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지운영은 종두법으로 유명한 지석영의 형이다. 1851년 생으로 김옥균보다는 한 살 아래다. 그는 추사 김정희의 제자였고 개화 선각자 강위(姜瑋)에게서 시문을 배웠다고 한다. 한때 외무부서의 주사로 일한 적이 있는데 그때 김옥균은 그의 상사였다. 그러니까 서로 모르는 사이가 아니다. 개화에 눈을 뜬 지운영은 일본으로 건너가 사진술을 배워 돌아온 뒤 서울에서 사진관을 열기도 했다. 이처럼 특이한 이력의 사나이가 갑신정변 뒤 섬뜩한 글 한 편을 쓴다. 이름하여 ‘지씨필검(池氏筆劍)’. ‘필검’이란 문자 그대로 검으로 사람을 죽이는 살인검(殺人劍)을 뜻한다.
개화파의 ‘죄상’을 험하게 고발한 이 글이 조정에 알려지자, 지운영은 천하에 둘도 없는 관직명을 받는다. 특차도해포적사(特差渡海捕賊使). ‘바다건너 역적을 잡아 오는 사신’이라는 뜻이겠다. 이 희한한 직명과 함께 고종의 위임장과 함께 5만 원의 공작금까지 받는다. 그뿐이 아니다. 날이 퍼런 단도까지.

지운영이 일본에 잠입한 것은 1886년 초. 그는 고베로 가서 장갑복이라는 사람을 여러 차례 만나 김옥균의 동정을 파악한다. 그해 3월 지운영은 김옥균에게 편지를 보내 만남을 청한다. 지운영의 속셈을 간파한 김옥균은 이런 답장을 보낸다. “당신이 일본에 왔다니 반갑소. 마땅히 내가 영접해야 할 것이나 당신은 조선의 관리요, 나는 국사범이요. 오늘의 상봉이 훗날 당신에게 화를 끼칠까 두렵소.”
김옥균은 동지인 유혁로(柳赫魯), 신응희(申應熙), 정난교(鄭蘭敎)를 부른다. 귓속말로 무언가 밀담을 나눈다.
김옥균으로부터 술책을 전해 받은 이 세 사람은 우연을 가장하여 지운영에게 접근한다. 지운영을 만난 그들은 김옥균의 흉을 보며 신세타령을 한다. 김옥균은 흥청대고 지내는데 자신들은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라는 둥, 고기 맛을 본 지도 오래되었다는 둥. 지운영은 옳거니, 이 자들을 잘 이용하면… 생각하면서 그들에게 동정을 표시하고 음식도 잘 대접해 준다.
하루는 세 사람이 신세타령을 또 하자, 지운영이 말한다.
“당신들은 부질없이 신세타령으로 세월을 보내지 말고 조선을 위해 충성을 다 하면 앞길이 트일 것이오.”
“우리는 나라에 죄를 짓고 도망한 몸이니 비록 뜻이 있다고 하여도 어떻게 조국에 충성한다는 말이오?”
“조선정부의 해독을 제거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오.”
자신이 함정에 빠진 줄도 모르고 지운영은 마침내 자기가 왕명을 띠고 김옥균을 제거하기 위해 왔노라고 발설한다.
“그게 정말인가요? 그렇다면 증거를 보여주시오.”
지운영은 망설이는 빛을 내비친다. 그러자 세 사람은 짐짓 노기를 띠며 말한다.
“우리들은 진심을 토로하는데 당신은 아직 무언가를 감추고 우리를 속이고 농락하는 게 아니오? 일이 이렇게 된 바에야 당신을 죽이고 우리도 자결하는 수밖에 없겠소.”
놀란 지운영은 유혁로 등에게 김옥균을 살해하면 성사 뒤 5일 안에 5,000원을 주겠다는 증서를 써준다. 아울러 국왕의 위임장과 단도를 보여준다. 이에 유혁로가 준비된 발언을 곡진하게 늘어놓는다.
“당신의 충성심과 전심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군요. 우리도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겠소. 다만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지금 일본 경찰이 주시하고 있소, 당신을 구속하여 소지품을 검사할 것이라는 소문도 나돌고 있소. 만약 그런 불상사가 일어난다면 대사를 그르치게 될 건 뻔 하오. 이러한 물품이 발견되면 국제문제가 야기될지도 모르겠소. 그러니 그걸 우리에게 맡겨 두는 게 안전하지 않겠소?”
- 다음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