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보] 강화도, 고구려시대 창건된 적석사

2020.12.21 11:47:59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  강화도는 한민족의 태고적부터 역사유적이 있는 유서깊은 고장이다. 선사이전으로 따지면 수많은 고인돌들이 있고, 마니산에는 한민족의 시조인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삼랑산성과 산의 꼭대기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참성단이 있다.

 

그리고 이후로 많은 유적들이 있지만, 고려시대 세계를 휩쓸던 몽골과의 투쟁과정에 임시왕도가 되었던 곳이 강화도다. 그런 까닭으로 강화도에는 읍내의 중심에 강화산성이 있고, 그 가운데는 고려궁지가 있었다. 지금은 고려궁지가 얼마나 컸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어 아쉽지만 고려궁지의 일부만이 남아서 옛 역사를 증거하고 있다.

 

고려는 세계를 휩쓸던 몽골과 싸우기 위하여, 개경을 떠나 급한 물줄기로 나뉘어 섬이된 이곳 강화도에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투쟁하였다. 그 과정에서 그 힘이 무한하다는 부처님의 능력에 의지하고자 대구 부인사에 있었던 대장경을 대신할 팔만대장경을 다시 만들었는데, 그 팔만대장경의 판각지도 또한 강화도였다. 그렇게 몽골과 투쟁시절 만들어진 팔만대장경은 지금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다.

 

그런 강화도에는 오래된 절들도 많은데, 오늘은 그  가운데서도 고구려시대 지어진 것으로 알려진 절들 중 하나인 적석사(積石寺)를 찾아보았다. 적석사는 봄이면 온통 붉게 물드는 진달래로 유명한 고려산의 8부능선 부근에 있는데 대웅전은 남쪽을 바라보고 있다. 더우기 절의 서쪽으로는 서해바다가 굽어보이는 풍광 좋은 곳에 전망대도있어, 강화에서는 경치가 아름다운 8대명소로 손꼽히고 있다.

 

절의 유래에 따르면 적석사는 372년 고구려 소수림왕 2년에 중국의 전진을 통해 들어온 불교가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을 거치면서 남하하였는데 강화도를 고구려의 영역으로 넓힌 시절인 장수왕 4년(416)에 인도에서 온 어떤 스님이 처음 절을 세웠다고 한다.

 

인도에서 온 스님은 강화도 고려산에 이르러 중생구제를 위한 도량을 열고자 절터를 찾던 중 어느날 꿈속에 백발노인을 만나게 되었다. 꿈속의 노인은 산 꼭대기에 올라보라는 말을 하고 사라졌다. 스님은 잠에서 깨어 그의 말을 따라 고려산의 꼭대기로 올라보니, 그곳에는 연못이 있는데, 연못 가운데 다섯빛깔의 영롱한 연꽃이 피어있었다. 스님은 오색영롱한 연꽃을 따서 날려보냈는데 그렇게 날려보낸 연꽃이 떨어진 곳 마다 절을 지었다고 한다. 다섯가지 색깔은 고대 한국인의 사상에 따라 5가지 방위를 뜻하는 색깔이고, 연꽃은 부처님을 뜻한다.

 

그렇게 지어진 5곳 절들은 청련사(동), 적련사(남), 황련사(가운데), 백련사(서), 흑련사(북)가 되었다. 이 가운데 붉은 연꽃이 떨어진 남쪽의 적련사(赤蓮寺)는 후대에 이름이 바뀌어 비슷한 소리로 들리는 적석사라 부르게 되었다. 처음 고려산의 이름은 산꼭대기 연못에 다섯연꽃이 있었다고 하여 오련산이었는데  고려시대 항몽시절 강화도로 정부가 세워진 뒤 고려산으로 바뀌었다. 이후의 역사적 내력은 한국의 수많은 전란을 거치면서 사라지고 없다.

 

1714년 조선 숙종때 세워진 적석사의 사적비에 따르면 적석사에는 한때 고려의 항몽시절 임금이 거쳐하였다고 한다. 당시 임금은 고종이었으나, 나라는 몽골의 위협에 하루하루 위태롭기 그지없는 풍전등화였고, 국내의 정치는 최씨무신정권에 실권도 없는 상황이었다. 강화섬의 밖에는 적들의 창과 갈이 번득였고, 섬 안에는 무신들의 칼날이 날카로와 임금은 적석사의 서쪽 바다를 보며 떨어지는 해만 보고 눈물지었다.

 

적석사가 지금은 오르기도 어렵고 절의 규모도 그리 크지 않지만, 고려시대에는 선원사에서 판각한 장경판을 적석사에 보관하였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보면 본래 적석사는 지금의 위치가 다가 아닌 듯 보인다. 왜냐하면 현재의 적석사의 위치로보면 팔만대장경을 보관할 만한 건물을 지을 땅도 없고,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그 위치가 너무도 험준한 곳이라 그 많은 대장경을 가지고 올 수도 없어보이기 때문이다. 적석사에 대장경을 보관하였다고 한다면, 아마도 그 때 적석사는 절의 규모가 매우 컷을것이며, 아마도 고려산의 아래 서해바다가 멀지 않은 넓은 곳에 터를 잡은 절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의 적석사는 본 적석사의 말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적석사는 조선왕조 말기까지 매우 사세가 컷으나, 일제강점기 이후 재산이 몰수되고 또 그 과정에서 적석사의 스님들 마져 정신을 못차리고 스스로 법당을 훼철하고 절의 보물들을 팔아먹는 스님들마져 생겨나 적석사는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런 곡절의 세월이 흐른뒤 광복이 되고도 오랜 세월이 흐른 1997년 선암스님이 주지로 부임한 뒤부터 폐사와 다름없던 적석사를 하나 하나 세워서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1997년 선암스님이 취임법회를 열던날 경내의 우물이 다시 터져나왔는데 그 물맛이 참으로 좋았다고 한다.

 

최우성 기자 cws010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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