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찐’이다! ODA 18인의 문화유산 복원 대서사시

2021.03.15 11:36:44

[서평] 《난생 처음 떠나는 문화유산 ODA 여행》, ODA 18인 지음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여기, 21세기판 ‘디카메론’이 나왔다. 1348년, 페스트를 피해 피난한 10인의 100가지 이야기가 <데카메론>이 되었다면, 2020년 코로나를 피해 피난한 18인의 이야기는 문명의 발전과 함께 디카 사진까지 더해진 <디카메론>이 되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도 울고 갈 이 기막힌 컨셉은 진옥섭 한국문화재재단 이사장이 제안한 것으로, 코로나19로 문화재 ODA 현장에서 국내로 복귀한 18인의 연구원들은 그간의 이야기를 ‘탁본하듯’, 탁탁 써 내려갔고, 이 수필, 아니 디카메론은 문보재를 통해 《난생 처음 떠나는 문화유산 ODA 여행》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

 

 

우선, 이 책이 귀한 이유는 ‘문화재 ODA’에 관한 책이 굉장히 드물기 때문이다. 문화재 ODA 자체가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개념이거니와, 이런 일을 한국문화재재단에서 한다는 것을 풍문으로는 들었으되 실제로 어떻게 일을 하는지는 알지 못했을 독자들이 대부분일 터이다. 필자도 한때 문화유산 ODA에 관심을 가지고 찾아본 적이 있지만, 워낙 정보가 없어 관련 기사 몇 개를 읽는 것에 그쳤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렇게 문화유산 ODA가 무엇인지, 실제로 어떤 일을 하는지, 전망은 어떠한지 소상히 알 수 있는 자료가 나왔으니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문화유산 ODA를 책으로만 배워서 쓴 것도 아니고, 실제 현장에서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문화유산 ODA를 ‘온몸으로’ 체득한 이들이 쓴 책이니 이것은 ‘찐’이다.

 

 

 

 

이 책에 따르면 ODA(공적개발원조)는 정부를 비롯한 공공기관이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과 사회복지 증진을 돕기 위해 개발도상국 정부, 지역 또는 국제기구에 제공하는 원조를 뜻한다. 문화유산 ODA는 201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시작됐으며, ODA의 다양한 분야 중에서도 문화유산에 특화해 저개발국과 개발도상국이 보유한 유ㆍ무형 문화유산의 보존과 복원을 지원하는 일이다. 지금은 ‘문화유산 ODA’라는 이름을 자연스럽게 사용하지만, 사업 초기에는 완전히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이었다.

 

한국문화재재단의 문화유산 ODA는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 3국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라오스에서는 홍낭시다 사원을, 미얀마에서는 파야똔주 사원을, 캄보디아에서는 프레아피투 쫌사원과 코끼리테라스를 보존ㆍ복원하고 있다. 1부 ‘우리가 만나기까지, 나와 문화유산 ODA’에서는 연구원들이 문화유산 ODA와 인연을 맺게 된 삶의 궤적과 사업지에서의 일상을 재미있게 소개한다.

 

 

2부 <인도차이나가 ‘그들’을 만나는 방법>은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편으로 구성되어 현지에서 겪은 별의별 일을 실감 나게 보여준다. 역시 가장 충격적인 대목은 도마뱀, 쥐와의 전쟁이다. 인도차이나반도에서는 도마뱀과 쥐를 보는 일이 흔한 일상인데, 이들은 프린터 복합기, 에어컨, 각종 전자제품에 들어가기도 하고, 전선을 갉아 먹기도 해서 골칫거리다.

 

‘고고학 전공 연구원의 함척과 뱀’ 꼭지에서 에어컨 밖으로 꼬리를 늘어뜨리고 있는 뱀을 함척(측량용 자)와 배드민턴 채로 소탕한 이야기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오가는 듯한 묵직한 충격을 준다.

