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비싼 여행 밀포드 트랙

  • 등록 2016.08.22 10:5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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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밀포드 트랙과 쿡 산 등반 ⑤]
뉴질랜드 건국의 기초인 와이탕기 조약

[우리문화신문=이규봉 교수]  비가 정말 많이 온다. 생전 이렇게 많은 비가 이처럼 세차게 온 것은 처음 본다. 오늘은 산발적으로 비가 내린다고 했으니 정말 예보대로 해주면 좋겠다. 이제는 비가 안 오는 것을 바라지 않고 좀 약해주기만을 바라고 있다. 그러나 출발하려는 이 시간까지 기상예보대로 비는 쏟아진다. 8시 되어서 산장 직원이 가도 좋다고 한다. 단 물이 깊은 곳이 있으니 조심히 건너라라며.

 

조금 시간이 지나니 기상예보대로 비가 좀 한산해졌다. 가는 길은 매우 평탄했다. 고도 125미터에서 바다까지 가니 평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비록 높진 않으나 지금까지 겪지 못한 오르내리는 곳이 자주 나타났다. 보이는 경치는 늘 보던 거라 식상하기까지 하다. 비는 심하지 않으나 계속 내린다. 어느 곳이 위험한 구간인가 보았더니 큰 웅덩이가 나온다. 앞서 가던 키 큰 유럽인이 건너는데 그의 무릎 위까지 물에 잠긴다. 나도 무릎 위까지 잠겼으나 키가 작은 아내는 허벅지까지 잠긴다. 허지만 짧은 구간이라 별 어려움 없이 나왔다. 참 이 사람들도 중국인 못지않게 과장이 심한 것 같다. 하긴 늘 안전을 우선 꾀하는 것이야 좋지만.


 

식량이 줄어들어 분명 배낭의 무게가 줄었어야 하는데 오늘이 가장 무거운 것 같다. ? 어깨가 아픈 것을 느끼니까. 이유인즉 아내가 지고 있던 짐이 내게 조금씩 넘어왔기 때문이다. 엄청 큰 소리를 내며 급하게 흘러가는 강(Arthur River)을 옆으로 하고 계속 따라가니 매우 큰 호수가 나온다. 아다 호수이다. 처음 길을 만들 때 이 구간의 바위를 부수고 길을 만든 사람들은 노동자들이었다. 여기서 샌드후라이(Sandfly Point)까지 2킬로미터의 길은 매우 평탄하게 잘 나 있는데 19세기 죄수들이 만들은 것이다.

 

18킬로미터의 길을 5시간 걸려 한 시쯤 샌드후라이에 도착했다. 악명 높은 샌드후라이가 많이 서식하는 곳이라 하여 이렇게 이름을 붙였나 보다. 파리보다 훨씬 작은 이놈에게 물리면 그 가려움이 꽤 오래간다. 심지어 한 달 이상 간다. 그래서 안 물리게 뿌리는 약도 준비했지만 나 역시 손과 발 그리고 머리까지 여러 곳을 물렸다. 손 두 곳에선 물집도 생겼다. 긁었기 때문이다. 12년 전 이곳에서 살 때 막내가 엉덩이에 물려 한 달 이상 고생하는 것을 보았다.



    

 

2시에 출발하기로 한 배가 사람이 여럿이 모이자 먼저 떠난다. 그래서 한 시간이나 일찍 나왔다. 자금까지 그래도 젖지 않았던 엉덩이가 배에 앉으면서 다 젖었다. 배는 덮개도 없는 아주 작은 모터보트였다. 5분도 채 안 걸려 밀포드 선착장에 도착했다.

 

30만원 가까이 드는 밀포드 트랙

 

밀포드 트랙을 하려면 두 가지의 방법이 있다. 하나는 직접 뉴질랜드 환경보전청 홈페이지에서 적어도 가고자 하는 날의 6개월 전에 예약을 하든지 아니면 퀸스타운의 여행사에서 운영하는 상품을 사는 것이다. 전자는 34일이고 후자는 45일이 걸린다.

 

직접 예약하는 경우 경비는 다음과 같이 든다. 테 아나우에서 테 아나우 다운스까지 가는 버스비가 25달러, 이곳에서 배를 타고 한 시간 남짓 가는 데 81달러, 산장에서 사흘 묵는데 하루 54달러로 도합 162달러 그리고 샌드후라이에서 5분 정도 배 타고 나오는데 47달러로 모두 1인당 315달러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30만 원 가까이 든다.

