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 푸른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듯

  • 등록 2025.10.23 12: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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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원, 제천 의림지를 찾다
[돌아온 개화기 사람들] 54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바깥 여행을 할수 없었던 조선 시대 여성들은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 시대에 14살 소녀의 몸으로 모험 여행은 떠난 김금원은 누구였을까? 어떻게 그게 가능했으며 그 기분은 어떠했을까? 첫걸음의 행색과 여정은? 그녀의 육성을 직접 들어 보자

 

.“마음에 계획을 정하고 부모님께 여러 번 간절히 청하니 한참 뒤에야 겨우 허락하셨다. 그러자 가슴이 트이며 마치 새가 새장을 나와 저 푸른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것 같고, 천리마가 재갈을 벗어 던지고 천리를 내닫는 듯한 기분이다. 그날로 남자 옷으로 갈아입고 짐을 꾸려 먼저 네 고을을 향해 길을 떠났다. 때는 경인년(1830년) 봄 삼월 내 나이 바야흐로 열네 살을 넘겼을 무렵이었다. 남자아이처럼 머리를 땋은 뒤 가마에 앉아 푸른 실 휘장을 두르되 앞은 보이게 하고 제천의 의림지를 찾았다.

 

예쁜 꽃들이 웃음을 터뜨릴 듯하고, 아지랑이같이 피어난 향기로운 풀에서는 초록빛 이파리가 막 펼쳐지고 있다. 푸른 산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어 마치 수가 놓인 비단 장막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가슴 속이 시원해지니 폐부를 씻어내고 때와 먼지를 닦아내는 듯 하다.

 

의림지(義林池: 충북 제천의 못) 에 도착했다. 둘레는 십 리 정도인데 푸른 물이 맑고 투명해서 중국 촉(蜀) 땅의 비단을 펼쳐놓은 것 같다. 물 위로 솟아오른 푸른 파초는 물에 잠기기도 하고 떠 있기도 한다. 수양버들 천만 가지는 반은 물속에 잠기고 반은 땅에 드리워져 있다. 그 위로 꾀꼬리 한 쌍이 오가면서 비단 깃을 펄럭이며 아름다운 소리를 지저귄다. 백구(白鷗: 흰 갈매기) 한 마리가 사람을 놀라게 하며 하늘로 날아간다. 나는 돌아보며 웃는다. ‘우리 가사에 ‘백구야 날아가지 마라 너의 벗이 내가 아니냐‘라 했는데 이제 나도 그렇게 말해볼까”

 

 

얼핏 수양버들 사이로 어부의 노랫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멀리 한 노인이 푸른 삿갓에 푸른 도룡이를 걸치고 낚싯대를 드리우고 푸른 물결 사이로 물고기를 낚아 올리는 것이 보인다.

 

고깃배를 빌려와 띄운다. 바람은 고요하고 물결은 잔잔하다. 마치 그림으로 아름답게 꾸민 배에 앉아 있는 듯하다. 벽옥같이 맑은 물결은 네모난 연못에 보배 거울이 열린 것 같다. 마름과 박하, 물품과 물새가 하늘빛과 구름 그림자 사이로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것이 그야말로 그림 속 풍경이다.

 

낚시터에 가서 배를 대고 뱅어를 사서 회를 친다. 이보다 더 맛있는 물고기는 세상에 없을 듯하다. 또 순채를 구하려고 못가의 한 초가집을 찾아간다. 주인 노파가 반갑게 맞아준다. 순채 먹는 법을 알려준다. 잠깐 끓는 물에 넣었다가 오미자 물에 적신다. 맛이 맑고 깨끗하다. 목이 상쾌해지는 느낌이다.

 

이 못은 원래 명승지로 유명하다. 봄이면 복사꽃이 물에 떠 있어 배를 타면 하늘 위에 있는 것 같고, 여름이면 연꽃으로 씻겨 높이 날아오른 듯 시원하며, 가을이면 얼음 같은 달을 건져 올리고, 겨울이면 옥거울 같은 눈을 펼친다. 세상을 등진 선비가 보면 장자(莊子)의 숨은 호수로 변하고, 미인이 오면 서시(西施)의 이름을 붙인 서호(西湖)와 비교하리라. 못의 아름다움이여, 해를 넘기며 노닐고 감상해도 부족하리라. 이리저리 거닐며 차마 떠날 수 없다. 시상이 넘쳐 입으로 한 수 읊는다.

 

     못가의 수양버들 푸르게 늘어져

     깊이 서린 봄 근심을 아는 듯

     가지 위 꾀꼬리 울기를 그치질 않고

     쓸쓸히 헤어짐을 견디지 못하는 듯

 

- 다음으로 이어진다.

 

김선흥 작가 greensprout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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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사진
김선흥 작가

전직 외교관(외무고시 14회), 《1402강리도》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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