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온 봄의 신에게

2021.03.10 11:03:16

깨끗하고 맑은 공기를 숨 쉬게 해주세요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88]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졸졸졸졸졸..."

 

우리 말의 자랑이 소리를 적어내는 의성어와 모양을 적어내는 의태어가 풍부하고 다채롭다는 것이라는데, 물소리를 적어보려니 두 음으로는 안될 것 같다. '졸졸' 그러면 조금 흐르다가 마는 것 같고 '졸졸졸' 그러면 흐르는 것은 맞는데 뭔가 그냥 느낌이 없고 '졸졸졸졸' 그러면 제법 비슷하게 갔지만 4자로 어색하고... 결국엔 다섯자로 된 '졸졸졸졸졸'이란 표현이 나왔다. 이 표현이 의성어인 것 같지만 그것만은 아니고 의태어라고만 해도 좀 이상하니 결국엔 의성어와 의태어가 다 되는, 말하자면 3차원의 표현법이라 하겠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지난주 3월이 되는 첫날 온종일 비가 내렸는데 다음 날 아침에 별생각 없이 산에 올랐다가 굽이굽이 도는 둘레길 저 밑 작은 골에서 흘러내리는 물소리를 듣고는 너무 기쁜 나머지 이 느낌을 글로 표현하려니 이런 고민을 하게 된 것이다. 심리적으로는 겨울을 완전히 벗어나지 않은 것 같았는데 달이 바뀌면서 저렇게 비가 많이 와서 물이 넘쳐흐르는구나. 그야말로 봄비였구나.

 

그리고는 밤사이에 눈도 엄청나게 왔는데 그 눈 밑으로 밤사이 온 비가 메말랐던 겨울의 흙과 나무, 풀들을 다 적셔주자, 그들이 생명수를 받은 듯 속으로 환호하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수분과 영양을 주고도 남은 물들이 골짜기를 내려오면서 이 같은 입체적인 실내악을 연주했다. 이제 봄을 관장하는 신이라는 동황(東皇)이 확실히 봄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강원도 산악에는 눈이 많이 오긴했지만, 평지에는 남들이 자주 인용하는 '춘수만사택(春水滿四澤)'까지는 아닐지라도 봄이라는 계절이 어느새 갑자기 왔음을 다시 느끼겠다.​

 

저 앞쪽 나무줄기에서 딱따구리까지 입질한다. 이 소리도 "따다다다닥..." 하고 다섯 음절을 적어야 그 느낌이 전해질 듯하다. 딱따구리도 이제 깨어나서 집을 다시 짓고 나무껍질 속에 월동하던 벌레들을 먹이로 거두기 시작한 것이다. 그 딱따구리 소리가 산골짜기를 돌아 메아리가 되어 다시 귀에 들어올 때쯤이면 시경(시경)에 나오는 '벌목정정' 구절이 생각난다.​

 

"伐木丁丁(벌목정정, 나무 자르는 소리 쨍쨍)

鳥鳴嚶嚶(조명앵앵, 새 우는 소리 앵앵)

出自幽谷(출자유곡, 깊은 골짜기에서 나와)

遷于喬木(천우교목, 높은 나무로 옮겨가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장을 지낸 동탁 조지훈 선생은 20대에 일본 교토의 묘심사(妙心寺)에서 일본의 다도(茶道)를 배우게 되었는데, 차를 주재하는 스님(다도의 종장이란다)이 녹차를 찻종에 넣으면서 차를 담은 작은 나무국자를 찻종에다가 땅땅땅 두드리고 차를 넣은 다음에 찻주전자를 높이 들고 소리 내어 물을 따른더란다.

 

그러고는 이렇게 두드리는 것은 '벌목정정(伐木丁丁)'의 운치요, 소리를 내며 물을 따르는 것은 산골의 폭포소리를 가져오는 것이라고 설명하더란다. ​원래 이 골짜기 저 위에는 한여름에 큰 폭포가 내리기는 하지만 여기 이 골에 흐르는 물들이 이루는 작은 폭포도 폭포라고 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조지훈 선생이 들은 그 경지에 다름없다.​

 

​생각해보면 지난겨울엔 다들 코로나인지 뭐인지 때문에 어디 마음 놓고 다니지도 못했지만 겨울 자체는 몹시 춥지도 아주 기온이 높지도 않아 적당했고 또 때때로 눈이 와서, 겨울가뭄이란 말이 쑥 들어간 것을 보면 기억해줄 만한 편한 겨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게 눈이나 비가 내려 대지를 미리 적셔주었으니 며칠 뒤 경칩에 개구리들이 아무 주저함도 없이 잠을 깨어 뛰어나온 것 같다. 역시 봄은 만물이 더욱 생동하는 계절이다.

