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피로를 씻는 국 한 그릇, 다슬기국

  • 등록 2026.04.23 11:4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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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건강] 1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지난 2019년부터 2023년까지 <한방으로 알아보는 건강상식>를 연재했던 유용우 한의사가 이제 새롭게 <음식과 건강>이란 이름으로 연재를 시작합니다. 우리에게 전해진 귀중한 의서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식약동원(食藥同源)'이라 하여 “음식과 약은 본질적으로 같다.”라고 합니다. 따라서 유용우 한의사는 이번 연재를 통해 음식으로 건강을 지키는 법을 가 가르쳐 줄 것입니다.(편집자 말씀)

 

 

봄이 되면 괜히 몸이 무겁고 눈이 쉽게 피로해진다. 충분히 쉬었는데도 개운하지 않고, 오후가 되면 집중력이 떨어진다. 흔히 ‘춘곤증’이라 부르지만, 이때의 피로는 단순한 나른함과는 다르다. 겨울 동안 안으로 모였던 기운이 위로 올라오면서, 몸이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할 때 생기는 피로다.

 

이럴 때 예로부터 찾던 음식이 있다. 다슬기국이다.

 

맑은 국물에 쌉싸름한 맛이 도는 다슬기국을 한 숟갈 떠먹으면, 묘하게 속이 풀리면서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이 경험은 단순한 기분의 문제가 아니다. 오랜 시간 축적된 식생활의 감각이 만들어낸 결과다.

 

한의학 고전에서는 다슬기를 ‘석라(石螺)’ 또는 ‘전라(田螺)’로 기록한다. 《본초강목》과 《동의보감》에서는 그 성질이 차고, 열을 식히며, 수분 대사를 돕고 해독 작용을 한다고 설명한다. 특히 간의 열을 풀고 눈을 맑게 한다는 기록이 반복된다. 봄철 피로가 눈의 피로와 함께 나타나는 까닭을 설명해 주는 대목이다.

 

 

현대 영양학적으로 보아도 다슬기는 타우린과 다양한 아미노산이 풍부하여 간 기능 회복과 숙취 해소에 도움을 준다. 철분과 구리 성분은 혈액 생성에 이바지하여 피로 개선에도 연결된다.

 

하지만 봄의 피로를 이해하려면 간만으로는 부족하다.

여기에 반드시 함께 보아야 할 장부가 있다. 비장(脾)으로 우리말로는 ‘지라’다.

 

한의학에서 간은 음식에서 내 몸에 필요한 것을 만드는 공장이자 창고로 기운을 소통시키고 위로 펼치는 역할을 한다. 반면 비장은 재활용 공장이자 창고로 혈액을 관리한다. 백혈구 관점으로 보면 면역의 총사령관이며, 적혈구 관점으로 보면 조혈작용의 충추다.

 

봄이 되면 우리 몸의 기운은 자연스럽게 활발해지면서 상승한다. 문제는 이 상승을 간과 비장이 받쳐주지 못할 때 생긴다. 기운은 위로 올라가고 왕성하게 활동하려 하는데, 아래에서 그것을 만들어주지 못하면 몸은 공허해진다. 그 결과 나타나는 것이 바로 봄철의 무기력과 집중력 저하다.

 

그래서 봄의 피로는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간의 기운이 막혀 생기는 답답함과 눈의 피로고,

다른 하나는 비장의 기능이 약해져 생기는 무기력과 소화력 저하다.

 

이 두 가지가 겹치면, 충분히 먹어도 힘이 나지 않고, 쉬어도 회복되지 않는 상태가 된다.

 

다슬기는 이 균형을 조정하는 데 의미 있는 역할을 한다. 서늘한 성질로 위로 오른 간의 열을 식혀주고, 체내의 불필요한 것을 없애고 기운을 아래로 내려준다. 이 과정에서 막혀 있던 흐름이 풀리면, 간과 비의 기능도 자연스럽게 회복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다슬기를 이해하려면 그 먹이인 이끼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이끼는 땅에서 가장 먼저 태어난 식물로 한의학에서 보면 지구의 원초적인 생명력을 함유하며, 외부에 크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생명을 유지한다. 이러한 존재는 오래전부터 ‘땅의 기운을 가장 직접적으로 품은 생명’으로 여겨졌다. 다슬기는 이 이끼를 먹고 자란다. 결국 다슬기를 먹는다는 것은, 땅에서 시작된 생명의 흐름을 한 번 걸러 받아들이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민간에서는 이를 ‘생명력이 강한 음식’으로 표현해 왔다. 약초 연구가 김일훈 선생 역시 다슬기를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단순히 영양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몸이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방향을 잡아주는 음식이라는 것이다.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다슬기는 몇 가지로 나뉜다. 길고 뾰족한 형태의 참다슬기가 전통적으로 가장 깊은 맛을 내며, 둥글고 작은 좀다슬기는 일반 식당에서 널리 사용된다. 간혹 우렁이 혼용되기도 하므로 형태를 구분하는 것이 좋다.

 

다슬기를 고를 때는 살아 있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기본이다. 껍질(입)이 닫히는 반응이 있는지 확인하면 된다. 요리할 때는 내장을 함께 쓰는 것이 좋다. 쌉싸름한 맛의 상당 부분이 이 내장에서 나오며, 유효 성분도 이 부분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봄의 피로는 단순히 쉬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이를 받쳐주는 신생공장인 간의 기운과 재활용 공장인 비장의 약화가 함께 만들어낸 결과기 때문이다. 따라서 봄의 활력을 획득하려면 간과 비장의 건강을 함께 획득하여야 하며 한약의 도움과 생활의 관리가 필요하다. 더불어 따뜻한 다슬기국 한 그릇은 그 균형을 회복하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깊은 방법이다.

 

유용우 한의사 dolphar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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