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을 꿰듯 읊었지만 선에 방해되었을뿐 "백암대사"

2017.07.29 11:23:49

선사들의 시 감상 14

[우리문화신문= 전수희  기자]


오래 머문 산사, , , 언덕

옛 친구 찾아온 지팡이 하나

향기 뜰 나무도 늙어 가을 빛 이르고

누각의 종소리도 멎어 어둠 재촉하네

진락대 주변엔 봉우리만 일만 겹

침계루 밑에는 시냇물도 천굽이

맑은 등불, 책상 앞, 잠도 없는 해맑음

이별 시름 이야기 끝나 식은 재만 헤집네.

 

먼 뫼에 가랑비 걷히고

창이 높아 산들바람 끌어온다

책상 앞 잠깐의 새우잠을

몇 마리 새 울음 꿈을 깨운다.

 

이는 백암대사(栢庵大師, 1631~1700)의 노래로 대사는 13살에 출가하여 금강산의 취미대사(翠微大師, 1590 ~ 1668) 밑에서 9년간 수행하였다. 42살에 영광의 해불암에 주석하였고 46살에는 송광사에서 보조국사의 비와 송광사 사적비를 세웠다.

 

50살 때인 숙종 7(1681) 큰 배가 임자도 앞 바다에 표류되었는데 그 속에 불교 서적이 가득했다. 그 책 가운데는 명나라 평림엽(平林葉) 거사가 교정한 <화엄경소초>, <금강경간정기>, <기신론필삭> 190권이 실려 있었다. 이에 백암대사는 15년간 5천판을 새겨 징광사, 쌍계사에 진장(珍藏)하는 등 평생을 경전 간행과 포교를 필생의 업으로 삼았다.

    

 


<정토보서>에 이르길 일체의 방편 가운데 첩경과 묘체를 찾는다면 염불로 정토를 구하는 것만 것이 없다고 하면서 내 외람되게 승려에 몸담고 있어 불도의 성쇠에 책임이 있으니 경전 간행으로 세상에 유통시킴이 진실한 직분일 뿐이다고 할 만큼 경전 간행에 온 힘을 쏟았다.

 

내 태어남 예순에 또 세해 되었으나

한갓 세월만 허비하고 눈은 이마에 가득

채찍 휘두른 강론 헛된 혀 움직였고

화엄을 꿰듯 읊었지만 선에 방해뿐

파릇한 고운 풍경 누가 임자일까

푸른 뫼, 구름, , 나만의 전유물

이로부터 여기에 마음 멈추어

서장정토 깨끗한 업 정성껏 닦으리.

 

 

 

 

전수희 기자 rhsls64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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