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연금을 타는 신안군민과 에너지 고속도로

  • 등록 2025.11.06 11:3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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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128>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우리나라에서 연금은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노후 대비책이다. 공무원 연금, 사학 연금, 군인 연금, 주택 연금 말고도 가장 최근에 등장한 새로운 종류의 연금이 햇빛 연금이다. 햇빛 연금은 2021년에 전라남도 신안군이 태양광 발전 사업에서 나오는 수익금을 주민들에게 연금처럼 지급하면서 등장한 새로운 연금이다.

 

 

신안군은 행정구역 전체가 1,004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신안군은 광활한 갯벌과 천일염 생산으로 유명하며 홍도, 흑산도 등 아름다운 해상 국립공원이 있다. 1969년에 무안군으로부터 분리되어 새로운 무안이라는 뜻으로 신안(新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인구가 10만 명을 넘었으나 2025년 8월 기준으로 인구수는 38,930명으로서 인구가 점점 줄고 있다.

 

2020년 기준으로 신안군의 염전은 전국 염전 면적의 64%를 차지하고 천일염 생산량은 전국 생산량의 약 80%를 차지한다. 2006년에 처음 당선된 박우량 군수는 “햇빛과 바람이 우리에겐 중동의 기름과 같다”라고 말하면서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를 이용하여 주민들과 전력 이익을 공유하는 연금 제도를 구상하였다.

 

태양광 사업을 추진하자 주민 가운데는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해로운 중금속이 나온다.”, “전자파 때문에 암이 발생한다.” 등등 가짜뉴스가 심각했다. 박우량 군수는 주민들을 일일이 만나 설득하였다. 태양광 발전소는 주로 폐염전 부지나 염해지를 활용하여 만들었다. 염전 주인들이 연로해지고 인력을 구하기가 어려워지자, 염전을 태양광 발전으로 용도 변경하는 주민들도 나타났다.

 

박우량 군수는 2018년에 ‘신재생에너지 개발 이익 공유제’ 조례를 제정하였다. 주민들이 주민조합을 설립하여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발전사업 법인에게 돈을 빌려주고 전기를 한전에 팔아 나오는 이익금을 공유하는 연금 제도를 설계하였다. 신안군은 태양광 발전으로 나오는 수익금의 45%는 태양광 발전소의 유지관리비와 부지 임차료 등으로 쓴다. 수익금의 30%는 공동기금으로 만들어 지역 복지사업과 교육 사업에 지출한다. 나머지 25%를 주민조합에 가입한 주민에게 지역사랑상품권으로 지급하여 지역 경제를 살리게 한다.

 

주민들의 협조와 호응으로 신안군은 2021년에 전국 처음 8개 섬 1,300명 주민에게 18억 원의 햇빛 연금을 주었다. 연금 수혜자는 해마다 늘어나서 2024년에는 햇빛연금과 바람연금을 합쳐서 18,997명(전체 군민의 49%)에게 82억 원의 연금을 지급하였는데 가장 많은 연금을 받은 사람은 1년에 272만 원을 지급받았다. 연금 지급 이후 신안군은 인구 감소세가 증가세로 전환되어 다른 지자체의 부러움을 받고 있다.

 

 

햇빛연금이 성공하려면 주민 사이 분쟁을 방지하기 위하여 수익분배 기준을 사전에 협의하고, 수익금의 운영을 투명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신안군은 주민대표회의를 통해 정기적으로 수익분배기준을 점검하고 있다. 신안군 말고도 영암, 해남, 여주시 등 다른 지자체에서도 햇빛연금 제도를 준비 중이지만 주민참여율이 신안군만큼 높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햇빛연금은 새롭고 매력적인 제도이지만 전국적으로 확산하기 전에 해결해야 할 난관이 있다. 재생에너지가 대규모로 생산되면 전력 공급 초과에 따르는 문제점들이 나타난다.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수요보다 많으면 송ㆍ배전망 한계로 인해 발전을 강제로 중단하는 ‘출력 제어’ 사태가 발생한다.

