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귀하께서는 가족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귀중한 기모노를 울산대학교 일본어일본학과에 기증해 주셨습니다. 이 일은 한일ㆍ일한 양국의 문화교류 촉진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이므로 그 고마운 마음에 깊은 감사의 뜻을 담아 이 패를 드립니다” - 원문은 일본어이며 필자 번역-
이는 지난 23일(금) 낮 11시, 울산대학교 일본어일본학과(학과장 홍성목 교수) ‘나라방(다도교실로 쓰는 다다미가 깔린 방 이름, 아래 다다미방)’에서 있었던 <이토 노리코 씨의 기모노 기증식>에서 학과장인 홍성목 교수가 전달한 감사패에 적힌 문구다.

이에 앞서 아침 10시부터는 기모노 기증자인 이토 노리코(伊藤典子, 69) 씨의 <어머니와 기모노, 그리고 소중한 추억(母と着物、そして大切な思い出)>이라는 주제의 강연이 있었다. 강연은 울산대학교 일본어 전공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에 통역 없이 진행되었다. 쉽지 않은 기모노 관련 용어들이 나왔지만, 학생들은 진지한 태도로 경청했고 강연 뒤에는 다다미방으로 이동하여 기모노 시연과 다담(茶談)이 있었다.
“이토 노리코 선생 일가의 귀중한 기모노를 우리 대학에 기증해 주어 기쁩니다. 절대 적지 않은 분량의 기모노를 흔쾌히 허락하시고 특강까지 직접 해주셔서 학생들에게는 매우 의미있는 시간이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를 계기로 한일 양국 문화교류의 물꼬가 트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는 이토 노리코 씨가 특강하기 전 홍성목 학과장이 한 인사말이다.



이번에 기증한 기모노는 모두 41벌이며, 기모노 외에도 기모노 속에 입는 나카주반(長襦袢) 19벌, 하오리(羽織, 반코트 같은 옷) 17벌, 오비(帯, 허리에 매는 넓은 띠) 28장, 미치유키코트(외출시에 입는 긴 코트) 3벌, 조리(기모노 입을 때 신는 신발) 10켤레, 기타 오비조메(기모노 필수 용품), 기타 고모노(小物) 등 무려 10상자 규모다. 아마도 일본 기모노(일체)를 한 번에 이렇게 많이 기증받은 것은 울산대학교가 처음일 것이다.
기증된 이번 기모노는 이토 노리코 씨의 친정어머니(1928~2023)의 옷으로 이토 노리코 씨의 아버지가 의사였던 덕으로 고가의 기모노도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고 있다. 울산대학교에 기모노가 기증되기 과정에는 필자의 중개 작업이 있었다.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필자는 시즈오카현 시모다에 사는 이토 노리코 씨 집을 방문(2024.7.23.~ 8.5.)하여 기모노의 기증 문제를 협의한 적이 있다.
당시 필자에게 공개한 기모노 가운데는 오비 1장 값이 3~5만 엔(1970년대 가격)짜리가 수두룩하였으며, 기모노의 경우는 6~10만 엔짜리 등 구입 당시의 값이 그대로 옷상자에 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일본 물가 대신 당시 1970년대 한국의 물가를 보니 1975년 반포주공아파트 1채 값이 500만 원(50만 엔, 현재 38억, 단순 추정) 하던 시절이었다.




기모노의 값도 값이지만, 무엇보다도 이 귀중한 옷을 선뜻 울산대학교에 기증하기로 결심한 이토 노리코 씨에게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사실 이토 노리코 씨와의 인연은 1999년 필자가 와세다대학에 연구학자로 있을 때였으니 햇수로 26년에 이른다. 필자는 일본어 공부를 시작한 때로부터 올해가 47년째다. 그동안 숱한 일본인 지인을 두고 있지만 이토 노리코 씨만큼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인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사람도 드물었던 기억이다.
그런 뜻에서 자신의 친정어머니가 입던 기모노의 향방에 대해 의논해 왔을 때 필자는 선뜻 “한국 대학에 기증해 달라”고 의견을 타진했고 이번에 울산대학교에서 적극적으로 요청해 와서 기모노 기증이 성사된 것이다.
기모노 기증 과정에서 이토 노리코 씨는 정말 많은 노고를 했음을 밝히고 싶다. 왜냐하면 양복처럼 대충 상자에 담아서 보낼 수 있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옷감이 고급 재료라서 단스(옷을 보관하던 옷장) 속에 보관되어 있던 기모노를 한 벌 한 벌씩 일일이 좀약을 넣어 와시(和紙) 포장을 해야 했고, 그렇게 포장한 뒤 또 한 번의 부직포 포장을 거친 뒤에는 또다시 두꺼운 종이상자에 담아 선편으로 부치기까지 전 과정을 혼자 했기 때문이다.
기모노를 기증받는 울산대학교 일본어일본학과에서도 많은 수고의 과정이 있었다. 특히 전 과정을 직접 담당한 김미진 교수의 수고도 여기에 꼭 적어두고 싶다. 필자 역시 지난해 7월부터 올해 4월, 기모노가 도착하기까지 9달 동안 중간에서 통번역을 하면서 양측의 의견을 조절하느라 많은 신경을 써야 했음을 고백한다.
그렇게 41벌의 기모노는 10상자에 담겨 배를 타고 현해탄을 건너와 한국의 울산대학교 일본어일본학과에 도착하여 지난 23일(금), 드디어 전공학생들과 기증자인 이토 노리코 씨가 대면할 수 있었으니 필자 역시 뿌듯한 마음이다.


“한국에서 기모노에 대한 특강을 들을 기회가 생겨 무척 기쁩니다. 이번에 기증자인 이토 노리코 선생님이 직접 오셔서 기모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신 것을 계기로 일본 전통의상에 대한 깊은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울산대 일본어일본학과 4학년 류진아-
“한국의 한복이 일상복으로의 기능이 많이 쇠퇴한 것처럼 일본 기모노 역시 그런 길을 걷고 있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결혼식이나 마츠리(축제) 같은 특별한 날에는 아직도 기모노(유카타 포함)를 꽤 입고 있다는 이야기 등 기모노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아주 특별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울산대 일본어일본학과 2학년 강정운 -
이처럼 이토 노리코 씨의 기모노 기증과 관련한 특강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강연에 앞서 이토 노리코 씨는 “과거 일본이 한국을 침략하여 한국인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점에 대해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 깊이 사과하며, 이번 울산대학교 방문을 계기로 더욱 한일 문화교류에 깊은 관심을 두고자 한다”라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으며 학생들과 짧지만, 기모노 시연과 차담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의식주(衣食住)란 인간 생활의 필수적인 요소다. 이번 이토 노리코 씨의 기모노 기증을 계기로 두 나라 사이에 문화교류가 활발히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어제(24일) 낮, 특별히 한국의 냉면을 좋아하는 이토 노리코 씨와 점심을 하께 하며 3박 4일간 기모노 기증으로 방한한 그의 귀국길을 배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