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오늘 아침도 뜨겁습니다. 저 멀리 구름이 있긴 하지만 구름이라기보다 마치 뜨거운 숨씨(공기) 덩어리처럼 보입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수레에서 내려 배곳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여러분께 하루 가운데 가장 아름답거나 좋아하는 때새(시간)를 꼽으라면 언제라고 생각합니까? 저마다 다른 때를 말씀하시 싶은데 많은 분들이 해가 저무는 때를 떠올릴 것 같습니다. 해가 저무는 때를 여러분은 뭐라고 부르십니까? 아마 많은 분들이 ‘황혼’, ‘해 질 녘’, ‘저녁 무렵’ 같은 말을 먼저 떠올리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가 저무는 때를 가리키는 아름다운 우리 토박이말이 있습니다. 바로 '해거름’입니다.
‘해거름’은 표준국어대사전에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지는 때’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저도 요즘처럼 햇볕이 뜨거울 때는 해거름 때가 가장 좋습니다. 더위도 해거름에는 한 풀 꺾이곤 하기 때문입니다. 해가 진 뒤에도 밤새 더울 때가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해거름'은 왜 '해거름'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요? 이 말의 말밑(어원)을 두고 여러 가지 말이 있습니다. '해'와 '기울다'라는 뜻의 옛말 '거름'을 더해 만든 말이라는 풀이도 있고, '해'와 '걸음'을 더해 만든 말로 '해가 서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때'라는 재미있는 풀이도 있습니다.
제 둘레 사람은 '해'와 뭔가를 떨어지지 않도록 '걸다'할 때 '걸다'의 이름씨 '걸음'을 더해 '해가 서쪽에 걸렸다'는 뜻이 아닐까 라고 풀이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박남일 님의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 말 풀이사전'에는 '해'와 '끼니를 거르다' 할 때의 '거르다'를 더한 말이라는 풀이를 하고 있는데 저는 이게 가장 그럴 듯하다고 생각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거르다'는 말은 '무엇을 하지 않고 넘어가다'는 바탕 뜻이 있습니다. 여기서 '넘어가다'가 '해가 넘어가다'는 뜻과 이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밑 이야기는 배움터에서도 하고 심심풀이로도 하면서 살면 좋겠습니다. 오늘, 해가 서서히 기울어 가는 때가 되면 마음속으로 되뇌어 보면 좋겠습니다.
“아, 해거름이구나.”
이 짧은 속삭임이 우리의 메마른 나날살이에 빛깔을 입히고, 잊혀가는 우리말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 값진 걸음이 될 거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