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곳에 따라 내리던 비나 눈이 그치고 하늘이 갤거라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밖으로 나선 분들은 마냥 맑은 하늘을 반기기 어려우실도 있을 것 같습니다. 된바람과 함께 추위가 몰려 올 거라는 기별이 있으니 말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런 날씨를 두고 "비 온 뒤에 기온이 뚝 떨어진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저 '춥다'는 말로는 궂은 날씨가 떠난 자리에 휑하니 불어오는 이 바람의 헛헛함과 매서움을 다 담아내기 어렵습니다. 이럴 때, 그냥 춥다는 말을 갈음해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 쓰시던 좀 다른 느낌의 '비거스렁이'라는 말을 꺼내 봅니다.

'비거스렁이'는 '비가 갠 뒤에 바람이 불고 기온이 낮아지는 현상'을 뜻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생각을 하나 더해봅니다. 비 온 뒤가 '비거스렁이'라면, 눈 온 뒤는 '눈거스렁이'라고 불러보면 어떨까요? 비록 아직 사전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비' 자리에 '눈'만 갈아 끼우면 얼마든지 만들어 쓸 수 있는 것이 우리말의 말맛입니다. 비든 눈이든 떠난 뒤끝이 매서운 건 매한가지니까요.
이 말들이 우리 마음을 끄는 까닭은 그 말이 주는 야릇한 '까칠함'에 있습니다. 고분고분 물러가지 않고 무언가를 '거스르다'라고 할 때처럼, 입안에서 뭔가 걸리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비구름이 땅을 적시고 떠나면서, 혹시나 사람들이 금세 자기를 잊고 맑은 햇살만 반길까 봐 딴지를 놓는 '날씨의 뒤끝' 같다고나 할까요. 마치 동무가 집에 가기 아쉬워 문앞에서 늑장을 부리듯, 비나 눈이 떠나기 아쉬워 괜히 찬 바람을 휙 뿌리고 가는 모습. 그것이 바로 '비거스렁이'와 '눈거스렁이'인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비나 눈이 그친 뒤 유난히 쌀쌀해진다면, 날씨가 고약한 게 아니라 비가 떠나기 아쉬워 잠시 심술궂게 '거스렁이'를 피우고 있는 것이라 여겨주시기 바랍니다.
갑작스러운 추위에 당황했을 둘레 분들에게, 혹은 으슬으슬한 기운에 옷깃을 여미는 동무에게 이렇게 말을 건네보세요. "비 그쳤다고 마음을 놓았더니 비거스렁이가 제법 매섭네. 비가 가기 싫어서 심술부리나 봐. 날씨도 저러는데, 우리 뜨끈한 국물 먹으러 갈까? 몸 좀 녹이게."
궂은 날씨조차 '떠나는 비의 뒷모습'으로 알아차리는 마음, 기상청의 날씨 알림에는 없는 우리말의 따뜻함입니다.
[오늘의 토박이말]
▶ 비거스렁이 [명사] 비가 갠 뒤에 바람이 불고 기온이 낮아지는 현상. 또는 그 바람. 《표준국어대사전》
▶ 눈거스렁이 [응용] 눈이 그친 뒤에 바람이 불고 기온이 낮아지는 현상. (사전에는 없으나 '비거스렁이'를 본떠 만들어 쓸 수 있는 말)
[여러분을 위한 덤]
글을 쓸 때 "비가 그치고 나서 갑자기 바람이 불고 추워졌다"라는 풀이하는 듯한 문장 대신 이렇게 써보세요. "여러 날 내리던 비가 그치자마자, 심술궂은 비거스렁이가 들이닥쳐 사람들의 젖은 옷깃을 여미게 만들었다."
'꽃샘추위'가 봄을 시샘하는 바람이라면, '비거스렁이'와 '눈거스렁이'는 떠나는 비와 눈이 아쉬워 시샘하는 바람이라고 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