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컬렉션.
컬렉션 곧 수집의 사전적 의미는 ‘미술품이나 우표, 화폐, 책, 골동품 따위를 모으는 일. 또는 모인 물건들’이다. 이렇게 건조하게만 정의할 수 없는 ‘컬렉션’은 그것을 모으기까지 한 발, 한 발 구도의 길을 걸어간 수집가들의 피와 땀이 응집된 보석함이다.
이 책 《컬렉션의 맛》을 쓴 지은이 김세종은 민화 수집가로 유명하다. 평창아트 대표로 국내 으뜸 민화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도자기나 제기 등 다른 골동들도 많이 소장하고 있다. 2018년 펴낸 이 책은 그가 털어놓는 자신의 수집 철학, 각고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수집의 미학,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소장 민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그의 수집 철학 가운데 눈길을 끄는 대목 몇 가지를 소개해 본다. 우선 ‘안목의 근육’을 기르려면 가짜 작품에도 많이 속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실패 사이에서 허우적대다가 비로소 마주치게 되는 것이 명품이다. 명품을 수집하려면 운도 따라야 하지만, 그사이에 수많은 가짜를 마주하며 길러진 ‘안목의 근육’이 있어야 한다.
(p.91)
우연찮은 기회에 조그만 작품을 구입하였다 해도, 누가 작품을 좋지 않게 말하면 이내 작품이 안 좋게 보여 판매한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여 반품하기를 반복한다. 그만큼 안목의 근육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가품을 두려워하면 절대로 진품을 살 수 없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식이다. 아무리 뛰어난 안목의 소유자라고 해도 좋은 작품만 골라 수집할 수는 없다. 명품을 소유한 컬렉터는 그만큼 가짜에 많이 속아보고, 하품을 많이 경험해봤다고 믿어도 좋다. 수집 경력이 적고 안목은 낮은데, 명품만 골라 사겠다는 마음은 일종의 욕심이고 오만이다.
이는 수많은 범작, 심지어 실패작을 내다가 비로소 하나의 명작을 내는 창작자의 운명과도 닮아있다. 실패를 지나치게 두려워해서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안목의 근육이 부실해진다. 두렵더라도 자신의 판단을 믿고 결정해 보고, 그것이 틀렸을 때는 실패한 사유를 복기하면서 절치부심하는 과정이 있어야 명품을 가질 기회도 얻는다.
그다음은 미의 깊이를 느낄 줄 아는 만큼 추의 깊이도 느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혜곡 최순우의 산문집인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에 실린 이 구절에 깊이 공감했다고 한다.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인간이 만든 조형미를 남보다 더 섬세히 깊이 느껴서 오는 행복함을 느끼는 사람은 그 반대로 다른 사람이 느끼지 못한 추함을 느껴 고통을 받는다. 그렇다면 그 아름다움과 추함을 함께 되새김질하며 추함을 느껴서 받는 고통을 감내하여야 한다.”
그는 높은 미감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추의 깊이도 함께 느껴야 하고, 지극한 아름다움과 지극한 추함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고자 하는 힘의 긴장감을 즐기는 것이 미의 본질을 알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미추가 정확히 구별되지 않는 그 모호함이 작품의 깊이를 만드는 까닭이다.
그는 또한 질서 있는 컬렉션의 비결로 ‘비움’을 꼽는다. 비워야 갈증을 느끼고 새로 채우려는 희망과 열망이 생기는 것처럼, 소장하고 있는 작품을 계속해서 비우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무한한 재력과 공간이 있다면 모르겠으나, 일반적으로는 자신의 소장작품 수를 특정 개수 이하로 제한하고 끊임없이 순환시키는 것이 좋다.
(p.128)
질서 있는 컬렉션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비움이다. 연못에 물이 가득 차 있으면 새로운 물이 들어가지 못한다. 아무리 물이 맑은 연못일지라도 새로운 물이 유입되지 않으면 그 연못은 정체될 수밖에 없다.
지은이는 ‘제주 문자도’를 수집한 것을 계기로 민화 수집에 빠져들었다. 지금 세계적인 ‘케데헌’ 열풍으로 까치와 호랑이를 그린 ‘호작도’도 덩달아 인기다. 민화를 수집하던 그에게 자신감을 가지게 한 것도 바로 까치호랑이 그림이었다.
그는 거금을 들여 산 두 점이 모두 가짜로 드러나 큰 손해를 보았지만, 거기에 굴하지 않고 명품 한 점을 사기 위해 비용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마침내 일본 도쿄에서 1986년 1월에 열린 조선 민화 ‘호도전(虎圖展)’에 출품한 개인 소장품을 일본인 소장자를 어렵사리 설득해 수집하는 데 성공했다.
(p.272)
우리 호랑이는 어질고 호탕한 기품을 지닌 탓에, 한민족과 잘 어울린다고 여겨 수천 년을 함께해 왔다. …(줄임)… 호랑이는 편한 자세로, 너그러운 표정을 지으며 까치의 조잘거림에 귀를 기울인다. 정확한 묘사가 돋보이는 까치는 작지만, 호랑이와 당당하게 맞선다. 여차하면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다리에 힘을 준 채 호랑이에게 뭔가 열심히 조잘대고 있다. 그림 속 두 주인공 사이에는 여전한 긴장감이 흐르지만 동시에 안정된 진중함이 있다. 더불어 해학과 여유가 느껴진다.
호작도는 언제나 보는 이를 웃음 짓게 하는 매력이 있다. 이런 호작도의 매력을 진작 알아보고, 최근 《판타지아 조선민화》 시리즈를 펴낼 만큼 여전한 민화 사랑을 이어가고 있는 지은이가 수십 년에 걸쳐 쌓아온 안목은 페이지를 넘길수록 부러움과 감탄을 자아낸다.
‘수집 철학으로 빚은 컬렉션의 맛과 멋’이라는 부제처럼, 이 책은 좋은 컬렉션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어떻게 안목을 길러야 하는지 조곤조곤 알려주는 지침서다. 언젠가 나만의 컬렉션을 만들어 보고 싶은 ‘수집가 꿈나무’들이 읽어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