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양종승 박사] 평안도 성황대제를 오늘날까지 전승할 수 있도록 크게 이바지한 사람은 평안도 출신으로 한국 동란 때 서울로 월남한 대무당 이선호(여, 李禪好, 1912~1989)다. 이춘옥(李春玉)이라는 이명을 갖고 있었고, 창덕궁의 돈화문 옆 한옥에 살았기에 대궐할머니로도 불렸고, 레슬링 선수 김일 장모이기에 김일이 장모라는 별칭도 있었다.
이선호는 평양 경저리에서 태어나 15살에 신이 내려 당시 50살이었던 임용문에게 내림굿을 받고 무업을 하다 27살 되던 해 극단 단장을 하였던 남편을 따라 서울로 월남하였다.(참조: 황루시, 「재체험을 통한 죽음에의 이해 - 다리굿 구조와 기능」, 《한국의 굿(5) - 평안도 다리굿》, 1985, 84쪽)
열 살 아래인 여동생 이춘홍(여, 李春紅, 1922~1985)도 데리고 함께 살면서 평안도굿을 알리는 데 애를 썼다. 당시 이선호의 전문 장구 악사는 술말이 김연화(여, 金蓮花, 1916~미상)였다. 평안도굿에서의 술말이는 술(소리), 말(언어), 이(행위자)를 뜻하며, 굿의 청배소리와 재담 등을 행하는 전문 악사다. 평양 죽전리 출신 김연화는 어려서부터 평양 권번에 들어가 소리, 춤, 장고를 배워 대단한 기예능을 갖추고 있었던 기녀 출신의 장고 악사였다. 한국동란 때 월남하여 줄곧 이선호 대무당의 평안도굿 술말이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이선호의 여동생 이춘홍에게 장고를 가르쳤다.
이선호 대무당은 1970년대 초 술말이 김연화 그리고 신딸 정대복(鄭大福, 여, 1916~2004), 박인재(여, 1922~1985, 본명 박복덕, 홍릉에 거주하였으므로 홍릉 할머니로 통함) 등과 함께 서울에서 성황대제를 발표하였다. 이때 발표된 이선호의 성황대제는 1937년 펴낸 《部落祭》와 1938년 펴낸 《釋奠, 祈雨, 安宅》 그리고 1980년 펴낸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황해ㆍ평안남북편》 등에 수록된 자료와는 별개로 발표된 것이다.
이후, 이선호 등의 자료는 1972년 <영변 성황대제>라는 이름으로 전국민속경연대회에 나가 세간의 많은 사람으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그리하여 이선호는 평안도굿의 대표적 전승자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때 평안도 본토에서 월남한 많은 실향민이 이선호 단골이 되어 평안도굿이 활성화되는데 이바지하였다. 이선호는 당시 이러한 상황 속에서 대한승공경신연합회(회장 최남억)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많은 활동을 펼치면서 성황대제와 다리굿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키 위해 노력했다.
이선호 대무당의 큰 신딸 정대복은 평안남도 평양시 경저리에서 출생하였다. 평양정진보통학교를 중퇴하고 경림보통학교에 재입학하여 다녔으나 졸업 전에 그만두었다. 열일곱살 되던 해 외아들로 성장한 사관학교 출신과 혼인했다. 남편의 군 생활로 혼인 초부터 떨어져 살았는데 어느 날 남편이 다른 여자를 데리고 들어왔다.
알고 보니 시댁에서 외아들인 남편을 열한 살에 첫 장가를 보낸 뒤 열여섯 살에 두 번째 장가를 들게 하고 또다시 스믈한 살이 되던 해 정대복과 세 번째 혼인을 시켰던 것이다. 정대복은 남편과의 사이에 아들 하나 딸 둘을 두었는데 남편이 다시 장가를 들게 됨으로서 결국 이별하고 말았다. 정대복의 그때 나이 스물셋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신이 짚혔다. 신을 받지 않으려고 많은 애를 썼지만 결국 1944년 4살 위인 이선호를 신어머니로 모시고 내림굿을 받았다. 월남하여서도 신어머니와 재회하여 함께 활동하였다. 정대복은 이선호와 나이 차가 별로 나지 않았지만, 신어머니로 삼은 뒤 깍듯이 모셨다. 이선호도 자신의 후계자로 큰 신딸 정대복을 꼽았다.
정대복은 1970년부터 사단법인 대한승공경신연합회 창립발기인, 이사, 고문 등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1971년부터 평안도굿으로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국태민안기원제, 통일기원남산대제 등 전국단위의 경연대회, 문화축제에 출연하였다. 1996년 일본에서 평안도굿을 공연하였고, 1996년 영국 대영박물관 신축 축하공연, 2001년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린 세계통과의례페스티벌에서 성황대제를 공연하였다.
정대복은 아들이 사업에 실패하면서 재산을 탕진하자 보문동 성북경찰서 근처에 살고 있던 집을 팔고 보광동에 홀로 살다 88살 되던 해에 사망하였다. 정대복의 굿 문서는 그의 신딸 이순희와 김남순에게 전수하였다.
이순희(李順喜, 여, 1935년생)는 이정연으로도 알려져 있다. 1953년 진해 충무여고를 졸업한 뒤, 해병대 소속이었던 군인 남편과 혼인하여 2남을 두었다. 28살 되던 해인 1963년에 신내림을 받고 무속계에 발을 디딘 뒤 삼각산 굿당에서 산파굿(최필순, 여, 1923~1986, 산파 일을 하다 신이 내렸으므로 산파라고 불렀음)을 보고 반하여 평안도굿을 배우게 되었다. 이후, 1977년부터 정대복 문하에서 입문하여 본격적으로 평안도굿을 전수받았다. 서울시 종로구 익선동에서 살다가 보광동, 경기도 하남, 서울 강남을 거쳐 현재는 서울 한남동에 살고 있다.
오늘날 평안도굿의 원로 대무당으로 알려진 이순희는 신어머니 정대복과 함께 평안도굿을 알리는데 애써 왔다. 신어머니와 함께 사단법인 대한승공경신연합회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그리고 1991년 국제샤머니즘학술대회 성황굿 공연, 1995년 일본 국제샤머니즘학술대회 성황대제 공연, 2000년 남산 성황대제 공연, 2001년 세계통과의례페스티벌 성황대제 공연,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통일기원대제 등에서 성황굿을 펼쳤다.
그리고 2007년 성황대제가 평안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자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현재 이순희와 함께 활동하고 있는 성황대제 전승자로는 송석란(여, 1945년생, 무녀), 이흥식(남, 1947년생, 장구악사), 박수진(여, 1968년생, 장구악사), 송기영(남, 1954년생, 장구악사), 최승운(남, 1962년생, 피리악사), 이해경(여, 1959년생, 무녀), 최종인(여, 1961년생, 무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