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양종승 박사] 삼각산(三角山)은 높이 837m에 이르는 북한산(北漢山)의 다른 이름이다. 서울특별시 강북구와 경기도 고양시의 경계에 있으며, 최고봉 백운대(白雲臺)를 중심으로 북쪽에 인수봉(仁壽峯), 남쪽에 만경대(萬景臺) 등 세 개 봉우리가 우뚝 서 있다. 그래서 삼각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산(漢山), 화산(華山)이라는 이름도 있으며, 신라 시대에는 부아악(負兒嶽)이라고도 하였다.
삼각산에는 고구려 동명왕의 아들 비류(沸流)와 온조(溫祚)가 산에 올라 살 만한 곳을 찾았다고 하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고, 조선조 개국 때는 무학대사가 도읍지를 정하면서 북한산 최고봉인 백운대 올라 그 맥을 찾아 만경대에 올랐다가 서남쪽으로 비봉(碑峯)에 이르렀다고 하여 이곳 만경대를 한편에서는 국망봉(國望峯)이라고도 부르게 되었다.
삼각산(북한산) 밑자락에 있는 도선사 입구 왼쪽에는 마을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제를 지냈던 약 80여 평의 도당 터가 있다. 이곳에 도당신(都堂神)으로 모셔지는 도당할아버지와 도당할머니를 모시고 매년 도당제를 지내 온 지 오래되었다. 옛 도당 터에는 초가 토담집으로 된 당집이 있었지만 6.25 사변 때 없어지고 말았다.
초가였던 도당 집은 매년 농사일이 끝나면 지붕을 새로 단장하곤 하였지만, 지금은 도당굿을 하기 위해 임시로 천막을 치고 굿이 끝나면 다시 철거하곤 한다. 도당굿에 필요한 제기와 의례 도구들을 보관하였던 당집이 없어진 후부터는 동네에 있는 우이동 경로당에 보관하였다가 행사 때 가져와 사용한다.
삼각산 도당 터가 있는 서울특별시 강북구 수유4동 252번지는 원래 우이동(牛耳洞)이라는 지명으로 불려온 부자 마을이었다. 이 지역은 본래 조선 시대 후기에 한성부 동부 7방 중 하나였던 숭신방(崇信坊) 지역이기도 하였다. 이곳에서 삼각산(북한산)의 백운대와 인수봉을 보면 소의 귀와 같이 보인다 하여 이곳을 소귀, 쇠귀, 우이(牛耳)라고 하였다.
1914년 4월 1일 부제 실시에 따라 성 밖 십오리의 지역이 되므로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에 편입되었다가 1949년 8월 15일 서울특별시 구역 확장에 따라 다시 서울특별시에 편입되면서 우이동이라 하였다. 1995년 1월 1일 서울특별시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현재의 지명 수유동으로 바뀐 것이다.
도시화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이곳 주민들의 생업은 주로 농업과 축산업 위주였다. 일제강점기 전까지는 연안 차씨, 원주 원씨, 전주 이씨 3개 성의 집성촌이었는데, 8·15 광복이 되면서는 순흥 안씨와 문화 유씨가 불어나 5개 성의 집성촌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토박이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외부에서 들어온 여러 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일본강점기 때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이 조선총독부에서 펴낸 《部落祭(부락제)》에 보면, <京城府外 牛耳里の山祭>라는 제목의 삼각산 마을 제의에 관해 설명되어 있다. 우이리는 삼각산 인수봉(仁壽峰) 밑에 있는 약 80호 정도의 부락에서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 삼각산 신령(神靈)을 모시고 제단을 만들어 제사를 지냈다는 내용이다. 이와 같이, 이 책에는 삼각산 도당제 신역(神域)을 비롯한 제관(祭官), 치제제물(致祭祭物), 제의(祭儀) 등이 도당 터 사진과 함께 수록되어 있다. 이는 조선 시대 삼각산에서 행해졌던 국행제의와는 별개의 것이다.
《숙종실록》 숙종 33년(1707) 8월 29일 조에 보면, 삼각산에서 기우제(祈雨祭), 포제(酺祭, 논밭의 충해가 심할 때 그 피해를 물리치기 위하여 지내던 제사), 기설제(祈雪祭, 눈이 오지 않을 때 눈 오기를 바라던 제사), 해괴제(解怪祭, 절의 부처가 땀을 흘리거나 나라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을 때 지내던 제사), 탄신축수재(誕辰祝壽齋, 주상(主上)의 장수를 빌기 위하여 올리는 재) 등의 국행의례가 중사(中祀)로 행해졌지만 이는 오늘날 민간들에 의해 전승되고 있는 도당제와는 별개의 것이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도당제는 민간에서 자체적으로 무당과 지역민들이 자신들의 안녕과 풍농을 위해 행해 온 순수 마을대동제이다.
마을 대동제로 치러지는 삼각산 도당제는 온 마을 사람들이 참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의례는 강신무당과 전문악사를 불러 큰굿으로 행하고, 마을수호신으로 모셔지는 도당할아버지와 도당할머니는 마을 사람을 수호하고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관장하며 마을민의 대동단결을 모색하게 한다. 이러한 의례 내용과 기능을 가진 삼각산 도당제는 넓게는 우리나라 전역에 전승되는 마을대동제와 대동소이하고 좁게는 서울 경기지방 곳곳에서 전승된 당굿, 도당굿, 부군당굿 등과 같은 형태의 것이다.
삼각산 도당 터에서 행해지는 도당굿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 개의 마을이 합심하여 제를 지냈었다. 아랫말, 웃말, 그리고 양지편이라고 불리는 양지촌(개천 건넛마을로서 현재는 도봉구 관할임) 등 3개의 마을 사람들이 해마다 농사일을 끝낸 10월 무렵에 도당곗날이라고 하여 벼 한 말씩을 모아 두었다가 다음 해 3월 굿을 하였다. 현재는 웃말 주민들이 주동이 되어 굿을 하고 있으며 아랫말과 양지말 에서는 몇 집 정도만 협조하고 있는 형편이다.
도당 터 위쪽에는 당신(堂神)을 상징하는 당나무가 있다. 이곳에 〈聖所 三角山 都堂址성소 삼각산 도당지)〉라고 세로로 적힌 빗돌을 세워 두었다. 이곳을 도당할아버지와 도당할머니 내외 당신(堂神)이 좌정해 있는 곳이라 믿는다. 그래서 신성한 이곳은 평상시 사람들이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경계한다.
당신(堂神)의 형태는 기다란 참나무 중간 부분에 나무로 제작된 신칼을 삼베로 감싸 묶어 도당할아버지라고 부르고, 또 다른 참나무에 무명으로 묶어 도당할머니라 부른다. 당나무는 참나무로 만든다. 그리고 이 당나무는 당제 때 마을 남자들 가운데 나이가 지긋이 든 노인 중 생기복덕을 가려 선출된 하주 두 명이 들고 서서 당신(堂神) 내외분을 강림시킨다.
그리고 당제가 끝나면 빗돌이 있는 신성한 곳에 세워 둔다. 빗돌 앞에는 짚으로 된 터줏가리가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터줏가리 안쪽에 햇벼를 넣어 둔 두 개의 항아리를 묻어 두었다가 매년 햇곡이 날 때마다 갈아 넣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