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도시의 민속, 특히 서울의 대중문화는 자체의 물질적인 토대도 없이 이러한 계급적인 모순을 안은 채 이식된 외래문화의 영향 속에서 형성ㆍ확대되었다.(중간 줄임) 대중들은 마당극 대신 신극이나 영화를 즐기고 민요나 창 대신 창가(唱歌)를 들었다. 1908년 이후 동물원과 식물원으로 개조되어간 창경궁에서 벚꽃놀이를 즐기게 된 것도, 전차를 타고 다방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벗을 만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도 도시의 대중들이 겪게 된 새로운 민속이다.”
- 《신편 한국사》 ‘민속과 의식주’ -
봄이면 우리나라 곳곳에서 봄꽃잔치가 열리는데 그 가운데서 ‘벚꽃놀이’는 전국적으로 즐기는 꽃잔치의 하나로 자리 잡은 듯하다. 신문, 방송에서 날마다 벚꽃잔치 소식을 내보내고 있지만 썩 유쾌하지는 않다. 벚꽃이 일본의 나라꽃(국화)이기도 하지만 벚꽃놀이 풍습 또한 일본에서 유래한 것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일본은 봄이면 하나미(花見)라고 해서 대대적인 벚꽃놀이를 즐긴다. 그 역사만 해도 나라시대(奈良時代, 710~794)로 거슬러 올라갈 뿐 아니라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노래집인 《만엽집(万葉集), 8세기》에도 벚꽃 관련 시가 43수나 나올 정도로 벚꽃을 즐겼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사정이 다르다. 고전부터 김소월 시인에 이르기까지 봄이면 진달래요, 매화를 주로 노래했지 벚꽃 정서는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옛 사람들은 지금의 우리처럼 무리를 지어 벚꽃놀이를 즐겼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적어도 지금과 같은 벚꽃놀이는 아무래도 일제강점기의 유산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일제강점기의 벚꽃놀이 기사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4월의 기사는 완전히 벚꽃 기사로 도배하다시피 되어있다. 더군다나 그냥 벚꽃을 즐기는 게 아니라 부산일보 1915년 4월 3일치에 ‘안동통신에 따르면 벚나무를 심었다.’는 제목의 기사처럼 삼천리 방방곡곡에 벚나무를 심었다는 기사도 눈에 많이 띈다.
일제에 의한, 일제를 의한 조선땅의 벚나무는 어느 새, 한국인들의 4월을 대표하는 꽃놀이로 자리 잡았으니 썩 유쾌할 수가 없다. 어떤 이들은 벚꽃의 원산지가 제주 왕벚꽃에서 유래된 것인데 뭐가 문제냐고 한다. 정말 지금 한국땅에 심어진 벚꽃들이 제주산 왕벚꽃에서 비롯된 것인지 의심스럽다. 아니 그걸 인정하여 100% 제주산 왕벚꽃 종자라고하자. 그렇다고 해도 벚꽃놀이 풍습자체는 일본의 풍습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