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고 괴로운 삶을 어루만져주는 ‘서낭’

  • 등록 2017.08.13 11: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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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토박이말의 속살 18]

[우리문화신문=김수업 명예교수]  서낭은 사람에게로 와서 사람과 더불어 지내면서 사람이 도움을 청하면 슬프고 괴로운 삶을 어루만져 기쁘고 즐거운 삶으로 바꾸어 주는 하느님의 심부름꾼이다. 아직도 온 나라 곳곳에 지난날 삶의 자취가 남은 마을에는 서낭의 자취도 온전히 사라지지는 않고 조금씩 남아 있다.

 

우리 고향에도 여태 당산이 있는데, 거기에는 새마을 운동이 일어나 베어 버릴 때까지 아름드리 당나무가 한 해 내내 왼새끼를 발목에 두르고 서 있었고, 당나무가 서 있는 동산 위에는 일제가 마지막 발악을 하며 헐어서 불태우던 날까지 당집이 있었다. ‘당집은 서낭이 와서 머무는 집이라 서낭당이 본디 제 이름이고, ‘당나무는 서낭이 하늘과 땅으로 오르내리도록 사다리 노릇을 하는 거룩한 나무이며, ‘당산은 서낭당과 당나무가 있던 동산을 두루 싸잡아 서낭이 노닐던 거룩한 터전이었다.

 

서낭을 서낭당 바깥으로 모셔 내려면 마땅히 머물 자리를 갖추어야 하는데, 그것이 다름 아닌 서낭대. 정월 초나흘부터 보름까지 마을에 지신밟기가 벌어지면 풍물패 맨 앞에는 언제나 서낭이 내린 서낭대가 앞장서서 이끌었다. 초나흘 새벽 그 해 당산을 책임진 산주를 앞세운 풍물패가 서낭당에 가서 내림굿을 벌여 서낭을 내려 모신 서낭대를 마을로 데려온다.

 

그리고 마을에 집집마다 지신밟기가 모두 끝나면 보름밤에 달집을 태우고 마무리 파지굿을 치고 나서 다시 서낭당으로 데려가, 서낭은 방 안 제단에 모시고 장대만 추녀 밑에 걸어 둔다. 글자에 매달린 사람들은 아직도 이런 서낭을 중국 성황(城隍)’이 들어온 것이라 하지만, 알고 보면 오히려 우리네 서낭이 중국으로 건너가 저들의 글자에 적힌 것이다.


 

서낭의 모습은 여느 사람의 눈에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서낭은 자연을 뛰어넘은 신령스러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서낭을 부리며 심부름을 시키는 하느님이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초월적 존재인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사람들은 삶의 굽이굽이를 지나면서 서낭이 사람들과 함께 살아 있다는 체험을 하고 느낌을 받아서 그것을 믿는다. 그런 믿음으로 서낭당도 지어서 서낭이 계시도록 하고, 서낭대도 만들어 서낭을 모시고 다니고, 당나무를 지키고 당산까지 가꾸며 거룩하게 섬긴다.

 

이런 믿음은 물론 서낭을 보내신 하느님이 온 세상을 마련하고 다스린다는 더 큰 믿음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여느 사람은 서낭의 모습을 볼 수 없다고 했지만, 어떤 사람은 서낭의 모습을 볼 수 있는 힘을 받는다. 그런 사람을 무당이라 부른다. 무당은 서낭의 모습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서낭과 더불어 이야기도 나누고 마음까지 주고받을 수 있다. 그래서 여느 사람들이 바란다면 서낭을 불러다 모시고 사람의 바람을 서낭에게 건네고 서낭의 말씀을 사람에게 건네는 노릇, 곧 굿을 벌일 수 있다.

 

서낭은 맡은 몫에 따라 아주 여럿이다. 우선, 온 나라를 맡아서 지키고 돌보는 서낭도 있고, 커다란 고을을 지키고 돌보는 서낭, 마을을 지키고 돌보는 서낭, 집안을 지키고 돌보는 서낭도 있다. 그리고 집안을 지키고 돌보는 서낭에도 대문을 지키는 서낭, 마당을 지키는 서낭, 뒷간을 지키는 서낭, 뒤란을 지키는 서낭, 샘터를 지키는 서낭, 고방을 지키는 서낭, 마구간을 지키는 서낭, 장독간을 지키는 서낭, 부엌을 지키는 서낭, 마루를 지키는 서낭, 안방을 지키는 서낭이 모두 따로 있다.


 

이처럼 자리를 지키며 돌보는 서낭과는 달리 목숨을 다스리는 서낭, 출산을 돕고 돌보는 서낭, 질병을 다스리는 서낭, 재물을 다스리는 서낭, 벼슬을 다스리는 서낭, 농사를 다스리는 서낭, 넋을 돕고 돌보는 서낭처럼 삶의 어천만사를 맡아서 돌보는 서낭들이 따로 있다. 그뿐 아니라 어떤 일이든 어느 자리든 남다른 몫을 맡아서 돌보아 달라고 빌면 얼마든지 그것을 맡아서 돌보아 주는 서낭을 모실 수가 있다. 이렇게 맡은 몫의 뜨레(높낮이)에 따라 우리 겨레에게 서낭은 헤아릴 수도 없이 많다.

 

이런 사실을 두고 우리 겨레가 믿고 살아온 무교는 여러 신을 모시는 다신교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건 아니다. 이들 서낭은 모두 가장 높은 서낭인 하느님의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 수많은 서낭들은 너나없이 하느님으로부터 저마다의 몫과 힘을 받아서 서낭 노릇을 하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사실은 굿판에서 무당이 서낭을 모시면서 노래하는 본풀이에 또렷하게 드러나 있다. 무교의 굿에서 노래하는 본풀이란, 모두가 서낭이 어떻게 하느님한테서 남다른 몫과 힘을 받았는지를 밝혀서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 겨레가 믿고 살아온 무교는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을 믿는 유일신교라 해야 옳다.

 

김수업 명예교수 kse1829@hanmail.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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