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조선조 헌종~고종 연간에 활동했다는 충청도 양반 가문의 비가비 출신, 정춘풍(1834~1901?)의 소개와 그에 의해 불려지기 시작했다는 <소상팔경>을 소개하였다. 소상의 8경은 1.소상야우(瀟湘夜雨) 2. 동정추월(洞庭秋月) 3.원포귀범(遠浦歸帆) 4.평사낙안(平沙落雁) 5. 어촌석조(漁村夕照) 6.강천모설(江天暮雪) 7.산시청람(山市晴嵐) 8.연사만종(煙寺晩鍾) 또 는 한사모종(寒寺暮鍾)등 등이다. 정춘풍의 이 단가는 그의 후진들인 박기홍, 송만갑 등이 이어 받았다고 하는데, 현재는 무대 위에서 만나기 쉽지 않아 전승 위기를 맞고 있다.
<소상의 팔경> 가운데 첫 장면인 소상강의 밤 비 내리는 모습을 묘사한 <소상야우-瀟湘夜雨)>에 관한 이야기는 앞에서 소개하였기에 이번 주에는 8경 가운데 두 번째 이야기, 동정추월(洞庭秋月)을 소개해 보기로 한다.
동정추월이란 곧, 동정 호수에 떠 있는 가을 달의 모습이다. 밤하늘의 별이나 달은 어느 곳에서 본다고 해도 아름다운 대상이 분명하다. 그것도 가을밤, 넓디넓은 호수 위에 동그랗게 떠 있는 달의 모습이야말로 얼마나 멋진 광경이겠는가! 본문을 통해 이 대목을 감상해 보기로 한다.

“칠백평호(七百平湖) 맑은 물은 상하천광(上下天光)이 푸르렀다. 얼음바퀴 문득 솟아 중천에 배회하니, 계궁(桂宮) 항아(姮娥) 단청하고, 새 거울을 열었는데, 적막한 어룡(魚龍)들은 세를 얻어 출몰하고, 풍림(楓林)에 귀아(歸鴉)들은 빛을 놀라 사라지니 동정추월(洞庭秋月) 이 아니냐.”
위에 나오는 칠백평호란 동정호의 넓은 호수를 가리키는 말이고, 얼음바퀴는 마치, 달이 얼음처럼 맑고 바퀴처럼 둥글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계궁(桂宮)이란 달 안에 있다는 궁의 이름인데, 항아(姮娥) 또는 상아라고도 하는 여인이 하(夏)나라 제후의 아내로 불사(不死)약을 훔쳐 월궁(月宮)으로 도주하였다는 소동파의 시를 노래한 것이리라. 여기에 물고기들과 용이 나타나고, 바람결 까마귀들이 사라졌으니, 이 아름다움이 바로 호수에 뜬 가을 달, 곧 동정추월(洞庭秋月)이 아니겠는가 하며 그 경관에 감탄하는 대목이라 할 것이다.
세 번째 경관은 <원포귀범(遠浦歸帆)>이다, 이 말의 뜻은“아득히 먼 곳으로 떠나갔던 배가 포구로 돌아오는 모습”을 표현한 말이다. 단가에 나오는 노랫말은 이 대목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연파만경(煙波萬頃)은 하늘에 닿았는데,
오고 가는 상고선(商賈船)은 순풍에 돛을 달아
북을 둥둥 울리면서 어기야 더기야 저어갈 제,
보아 알지는 못하여도 다만, 앞에 섰던 산이 문득 뒤로 옮아가니,
원포귀범(遠浦歸帆)이 아니냐.“
연파만경이란 말은 “물결은 연기처럼 일렁이고, 수면은 아주 넓어 하늘에 닿아 있는 듯 보인다“는 표현으로 우리네 인생길을 견줄 때에도 이런 표현은 흔히 쓰고 있다. 산은 제자리에 서 있지만, 배가 그곳으로 향해 갈 때에는 앞에 서 있었으나, 지나가게 되면 뒤로 옮아간다는 표현도 재미있다. 배가 앞으로 가면서 그 자리에 있던 산은 뒤로 옮아가는 듯, 보이는 시간의 개념이라든가, 먼 포구로 되돌아가는 배의 모습이 물과 산 사이에서 멋지게 표현되고 있다.

소상팔경의 네 번째 경관은 평사낙안(平沙落雁)이다. 이는 물가의 평평한 모래 밭에 사뿐히 내려앉는 기러기의 모습을 표현한 말인데, 이 부분의 노랫말을 그대로 옮겨보면 아래와 같다.
“수벽사명양안태(水碧沙明兩岸苔)에 불승청원각비래(不勝淸怨却飛來)라.
날아오는 저 기러기 갈순(葛筍) 하나 입에 물고, 일점(一點) 이점(二點)
점점(點點)마다 행렬 지어 떨어지니 평사낙안(平沙落雁) 이 아니냐.“
위에서 수벽사명양안태란 표현은 “물은 푸르고 모래는 맑고 깨끗한데, 강가의 양 언덕에는 이끼가 끼어 있다는 말이고” 불승청원각비래는 “이곳으로 날아오는 기러기들이 각각의 원한이나 아픔을 물리치지 못하고 행렬 지어 날아 와서는 모래밭에 사뿐히 앉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말이다. 이 말은 흔히 글을 잘 쓸 때, 평사낙안(平沙落雁)에 일필휘지(一筆揮之)란 말을 쓰기도 하는데, 모래사장에 기러기가 사뿐히 내려앉듯이, 단숨에 써 내려가며 마무리하는 명인의 글 쓰는 모습이 되겠다.
다섯 번째의 경관은 어촌석조(漁村夕照), 곧 어촌에서의 해 넘어가는 저녁노을 모습이다. 저녁노을은 반드시 어촌뿐이 아니라, 산촌(山村)이나 농촌(農村) 등등 어느 지역에서도 해 질 무렵의 저녁노을은 아름다움 그 자체일 것이다. 특히, 강이나 바다 위로 떨어지는 붉게 타들어 가는 석양의 낙조(落照) 모습은 그 자태만으로도 장관을 이루기 때문에 석양(夕陽) 석조(夕照)’라든가, ‘서산 낙조’와 같은 표현들이 노랫말로 쓰이고 있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