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글ㆍ사진 이영일 생태과학연구가] 배롱나무[학명: Lagerstroemia indica L.]는 부처꽃과의 ‘넓은 잎 낙엽 떨기로 키가 작은 나무’다. 영명은 ‘Crape Myrtle’이고, ‘Indian Llilac’이라고도 한다. 흰배롱나무(for. alba)는 흰색 꽃이 핀다.
꽃이 100일 동안 오래 피어서 목백일홍(木百日紅), 백일홍나무라 한다. 자세히 살펴보면 한 송이 꽃의 수명이 오래가는 것이 아니라 여름 내내 몇 달씩 장마와 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줄기차게 꽃이 피어서 그런 이름을 얻은 듯하다. 이런 예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꽃은 수명이 짧은 것으로 여기는데 천일홍(千日紅)이니 만수국(萬壽菊)이라고 하는 이름에서 졸 수 있듯이 꽃이 오래도록 피어 있어서 신기하게만 보여서 꽃 이름이 된듯하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이 식물의 매끄러운 줄기가 오히려 더 인상적이었던지 원산지인 중국에서는 파양수(怕痒樹)라는 이름으로 부르는데 이것은 ‘매끄러운 줄기를 긁어주면 모든 나무 가지가 흔들리면서 간지럼을 타므로 파양수(怕痒樹)라 한다.’라고 《군방보》라는 책에 기록되어 있다. 일본에서는 또 매끄러운 줄기가 너무나도 미끄러워서 나무타기의 명수인 원숭이도 미끄러져 떨어지는 나무라 하여 ‘사루스베리’라고 부른다.
이 나무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심어진 역사는 오래되었으므로 곳에 따라서는 재미있는 이름도 얻고 있다. 충청도에서는 「간지럼나무」라 하여 중국명 파양수를 우리말로 이름 붙였는가 하면 제주도에서도 「저금타는 낭」 곧 간지럼 타는 나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배롱나무를 중국에서는 옛날 당나라 때부터 각 성(省)의 관아에 많이 심었다고 하며 당 현종은 배롱나무를 양귀비(楊貴妃)보다 더 사랑하였다고 한다. 이 점을 강희안도 그의 책 《양화소록(養花小錄)》에서 밝히고 있다.
대표적인 것은 천연기념물 168호인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양정동에 있는 수령 8백 년 된 양정동의 배롱나무 노거수다. 이 나무는 고려 중엽 때 안일호장(安逸戶長)을 지낸 동래 정씨의 시조인 정문도공(鄭文道公)의 무덤 앞 동쪽과 서쪽에 심었던 것인데 그것이 자라나서 지금은 키가 8.3m, 8.6m에 가슴둘레가 무려 3.9m와 4.1m씩 된다.
배롱나무가 옛터의 명성을 잃지 않는 곳이 여럿 있다. 소쇄원, 식영정 등 조선 문인들의 정자가 밀집해 있는 광주천의 옛 이름은 배롱나무 개울이라는 뜻의 자미탄(紫薇灘)이며,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담양 후산리 명옥헌에는 키 4~10여 미터, 줄기 둘레 30~150센티미터의 고목 100여 그루가 모여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배롱나무 숲을 만들고 있다. 그밖에도 강진 백련사, 고창 선운사, 경주 서출지 등도 배롱나무 명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민속에서 배롱나무를 꺼린 가장 심한 경우를 제주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제주도에서는 배롱나무를 앞서 말했듯이 ‘저금타는 낭’이라 하여 무덤에 심는 나무라고 여겨 집안에는 절대로 심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배롱나무의 껍질이 매끄럽고 회색이므로 나무의 껍질(흔히 갈색이고 우둘투둘한 것)이 없는 것으로 착각하여 살이나 피부가 없는 뼈로 상징하고 빨간 꽃이 피는 것을 핏물로 생각하여 죽음을 연상하므로 불길하다고 집안에는 심지 않게 되었다. 또 남부지역에서는 귀신을 쫓는다고 하여 무덤 주변에 흔히 심는 풍속도 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이 나무를 일명 자줏빛 꽃이 핀다는 뜻으로 자미화(紫薇花)라고도 하여 무척 사랑한 것은 물론 이 꽃이 많이 피는 성읍을 자미성(紫薇省)이라고 이름 붙였을 정도며 시가(詩歌)에도 읊조릴 정도였다. 나라와 민족이 다르면 그들의 기호와 풍속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배롱나무에서 다시 깨닫게 된다.
한방에서는 자미화(紫薇花), 백일홍(百日紅), 만당홍(滿堂紅)이라 하여 약재로 활용한다. 흔히 정원이나 공원 등에 심어 꽃을 즐기기도 한다. 꽃말은 ‘부귀, 수다스러움, 웅변, 꿈, 행복, 헤어진 벗에게 보내는 마음’이다.
