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누가 제보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10년 전에 <KBS 아침마당>에서 ‘4대가 함께 사는 부부성악가’에게 관심을 가지고 취재를 나와 온 가족이 한동안 마음 설렌 적이 있었다.
유학에서 갓 돌아온 무명가수 시절이라 <아침마당>에 나가면 음악 속에서 사랑하며 오손도손 살아가는 <듀오아임>부부가 이 기회에 유명해지겠다는 바람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방송국에서 나와 4시간의 꼼꼼하고 지루한 취재 끝에 우리 가족의 성향이 온화하고 조용하며, 특별히 화제가 될 만한 이색적인 사건이나 불화도 없다는 것을 알고 TV 출연은 결국 성사되지 않았었다.
그때의 아쉬움을 나는 아내 구미꼬에게 이렇게 농담했다. 이참에 아이들을 빨리 장가보내 손주를 보고 5대가 함께 산다면 방송에 확실히 나갈 것이고, 그래도 부족하면 내가 이것저것 사고를 치고 죽일 놈이 될 테니 당신은 잘 참고 며느리로서 시부모님 봉양 잘하면 아침마당 특종이 될 거라고.
돌이켜보면 우리 가족이 아침마당에 못 나간 것이 오히려 보이지 않는 담백한 행복의 징표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범가족들의 모습과 눈물겨운 인생역전의 드라마를 TV에서 보고 감동과 부러움을 느끼지만 다소 많은 프로그램들에서 가족 내의 갈등과 불화를 극적으로 확대시키고 막말 출연자까지 동원하여 자극적으로 방영하는 기법이 방송작가와 프로듀서들의 경쟁력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도 문득 든다.
그런데 최근 우리 가족은 또다시 어떤 지인의 제보로 인해 <KBS 아침마당>과 <인간극장>에서 섭외전화가 오는 화젯거리가 생겼다. 최근 6개월 동안 우리 가족은 양가 부모님 4분이 함께 한 집에 살고 있다는 것을 우연한 모임에서 말한 것이 씨가 된 것이다.
양가 사돈끼리 함께 살게 된 까닭은 이렇다. 할머님께서 돌아가신 후 우리 가족은 줄곧 3대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처가의 부모님께서 노후준비를 위해 살던 아파트를 팔고 편하게 지내시려고 실버타운을 택하여 조기에 입주하셨다. 일본인이신 장모님이 한국에 시집오셔 평생을 고생하셨으니 이제는 살림의 짐을 덜어드리자는 장인어른의 아내 사랑이 내린 결단이셨다.
그런데 막상 생활해보시니 실버타운이 편하기는 하지만 정서적으로 적응하시기가 힘든 상황이 생긴 것이다. 이미 집을 처분하고 들어가셨기에 다시 나오려니 마땅히 갈 곳이 쉽게 정해지질 않는 터에 우리 부부는 부담스러우시더라도 적적하지 않으시게 같은 건물로 오셔서 함께 살기를 건의하였다.
다행히도 우리가 사는 집이 처가 소유의 건물이기에 쉽게 거처가 해결되었다. 이렇게 하여 지하에는 우리 부부가, 1층에는 시부모님이 그리고 2층에는 친정부모님이 함께 거주하게 되어 저녁때면 지하의 큰 식탁에 8명이 모여 앉은 풍경이 잔칫집처럼 매일매일 시끌벅적 화기애애하다.
이렇게 우연과 임시로 시작된 우리 가족의 양가 사돈 한 지붕 세 가족 시도는 전반적으로 성공적인 것 같다. 장인께서도 이제 좀 사람 사는 것 같다는 만족감을 드러내시며 사돈끼리 격 없이 막걸리도 자주 하시고, 좁은 부엌에서는 두 어머님이 설거지를 하시면서 함께 부르는 노랫소리가 흥겹다. 무엇보다도 우리 부부에게는 그저 감사한 일이다.
▲ 아침마당 출연 사진
세상이 많이 변했지만 사돈이란 관계는 아직까지 허물없이 대하기도 어렵고, 예의를 갖추어도 뭔가 어려운 관계로 규정되어 있기에 주위에서 다들 신기하고 궁금해 한다. ‘사돈집과 뒷간은 멀수록 좋다’는 속담을 거스르는 우리 가족의 특별한 시도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네 분 모두 팔순(八旬)의 비슷한 나이에 비해 건강하신 편이라 아직까지 큰 부담이 없지만 이제부터가 문제다. 화장실과 계단이 불편하기에 장기적으로 편하게 모실 수 있도록 계단이 없는 넓은 1층 집을 마련하여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가운데에는 공동 거실과 주방을 마련하자는 것이 앞으로의 계획이다.
언젠가 4대가 함께 사는 가정은 효도수당을 신청하라는 내용의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다. 우리 부부는 외아들이면서 맏딸이기에 언젠가 도래할 양가 부모님을 위한 노인복지의 대안을 이렇게 특별하게 시도해보고 있다. 그냥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게 오래 사는 법을 이례적으로 양가 사돈의 한 지붕 세 가족살이에서 찾을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부부가 함께 창작음악을 하면서 현실의 기준에 얽매이거나 타협하지 않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경계에 서서 창조적인 예술활동을 해오고 있기에 우리 부부의 생활이나 가치관이 남다른 점이 없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면서 음악 예술뿐만 아니라 복지와 가족의 문제들에 대해서도 우리가 그동안 속박되었던 관념을 우리 가족처럼 깨어버린다면 사회적 고민들에 대한 뜻밖의 대안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피를 나눈 자식을 통해 만난 사돈의 인연은 참으로 하늘의 선물임에 틀림없겠다.
굳이 어렵게 느낄 필요가 있을까?
주세페 김 Giuseppe Kim
다재다능한 엔터테이너(예술감독, 팝페라테너, 작곡가, 편곡가, 지휘자, 음악칼럼니스트). 소프라노 구미꼬 김(Kumico Kim)과 함께 K팝페라그룹 '듀오아임(Duoaim)'으로 활동 중
www.duoa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