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롤라장 그리고 디스코!

2013.07.19 21:52:38

[추억의 음악여행 4]

[그린경제=김호심 기자]  80년대 초,

이전에도 마찬가지였지만 학생들에게는 마땅한 놀 공간이 없었다.

친구들과 만나는 약속장소는 동네 빵집(큰 가마솥에 찐빵, 만두, 풀빵 등을 삶아 팔던 집)이 대부분이었고 좀 여유가 있는 아이들은 제과점 등에서 만나곤 했다. 

그나마 생활지도를 나온 선생님에게 걸리는 날은 양아치나 날라리 취급을 받으며, 재수없으면 다음날 교무실로 불려가 먼지가 나도록 흠씬 두들겨 맞곤 했다. 

   
▲ 추억의 롤라장

학생들에게 숨 쉴 공간조차 정해놓고 정해진 방식대로만 삶을 강요하던 시절.... 

사람마다 추억은 언제나 아름답고 돌아가고 싶은 고향으로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은 진절머리가 나는 도려내고 싶은 기억이기도 하다. 

1980년에 고등학교에 진학한 사람이라면, 더구나 시골에서 도시로 유학한 사람이라면 대부분은 정치적인 격변과 도시문화의 충격으로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시기를 살아야 했다. 

너그러운 성격만큼이나 웃음 맑고 붓글씨를 잘 쓰던 어느 선배는 5월의 봄을 뒤로 하고 다시는 올 수 없는 길로 피 흘리며 사라져갔고, 정답던 선생님들 몇은 또 교단에서 쫓겨났다. 

또한 거의 씨족의 구성원으로 형성된 촌에서 자라면서 마주칠 때마다 하루에도 몇 번이라도 인사를 해야 하는 습관에 젖어 있다가 어느 날 도시에서 부딪친 무례(?)와 파격은 정치적인 상황과 맞물려 가치관의 혼돈을 부채질하던 우울한 나날들이기도 했다. 

숨 막히는 새벽 자습시간과 정규수업, 그리고 보충학습까지 마치고 돌아와 눕는 하숙방에서 촌놈의 유일한 취미는 라디오였고 이종환 아저씨의 밤의 디스크쇼, 전영록의 별이 빛나는 밤에, 윤세원의 영화음악 등은 한밤의 청량한 공기와도 같았다. 

   
▲ 70년대 디스코가 한참 인기를 누리고 있을때 77년 독일에서 결성된 여성트리오'Arabesque'

주말이면 친구의 자취방을 찾아 맛도 모르고 들이키던 술 한 잔에 조용필의'돌아와요 부산항에'가 뒤를 이었고 시골에서 생활비라도 부쳐오는 날이면 기껏 한 달 용돈이라야 1~2만원이던 것을 과감히 쪼개서 뒤끝이 깨끗하다는 소문에 속아 캡틴큐를 마시다 머리가 깨지는 경험을 하곤 했다. 

한두 달에 한 번씩 단체로 관람하던 극장영화는 대체로 눈꺼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던 재미없는 영화였으나 간혹 '벤허'같은 멋진 영화도 있었으며, 엉뚱하게도 음악선생님이 팔던 클래식기타 독주회에 억지로 끌려가서 내내 졸다 다음날 근사한 감상문을 베끼던 시절이었다. 

어떤 이유로 나왔던지 상관없이 학교와 집을 벗어난 공간은 잠시만 시간을 때우면 싱그러운 공기가 흐르고 있었으며 그 복판에 '로라장(롤러 스케이트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소풍을 가는 듯 한 설렘으로 접하는 영화, 연주회는 대체로 토요일에 있었기 때문에 끝나면 보통 그 자리에서 파하여 각자 집으로 가는 코스였다. 친구들은 선생님의 눈을 피해 로라장으로 몰렸으며 신나는 몇 시간의 해방을 만끽할 수 있었다. 

   
▲ 아이돌의 원조로 불리는 미국 출신의 팝가수 레이프 (LeifGarrett)

'로라장'은 지하에도 지상에도 그리고 야외에도 있었으나 친구들은 주로 선생님의 눈을 피하기 쉬운 장소를 골라 다녔다.  

처음 타는 녀석은 로라장의 바닥이 느닷없이 벌떡 벌떡 일어나 사정없이 신고식을 치르게 하였으나 이내 익숙하여 빙글빙글 디스코 리듬에 몸을 맡기곤 했다. 

자유, 해방....
암울한 정치도, 무거운 책가방도 그 시간엔 우리를 억압하지 못했다. 

Arabesque의 뽕짝스러운 리듬 같던 HelloMr Monky ,
한국 여학생들을 미치게 하던 레이프 개럿의 'I Was MadeFor Dancing'을 외치며 J Geils Band'ComeBack, Babe.........' 

그렇게 우리들의 검정교복 시절은 가고 있었다.

   
▲ 영화 친구


 
 
** 김호심 : 대성음반 문예부에서 근무했으며 가요114 PD로 활동하며 추억과 함께하는 가요와 팝송을 많이 소개하였다. 현재는 인간문화재 이생강 선생의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으며 국악음반을 기획하고 있다.

김호심 기자 hosim67@hanmail.net
Copyright @2013 우리문화신문 Corp. All rights reserved.


서울시 영등포구 영신로 32. 그린오피스텔 306호 | 대표전화 : 02-733-5027 | 팩스 : 02-733-5028 발행·편집인 : 김영조 | 언론사 등록번호 : 서울 아03923 등록일자 : 2015년 | 발행일자 : 2015년 10월 6일 | 사업자등록번호 : 163-10-00275 Copyright © 2013 우리문화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ine996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