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유홍준)은 조계종 탁본 명장 흥선(興善) 스님으로부터 전국 각지에서 탁본한 금석문 탁본 등 모두 558건 1,143점의 소장품을 기증받았다. 이는 탁본 기증으로는 역대 가장 큰 규모로, 삼국시대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는 우리 금석문화의 흐름을 포괄한다. 흥선 스님의 탁본은 금석문의 내용을 정확히 옮기고 조형적 아름다움까지 담아내, 학술적 값어치와 예술성을 겸비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박물관은 이를 디지털 자료보관소에 구축하고 전시와 연구를 통해 금석문과 탁본의 의미를 국민과 공유할 계획이다.
* 탁본: 돌, 금속, 나무 등에 새긴 글씨나 그림을 종이와 먹으로 그대로 찍어내는 것
* 금석문: 돌, 금속 등에 새긴 기록
40여 년 동안 탁본에 헌신, 시대와 지역을 아우르는 금석문 집성
흥선 스님은 불교중앙박물관장과 김천 직지사 주지 등을 역임하였으며 40여 년 동안 전국의 주요 금석문을 탁본해 온 탁본 전문가로 2024년에 대한불교조계종의 첫 탁본 분야 명장으로 지정되었다. 흥선 스님의 탁본은 부정확하며 단편적으로 이루어진 기존의 한계를 극복하고, 금석문의 값어치를 후세에 온전히 전하기 위하여 전국에 있는 금석문을 체계적으로 조사ㆍ탁본하여 모은 것이다.
이번에 기증받은 탁본은 이러한 집대성의 하나로 스님이 직접 탁본하거나 감독하여 제작한 것으로, 삼국시대에서 조선 시대까지 한국의 금석문을 폭넓게 망라하는 자료다. 또한, 불교사적 성격의 탑비ㆍ사적비부터 역사 기록물인 승전비ㆍ묘도문자에 이르기까지 주제 면에서 다양하며, 전국 각지에서 탁본되어 지역적 분포 또한 폭넓다.
*묘도문자: 묘비, 묘표, 묘갈 등 묘지에 세운 석물에 새기는 글



정밀한 탁본이 금석문의 참모습 드러내
금석문은 제작 당시의 사실과 인식을 그대로 전하는 신뢰도 높은 역사 자료며, 다른 사료를 검증하고 보충하는 데에 필수적이다. 기록이 부족한 고대사 연구에서는 가장 중요한 역사 자료이기도 하다. 또한, 당대 대표적인 명필가의 서체를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 서예사 연구의 핵심이 된다. 무늬와 석물의 형태는 미술사의 중요한 연구 주제이기도 하다.
탁본은 맨눈으로 볼 때보다 금석문의 글자와 무늬를 더욱 명확하게 드러내는 중요한 자료지만, 기존에 전하는 탁본은 품질이 낮아 금석문 연구에 많은 오류를 낳았다. 또한 잘못된 방식의 탁본은 금석문에 심각한 손상을 입히기도 한다.
흥선 스님의 탁본은 기존 탁본보다 판독할 수 있는 글자가 훨씬 많으며 글을 새긴 끌 자국까지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정밀하고 입체적이다. 스님은 수십 년 동안 축적한 기술과 금석문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섬세하며 완성도가 높은 탁본을 제작하여, 금석문의 아름다움과 사료적 값어치를 온전히 담아낸다.
이번에 기증받은 탁본 가운데는 장흥 보림사 보조선사탑비를 비롯하여 안성 칠장사 혜소국사비, 여수 통제이공수군대첩비 등 보물로 지정된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니는 금석문의 탁본들이 포함되었다. 또한, 김정희, 한호, 이삼만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서예가의 글자를 새긴 예, 미불과 구양순 등 중국 서예가의 글자를 집자해 새긴 예도 있어 신뢰도 높은 서예사 연구 자료로 평가된다.

국립중앙박물관, 전시ㆍ연구로 기증의 뜻 이어간다
이번 기증을 통하여 국립중앙박물관은 문화유산의 원형 보존과 학술 연구의 기반을 이루는 중요한 자료를 확보했을 뿐 아니라, 금석문 본래의 조형미와 탁본 예술의 아름다움을 국민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번에 기증받은 탁본을 역사학, 서예사, 미술사 등 학술 연구뿐 아니라 전시에도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또한, 소장품 등록 및 디지털 자료보관소 구축 절차를 거쳐 탁본의 기본 정보와 해제, 고해상도 이미지를 대국민 공개할 예정이며, 탁본 제작 과정을 기록하여 기증자 아카이브 구축의 기반을 마련하고, 전시와 연구를 통하여 국민이 탁본의 아름다움과 값어치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유홍준 관장은 “이번 기증은 탁본의 예술성과 금석문 연구의 중요성을 국민과 공유하는 출발점”이라며, “금석문과 탁본의 값어치를 널리 나누기 위한 기증의 뜻을 반드시 이어가겠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