 greensprout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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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사진
김선흥 작가

전직 외교관(외무고시 14회), 《1402강리도》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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