 

정부가 운영하면서도 가격이 매우 비쌈을 알 수 있다. 산장의 경우 거의 아무런 편의시설도 없음에도 도시의 백패커스보다도 결코 싸지 않는 가격을 받고 있다. 특히 알량한 보트에 잠시 타고 내리는데 47달러는 바가지 쓴 느낌도 든다. 그럼에도 세계 각국에서 이 비용을 기꺼이 들이고 찾아오니 할 말은 없다. 오히려 이러한 자연환경을 잘 보존하고 세계인들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일찍 출발하나 마나

 

퀸스타운으로 가는 버스를 찾으려 하는데 마침 우리가 찾던 버스가 거기에 있었다. 버스는 트래킹 센터를 거쳐 버스터미널로 가서 대기한다. 커피 한 잔 할까 찾았으나 터미널 내에 음식 파는 곳은커녕 커피 파는 곳도 없다. 다행히 자판기 원두커피가 있어 동전을 넣고 마실 수 있었다. 나흘 만에 맛보는 커피 맛이란!

 

테 아나우에 올 때 탔던 그 회사 버스를 타고 루트번 트랙이 시작되는 디바이디드(divided)에서 다시 손님을 태우고 테 아나우까지 두 시간이나 걸렸다. 시간이 정해져 있는 버스라 아무리 일찍 도착해도 예약한 손님이 다 오지 않으니 기다릴 수밖에. 아무리 한 시간 일찍 밀포드 사운드를 출발했어도 도착은 매 한 가지이다. 역시 버스는 각 승객을 숙소 근처에 내려준다. 테 아나우에서 다른 버스로 갈아타고 퀸스타운으로 갔다. 트래킹에 참여한 사람들 중에 우리만 바로 퀸스타운으로 간다.

 

7시 반 되어서야 퀸스타운에 도착해 근처에 있는 베이스 퀸스타운 백패커스로 갔다. 방은 7만 원이란 가격에 어울리게 창도 없고 엉성했다. 와이파이도 유료이다. 세상에! 젖은 옷을 모두 빨래하고 말렸다. 그런 후 식당을 찾았으나 너무 늦어 문을 거의 닫았다. 슈퍼에서 오랜만에 과일과 채소를 사고 먹지 않던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으로 퀸스타운의 마지막 정찬을 즐겼다.

 

뉴질랜드 건국의 기초가 된 와이탕기 조약

 

1642년 네덜란드 탐험가인 아벨 타스만(Abel Tasman)은 유럽인 중에서는 뉴질랜드를 처음 발견했으나 첫 발을 디딘 사람은 1769년 영국인 제임스 쿡(James Cook) 선장이다. 그래서인지 남섬 북쪽 끝에는 조수간만의 차를 잘 이용해 바닷길을 건너야 하는 트랙에 아벨 타스만 이란 이름이 붙여있고 남섬 중부에는 뉴질랜드에서 가장 높은 산 아로라키(Aoraki)를 일명 쿡 산(Mount Cook)이라고 한다.

 

당시 흥행하던 고래잡이의 배후기지로 뉴질랜드가 각광을 받으면서 유럽으로부터 본격적인 이민들이 들어오자 토착민인 마오리와 갈등을 빗기 시작했다. 1830년대 프랑스가 뉴질랜드를 식민지화 하려고 하자 영국 정부는 마오리 부족과 조약을 체결하도록 서둘렀다. 이를 와이탕기 조약(Treaty of Waitangi)이라 한다.


 

184026일 북섬 베이 오브 아일랜드에 있는 와이탕기에서 마오리 부족 대표들과 영국 간 체결된 조약으로 뉴질랜드를 건국하는 기초가 된 조약이다. 다른 식민지 나라와 달리 이 조약에서 마오리들에게 토지 소유와 영국 신민으로서의 권리를 인정하면서 조약을 통해 뉴질랜드가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는 매우 보기드믄 방식으로 다른 식민지 나라들은 독립하면서 이러한 불평등 조약을 없앴으나 뉴질랜드에서는 아직도 그 효력을 발생하고 있다. 문제는 급히 만들다 보니 체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3개 조항에 불과하고 조약에 사용된 영어와 마오리어 사이의 단어와 문구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커서 지금까지도 갈등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은 미국과 호주의 원주민과 비교하면 참으로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미국과 호주에서는 그 많던 원주민인 인디언과 애버리진 족이 거의 멸종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보호구역 안에서 살고 있으니 말이다. 원주민들이 정치적인 영역에 진출하는 것은 거의 꿈도 못 꾼다. 자신의 선조들이 대대로 살던 땅을 통째로 모두 빼앗기고 학살당하고 겨우 일부만 목숨을 연명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뉴질랜드의 원주민인 마오리족은 비록 충분하진 않지만 멸종되지 않았고 자신의 언어와 문화를 지금도 누리면서 뉴질랜드의 떳떳한 시민으로서 권리를 향유하고 있으니 말이다.

 

당시 최강의 제국주의 세력인 영국과 원주민이 단일 조약을 통해 한 국가를 형성했다는 역사상 유일한 점을 인정받아 1997년 이 조약은 세계기록유산으로 선정되었다.

이규봉 교수 gblee@pc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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