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르지 않는 철원의 봄

  • 등록 2026.04.11 10:47:21
크게보기

단단한 대지가 건네는 따스한 위로를 받는다
[정운복의 아침시평 305]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시인 이상화는 “빼앗을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노래했지만

철원은 6.25를 통하여 빼앗은 들인데….

그 빼앗은 들에도 봄이 오고 있습니다.

 

겨울의 끝자락이 유난히 길고 매서운 곳,

그래서 그 땅에 찾아오는 봄은 그 어느 곳보다 절절하고 극적입니다.

한반도의 허리, 철원의 봄은

단순히 계절의 바뀜을 넘어선 생명의 승리와도 같습니다.

 

철원의 봄은 소리로부터 시작됩니다.

꽁꽁 얼어붙었던 한탄강의 주상절리 사이로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깨지는 파열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지요. 수만 년의 세월을 견딘 현무암 협곡 사이로 흐르는 옥빛 물줄기는, 겨우내 멈췄던 대지의 혈관이 다시 뛰기 시작했음을 알립니다.

 

차가운 강물 위로 피어오르는 물안개는 마치 대지의 긴 안도의 한숨 같습니다.

철원의 봄은 색깔로 기억됩니다.

철원평야의 드넓은 벌판이 누런빛을 벗고 옅은 연둣빛으로 물들어 갈 때,

그 위를 수놓는 것은 이제 떠나갈 준비를 하는 두루미들의 우아한 날갯짓입니다.

 

사람의 발길이 닿기 어려운 비무장지대(DMZ) 안쪽에는 얼레지, 바람꽃, 얼음새꽃 같은 들꽃이 수줍게 고개를 내밉니다. 가장 치열했던 전쟁의 상처 위로 가장 부드러운 꽃잎이 돋아나는 풍경은 역설적으로 숭고하기까지 합니다. 부서진 벽 사이로 봄볕이 깊숙이 스며드는 노동당사의 아침은 철원만의 독특한 정취를 자아냅니다. 붉은 벽돌의 거친 질감과 대비되는 화사한 벚꽃잎들이 바람에 날려 옛 건물터에 내려앉습니다. 아픈 역사의 흔적을 봄꽃이 덮어주는 그 순간, 철원은 과거의 슬픔을 딛고 내일의 희망을 노래하는 공간이 됩니다.

 

 

철원의 봄은 서두르지 않습니다.

느리지만 단단하게, 차가운 흙을 뚫고 올라오는 민들레처럼

그곳의 봄은 화려함보다 살아있음의 경외감을 우리에게 선사합니다.

 

철원의 봄을 만나러 가는 길은 투박하지만, 진실한 자연의 환대를 받는 일입니다.

이번 봄, 그 단단한 대지가 건네는 따스한 위로를 직접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정운복 칼럼니스트 jwb11@hanmail.net
Copyright @2013 우리문화신문 Corp. All rights reserved.


서울시 영등포구 영신로 32. 그린오피스텔 306호 | 대표전화 : 02-733-5027 | 팩스 : 02-733-5028 발행·편집인 : 김영조 | 편집고문 서한범 | 언론사 등록번호 : 서울 아03923 등록일자 : 2015년 | 발행일자 : 2015년 10월 6일 | 사업자등록번호 : 163-10-00275 Copyright © 2013 우리문화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ine996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