 

 

이 세상에는 자연현상이 마치 어떤 메시지를 담는 것처럼 느껴진다. 눈이 그렇고 비가 그렇고 바람이 그렇고 거기에 꽃이 피고 지는 것도 그렇다. 흰 눈이 좋은 것은 세상의 모든 것을 덮어주어 사람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해주는 데 있다면 비슷한 의미에서 비의 효용이랄까 역할도 큰 것이다. 마침 이번에 흰 눈이 오기 전에 온종일 비가 왔기에 그런 비 소식을 들으면 공연히 마음이 깨끗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을 거부할 수가 없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코로나 19라는 바이러스가 공기 중에 다니면서 언제 사람에게 달라붙어 괴롭힐지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래에 우리 사회의 공기가 너무도 혼탁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이 살기 어려워 생활고를 못 견디어 자살한다는 소식을 이틀이 멀다 하고 듣는데 왜 그러면서 자기가 낳아놓고 기르던 자식을 죽이고 가는 것인가? 정말 그렇게 자식을 앞세우는 사람들이 진정 부모는 맞는가?

 

그리고 자기를 낳아준 부모, 혹은 아내로부터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살인을 하는 사례들은 왜 그리 많은가? 또 정치판에서는 무슨 험한 말들이 그리 많고 서로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고, 수사권을 주니 뺏니 하면서 난리들을 치는가? 정치의 계절이 되니 다들 정치적인 야심이 있니 없니 하며 정신없이 만든다. 도대체 왜 이리 세상은 이리 시끄럽고 혼탁한가? 뭐 맨날 고친다고 하고 개혁한다고 하는가? 국민들은 당장 먹고살 일이 걱정을 넘어 뒤로 넘어지기 일보직전인데 말이다.​

 

며칠 전에 온 비, 제법 많이 와서 북한산 골짜기에 맑은 냇물을 흘러가게 한 그 비 소식을 반가워한 것은 혹시 그 비로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는 어두운 그림자나 사악한 기운을 씻어가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외국 노래에도 비가 내려서 우리의 고통과 부끄러움이 씻어지기를 기원하는 것이 있지 않은가?​

 

내 수고를 씻어주고 Wash away my troubles

내 고통을 씻어주오 Wash away my pain

샴발라의 비로 말입니다 With the rain in Shambala

내 슬픔을 씻어가시고 Wash away my sorrow

내 부끄러움도 가져가시오 Wash away my shame

샴발라의 비로 말이지요 With the rain in Shambala

 

                                            ... 'Shambala' Three Dog Night 노래​

 

그래, 기왕에 내린 비여, 이제 눈은 더 오지 않을 것 같으니, 비가 다시 더 많이 내려서 우리 땅 위에 날아다니는 코로나 바이로스를 씻어가 주세요. 우리들의 마음에 어느새 들어와 살고있는 몰염치, 뻔뻔함, 거짓, 위선, 이기주의를 씻어가 주세요. 오로지 자기들만 살겠다고 맨날 요란하게 싸우는 분들의 양심을 회복시켜 주세요. 이제 차갑고 강한 겨울바람은 오지 않아도 되니 따뜻한 남풍이 불어와서 우리들의 지친 마음이라도 보드랍게 감싸주세요

 

 

그리해서 우리 이제 정말 청정한, 청명한, 깨끗하고 맑은 공기를 숨 쉬게 해주세요. 그 숨으로 우리 모두 참된 삶을 살아가면서 나만이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배려와 절제와 헌신을 배우고 실행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제발 세상을 더 시끄럽게 하지 않고 좀 내버려 두어 조용하고 편안하게 살도록 해주세요. 꼭 티베트의 샴발라가 아니라 이 대한민국에도 샴발라의 비, 사회와 우리 마음이 정화되는 비가 듬뿍 내리기를 축원합니다. 그리해서 우리 모두 참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이제 확실히 봄으로 접어든 이때 하늘에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이동식 인문탐험가 ld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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