배롱나무는 불법(佛法) 신앙의 육불(六不)에 견주기도 한다. 육불 이란 삶(生)과 멸(滅), 더러움(垢)과 깨끗함(淨), 불어남(增)과 줄음(減)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에는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는 것이다.
성삼문(成三問, 1418∼1456)은 백일동안 꽃이 피는 배롱나무를 한편 시로 읊었다.
昨夕一花衰 어제저녁에 꽃 한 송이 떨어지고
今朝一花開 오늘 아침에 한 송이가 피어.
相看一百日 서로 일백일을 바라보니,
對爾好衡杯 너를 대하여 좋게 한잔하리라.
도종환 시인은 시 〈백일홍〉에서 다음처럼 노래한다.
한 꽃이 백일을 아름답게 피어 있는 게 아니다.
수 없는 꽃이 지면서 다시 피고
떨어지면 또 새 꽃봉오릴 피워 올려
목백일홍나무는 환한 것이다.
시인의 관찰력은 정확하다. 꽃 하나하나가 이어달리기로 피기 때문에 100일 동안 핀다고 생각한 것이다. 가지 끝마다 원뿔 모양의 꽃대를 뻗고 굵은 콩알만 한 꽃봉오리가 매달려 꽃을 피울 차례를 얌전히 기다리고 있다. 아래서부터 꽃봉오리가 벌어지면서 꽃이 피어 올라간다. 대부분 꽃은 꽃대마다 거의 동시에 피는 경향이 있으나 배롱나무꽃은 아래서부터 위까지 꽃이 피는 데 몇 달이 걸린다. 꽃잎은 모두 오글쪼글 주름이 잡혀 있다. 이글거리는 여름 태양도 주름을 펴주지는 못한다. 주름 꽃잎은 배롱나무만의 특허품이다.
배롱나무에도 슬픈 전설이 전해온다.
옛날 남해안의 어느 바닷가 마을에서는 해룡(海龍)이 파도를 일으켜 배를 뒤집어 버리는 심술을 막기 위해 해마다 처녀를 바치는 풍습이 있었다. 그해에도 뽑힌 처녀는 바닷가 바위에서 해룡이 데려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마을에 온 왕자님은 안타까운 사정을 듣고 처녀 대신 바위에 앉아 있다가 용을 퇴치한다. 왕자는 처녀와 사랑에 빠졌지만 마침 출몰한 왜구를 퇴치하기 위하여 100일 뒤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마을을 떠나 버린다. 매일 먼 바다를 바라보며 왕자를 기다리던 처녀는 그만 깊은 병이 들어 100일을 다 기다리지 못하고 죽고 만다. 돌아온 왕자는 그녀를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고 돌아갔다. 이듬해 무덤 위에는 나무 한 그루가 자라더니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마치 왕자를 기다리듯 매일 조금씩 피는 꽃이 100일을 넘겨 이어지므로, 사람들은 이 나무를 백일홍나무라 부르게 되었다.
중국 원산의 배롱나무는 높이 약 5m로 구불구불 굽어져 자란다. 나무껍질은 옅은 갈색으로 매끄러우며 얇게 벗겨지면서 흰색의 무늬가 생긴다. 타원형의 잎은 마주나고 잎은 타원형이거나 달걀을 거꾸로 세워놓은 모양이며 길이 2.5∼7cm, 나비 2∼3cm이다. 겉면에 윤이 나고 뒷면에는 잎맥에 털이 나며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꽃은 7∼9월에 붉은색으로 핀다. 꽃차례는 길이 10∼20cm, 지름 3∼4cm이다. 꽃잎은 꽃받침과 더불어 6개로 갈라지고 주름이 많다. 수술은 30∼40개로서 가장자리의 6개가 길고 암술은 1개이다. 산천초목이 모두 초록 세상이라 배롱나무꽃은 한층 더 돋보인다. 열매는 삭과(蒴果, 속이 여러 칸으로 나뉘고 각 칸에 많은 씨가 든 열매)로서 타원형이며 10월에 익는다.
배롱나무는 가벼운 상처에서 약간의 피가 흐를 때 지혈(止血)을 하고 부은 종기나 상처를 치료하는 효능을 가지고 있으며 혈액순환을 활발하게 해준다고 한다. 효과가 있는 질환으로는 월경과다, 산후에 출혈이 멎지 않는 증세, 대하증, 설사, 장염 등이다. 꽃이 완전히 피었을 때 햇볕에 말린 약재를 1회에 2~4g씩 200cc의 물로 달여서 복용한다. 외상으로 인한 출혈을 멈추게 할 때는 말린 약재를 가루로 빻아 상처에 뿌리거나 생꽃을 찧어서 붙인다.
[참고문헌: 《원색한국식물도감(이영노, 교학사)》, 《한국의 자원식물(김태정, 서울대학교출판부)》, 《우리나라의 나무 세계 1(박상진, 김영사)》,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Daum, Naver 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