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이여 싸게 싸게 오이소, 오이소.

2013.07.12 10:06:26

고려산 아래 다카쿠신사 (高來神社) 2-1

[그린경제=이윤옥 기자]

 

관동의 역사를 말할 때 고대 한국인(도래인)의 활약을 언급치 않고는 설명 할 수 없다. 가나가와현 오이소(大磯)는 조선반도로부터 온 도래인들이 상륙한 지점으로 그들의 활동 무대는 다마천의 고마에지역(多摩川狛江)과 이리마의 고려향(入間川高麗郡)까지 뻗쳐있다. 도래인들은 관동평야 개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야마토조정(大和朝廷)은 황족 일족을 파견하여 적극적으로 이들을 도왔으며 그것은 무사의 발생과 깊은 관련이 있다. 오이소의 다카쿠신사(高來神社), 사이타마의 고마신사(高麗神社), 하코네의 하코네신사(箱根神社)는 관동지역의 유수한 역사를 지닌 신사로 모두 한반도와 깊은 관련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명치정부는 오이소의 고마신사(高麗神社)를 다카쿠신사(高來神社)로 이름을 바꾸어 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1300여년의 고구려 흔적이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이곳의 고구려 역사는 동네 이름에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가나가와현 오이소(大磯)라는 이름의 동네이름은 마치 경상도 말의 오이소(오라의 뜻)” 처럼 들린다. “어서 우리 동네로 오이소. 천 삼백여 년 전 청운을 품고 정착했던 고구려마을로 한국인들이여 싸게 싸게 오이소, 오이소.”라고 손짓하는 것 같다. 

사이타마현의 고마신사(高麗神社, 일본인들은 고구려를 고려라 쓰고 고마 또는 고쿠리라고 부르며 고려국은 고라이라고 부른다)에 관동지방에는 고려라는 이름의 절과 신사가 있었다. 지금은 다카쿠신사(高麗神社)로 바뀌었지만 1897년까지만 해도 고마신사(高麗神社)라고 불리던 이곳은 명치정부 때부터 고래신사(高來神社)로 바뀌었고 발음도 고마와는 전혀 다른 다카쿠신사로 불리고 있어 모처럼 이곳을 찾은 답사팀 일행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명치 정부가 들어서자 황국사관에 맞추어 고사기일본서기속에 나오는 황실관련 신을 모시는 풍조가 확산되는 바람에 기존에 모시던 신을 버리고 황실관련 신을 모시는 신사가 늘어났다. 다카쿠신사도 이때 제신(祭神)을 바꾸었으며 바꾸기 전에는 한반도계 신을 모셨다. <하코네신사유래>에 보면 오이소(大磯)의 고려신사(高麗神社)에서 모시는 신은 고구려계로 고려대신이다.”라고 쓰인 문헌자료를 우리 일행에게 건네준 사람은 현재 다카쿠신사高來神社) 궁사인 와타나베(渡辺幸臣씨였다.

  

   
▲ 한 손 가득히 신사와 관련된 자료를 가지고 나와 다카쿠신사에 대해 설명해주는 와타나베 궁사(왼쪽), 편의점에서 복사까지 직접 해주는 친절한 궁사

새하얀 일본 전통 옷 차림에 허리 아래 부분의 폭넓은 바지만 연하늘색 옷을 입은 궁사(宮司, 신사의 우두머리)는 우리 일행이 신사입구 도리이 언저리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느라 약속 시간을 넘겼는데도 신사 본관 건물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신사를 찾아가기 일주일 전에 미리 전화로 약속한 시각을 정확히 지켜 우리를 따뜻하게 맞이해준 궁사는 사십이 안돼 보이는 잘생긴 남자였다. 손에는 자료인 듯한 서류를 한 줌 쥐고 있던 궁사는 일행 소개를 마치자 공손히 인사하며 다카쿠신사[高來神社]의 유래와 지금은 없어진 고려사(高麗寺. 폐사된 고구려절)에 대한 길고도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꽤나 오래 되어 보이는 다카쿠신사 본당 건물은 그다지 크지 않았으며 이 건물과 나란히 놓여있는 건물은 비교적 후대에 지은듯했다. 그러나 후대의 건물은 사용치 않고 오래된 건물만 본당으로 쓰고 있다면서 궁사는 우리를 본당 건물로 안내했다. 기도의 목적이 아닌 사람에게 본당 내부를 안내하는 경우는 흔치 않는 일이지만 와타나베 궁사는 고구려의 후예를 모시듯 우리를 반기며 본당으로 안내했다. 강요된 신사참배의 쓰라린 역사를 배운 우리로서는 순간 신사내부 구경이 망설여졌지만 그래도 일제강점기 서울 남산에 있던 신사참배길이 아니라 꿈에도 그리던 고구려 조상님을 뵈러 들어가는 심정으로 본당에 들어섰다. 본당 안은 한적한 산골마을의 작은 절 법당 풍경을 연상케 했다. 

   
▲ 원래는 고려사(高麗寺)와 고려신사(高麗神社)가 있었으나 명치정부가 고려사는 폐하고 고려신사만 고래신사(高來神社)로 바꿔(왼쪽)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오른쪽 건물은 신사로 쓰고 있지 않다. 두 건물은 경내에 나란히 있으며 뒤에 보이는 산이 고려산이다.