 

본토와 연결하는 전력망이 없는 제주도에서는 재생에너지 출력이 너무 많아서 문제가 되고 있다. 제주도에서는 2015년에 전기 수요에 견줘 발전량이 너무 많아서 풍력발전의 일시적인 출력 제어가 3차례나 발생했다. 2024년에는 풍력 51회, 태양광 32회를 합하여 모두 83회 출력 제어가 발생하였다.

 

현재는 전력 수요가 낮은 호남과 경남 지역에 태양광 발전이 집중되어 있다. 재생에너지를 대량 생산하기 전에 전력의 최대 수요처인 수도권까지 연결되는 전력망 확충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정부에서는 재생에너지의 생산지인 서남해안에서 대규모 전력 수요지인 수도권의 산업단지를 연결하는 ‘에너지 고속도로’ 구축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에너지 고속도로 구축은 많은 예산과 기술개발이 필요하다. 정부 발표에 의하면 1단계로 2030년까지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를 구축하기 위한 사업비는 약 12조의 예산이 필요하다. 2단계로 2040년까지 남해와 동해를 포함하는 전국 U자형 에너지 고속도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20조~50조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일부 분석에서는 100조 원까지 예측하기도 한다.) 한국전력은 적자 회사다. 2024년 기준 205조 원이나 되는 총부채를 안고 있다. 그러므로 에너지 고속도로는 순전히 정부 예산으로 건설해야 할 것이다. 재생에너지를 값싸게 생산해도 운반 비용이 크다면 재생에너지의 경제성은 감소할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나라가 해결해야 할 가장 심각한 문제는 수도권 집중이다. 국토 면적의 11%에 불과한 좁은 공간에 정치, 경제, 교육, 문화와 산업 시설이 모두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집중 결과 2024년 기준으로 전체 인구의 50% 이상(약 2,300만 명)이 수도권에 밀집하여 살고 있다. 전국 총자산(富)의 62%가 수도권에 집중된 것이다.

 

이러한 수도권 집중의 결과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점이 부동산 가격 폭등이다. 부동산 가격의 폭등은 미래를 이끌어갈 청년 세대의 꿈과 희망을 앗아간다. 또한 2023년 기준으로 수도권 전체 가구 가운데 53%를 차지하는 무주택자에게 절망감을 안긴다. 수도권의 부동산 값폭등은 지방에 사는 사람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하며, 지역 소멸 현상을 가속한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현실 진단을 인정한다면, 수도권 집중을 전제로 추진하는 에너지 고속도로는 막대한 비용 문제 말고도 ‘국토의 균형발전’과 ‘모든 국민의 행복’이라는 측면에서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서울대 환경대학원의 윤순진 교수는 에너지 고속도로 대신에 ‘지방 에너지 도로’를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윤순진 교수는 대규모 송전선 건설에 의존하는 중앙집중형 에너지 고속도로 대신 전국의 각 지역 특성에 맞는 재생에너지 발전 단지를 만들고 가까운 곳에 데이터 센터, AI 산업 단지, 반도체 산업 단지 등을 배치하면 전기의 이동 거리가 짧은 지역분산형 지방 에너지 도로를 건설해도 충분하다고 주장하였다.

 

재생에너지에 기반을 둔 햇빛연금이라는 좋은 제도를 전국으로 확대하려면 중앙집중형 에너지 고속도로 대신 지역분산형 지방 에너지 도로의 건설이 필요하다. 그러나 충분하지는 않다. 과거 노무현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정책의 실패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지방 에너지 도로 건설 정책은 새 정부에서 추진하는 교육 정책 ‘서울대 10개 만들기’와 반드시 결합해서 추진해야 한다.

 

이러한 결합 정책이 성공해야 수도권 인구의 분산과 지방의 인구 소멸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정치의 궁극적인 목적은 모든 국민이 전국 어디서나 행복하게 잘 사는 나라를 건설하는 일이 아니던가?

 

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muusim222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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