일본의 신사는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조상을 모시는 사당이다. 일본 안에 8만개나 된다는 신사는 모시는 신이 전부 다르며 대부분 조상신을 모신다. 다다미가 깔린 본당 안 중앙에는 여느 신사처럼 신위가 모셔져 있고 그 밑 단에는 과일과 봉납된(신도들이 바친) 술병들이 포장 채 놓여있어서 언뜻 우리나라 법당과 비슷한 느낌이다. 다만 불상이 놓여 있을 자리에 휘장이 처져있다는 점이 다르다. 마음 같아서는 사당에 모셔진 고구려 조상님께 넙죽 절이라도 올리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궁사는 본당 신위를 향해 묵묵히 서 있는 우리를 향해 오른쪽 벽을 가리키며 아주 중요한 그림 하나가 있다고 소개한다. 약간 컴컴한 본당 안의 오른쪽 벽 위에는 큼지막한 액자가 걸려있고 액자에는 고구려 벽화에서 보았음 직한 인물들이 잔뜩 그려져 있다. 그림 형태는 보통 절이나 신사에서 보는 에마(絵馬소원이나 바람을 적은 작은 표찰로 신사나 절 경내에서 지정된 곳에 걸어두며, 앞면에는 소원을 뒷면에는 백마가 그려져 있거나 12지신 동물 그림도 있다.)같은 데 그림 속 인물들 복장은 고구려인들의 그것과 꼭 닮아있다. 

   
▲ 다카쿠신사 본당 안에 걸린 에마 속의 인물은 영락없는 한국계 인물로 우리에게 최초로 공개했다

와타나베 궁사는 이것의 유래를 묻는 우리에게 에도시대부터 전해져 오는 그림인데 자세한 유래는 잘 모르지만 한국사람들 모습 같다.”라고 말한다. 사이타마의 고마신사(高麗神社)는 대대로 고구려 후손들이 궁사를 하고 있지만 이곳 오이소(大磯) 다카쿠신사(高來神社)는 궁사가 일본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사이타마현 고려마을의 고마신사와는 사뭇 달리 신사의 역사와 유래에 대한 자부심이 적어 보였다. 

사이타마현의 고마신사는 홍보책자만도 수십 종인데 견주어 가나가와현의 다카쿠신사(高來神社)는 제대로 된 자료가 없다. 궁사가 우리에게 설명하려고 들고 나온 자료는 모두 종이가 낱장인데다가 설명할 때마다 낱장인 자료들을 뒤지느라 바쁜 궁사의 모습에서 느끼는 것은 피와 물의 관계로 밖에는 설명할 수밖에 없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것은 바로 이런 신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대대로 이어져온 한국계 궁사가 있는 신사와 일본인이 궁사가 있는 신사의 차이가 바로 이런 것이다. “궁사님이 가진 자료를 얻을 수 있나요라고 물으니 궁사는 약간 난처한 듯 하다가는 우리 신사에는 복사기가 없어요. 시내까지 가야하는데.”라며 말끝을 흐린다. 그러자 일행 중 회원 한 명이 잽싸게 자료를 주시면 저희가 복사 뜨고 다시 돌려드리지요.”라고 되받는다. 우리의 적극적이고 간절한 눈빛이 안쓰러웠는지 궁사는 신사 경내에 세워둔 자신의 승용차에 우리를 태우고 근처 편의점까지 가서 손수 복사를 떠주는 친절을 보였다. 그러나 사이타마현의 고마신사와는 달리 건네준 자료가 그다지 도움이 될 만한 것은 많지 않았다.  

자료는 부족했지만 마음씨 착한 궁사는 신사 구경을 다하고 나오는 우리를 오이소 역까지 궁사복장 차림을 하고 손수 운전하여 데려다 주었다. 몹시 자상한 사람이었다. 이에 우리는 서울에서 가져온 전통 한과 한 상자를 감사의 표시로 건넸다. 오이소까지는 승용차로 채 10분이 안 되는 거리지만 우리는 차 안에서 여러 가지를 물었다. 우선 궁사의 대물림이 궁금했다. 그러자 궁사는 장자가 대를 잇고 있지만 자신은 결혼을 안 한 독신이라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른다고 했다. 의외였다. 큰 키에 잘생긴 궁사가 왜 독신으로 사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한 가지 걱정은 다카쿠신사(高來神社)를 이어갈 후손이 끊기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외동아들에 결혼도 안한 상태라 만일 자손이 없으면 신사의 맥은 끊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제 궁사도 여성시대가 와야 한다며 한분 계시는 누님이 있다는 말을 하는 궁사의 모습에서 수천 년 이어온 남자궁사 시대가 서서히 가고 있음을 느껴본다. 

고려사에서 고려신사로 그리고 다시 다카쿠신사로 바뀐 신사의 운명은 마치 바람 앞에 선 외로운 등불처럼 느껴졌다. 국제결혼이 흔한 요즈음 어디 참한 한국의 낭자라도 있으면 이 다카쿠신사 안주인이 되어 고구려 사당을 지켜주었으면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마을 사람들이 이 신사에 갖는 애정이 각별한데다가 철철이 신사에서는 옛날 방식대로 제사를 깍듯이 모시고 있어 그나마 위로가 된다.

  

이윤옥 기자 59y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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