 

 

 

그뿐 아니라 백경환 연구원이 날 것 그대로의 고기인 ‘마피아’를 일곱 집에서 대접받고 책상에서 화장실까지 가는 도중,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미스터 마피아’가 된 이야기도 2부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다. 또한 박동희 연구원이 10년의 과제, ‘크메르어 알파벳’을 뗀 것도 찡한 감동을 준다.

 

3부 ‘문화유산 복원 올림픽, 심판은 유네스코’ 편에서는 문화유산 ODA 현장에서 볼 수 있는 세계 각국의 치열한 각축전을 다루고 있다. 가령, 캄보디아에서는 이미 1990년대 초부터 세계 여러 나라가 유적 보수를 위해 참여하고 있으며, 이들은 마치 문화유산 복원 올림픽을 치르는 것처럼 경쟁하고, 때론 협력하면서 각축을 벌인다.

 

각국 복원팀이 모여서 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신경전이 발생하고, 일부는 외교 마찰로 번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라오스 ‘난디홀’ 복원 프로젝트에서는 이탈리아팀은 복원을 완료했다고 생각하고 라오스를 떠났으나 라오스 정부와 유네스코, 국제협력팀들은 복원이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은 것으로 보았고, 와세다대가 유네스코 측에 복원 마무리를 직접 하겠다고 제안하자 이탈리아 측이 거세게 항의한 일이 있었다. 치열한 외교전 끝에 결국 재복원 프로젝트는 덮는 것으로 마무리가 됐지만, 지금도 국제협력팀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고 한다.

 

이지수 연구원이 전하는 문화유산 ODA 사업의 행정업무를 위한 역량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그녀가 말하는 필요역량은 크게 3가지다. 첫째는 의사소통 능력, 둘째는 문서작성 능력, 셋째는 꼼꼼함이다. 이 분야의 진로를 모색하는 사람들은 문화유산 ODA 현장과 사무실을 연결하는 의사소통 능력, 일의 성과를 문서로 잘 정리해 외부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문서작성 능력, 반복적인 업무와 갑자기 주어지는 다른 업무를 잘 조율해 차질 없이 수행해내는 꼼꼼함을 기르면 좋겠다.

 

4부 ‘문화유산 ODA가 가야할 길’에서는 문화유산 ODA의 의미와 나아 가야 할 방향이 잘 정리되어 있다. 문화유산 ODA는 공여국의 기술과 자원을 활용해 수원국의 정체성을 지켜주는 일이고, 자국의 문화유산에 대한 자부심이 커진 국민이 자연스럽게 문화유산 복원에 도움을 준 나라에 호감을 느끼게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한국에 대한 호감을 조성하는 일이다. 한국은 빠른 산업화를 추진하면서 문화유산을 소홀히 한 전력이 있기에 수원국과 더욱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문화유산은 그 나라 정체성의 원류에 있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유산이며 앞으로도 계속 지켜나가야 할 유산이다. 우리나라는 빛의 속도로 발전을 거듭하면서 산업의 발전에만 집중하여 많은 문화유산을 잃어버린 나라이기도 하다. 이를 막기 위하여 문화유산 ODA 사업을 수행하고 있으며, 이를 설득하는 것 또한 문화유산 ODA의 지향점이라고 할 수 있다. (p.404)

 

 

문재인 대통령이 캄보디아 문화유산 ODA 현장을 찾았을 때 현장안내를 한 김지서 연구원이 대통령의 질문에 한 답도 문화유산 ODA가 가야 할 방향을 잘 보여준다. 문화유산 ODA는 결국, 수원국의 국민이 자국의 문화유산을 스스로 소중히 여기고 지켜낼 수 있도록 가치관과 기술을 전수해, ‘지속가능한’ 문화유산 보존의 초석을 다지는 것이다.

 

코이카 이사님과 함께 하차영접을 하며 바로 현장 홍보관으로 들어섰다. 현장안내판으로 열심히 수백 번도 더 외운 멘트를 쏟아내고 있는데 바로 첫 질문이 들어왔다.

“본 사업은 한국이 독자적으로 하고 있나요, 아니면 협업을 합니까?”

플래쉬가 여기저기서 빵빵 터지며 대통령을 비추고 있는 카메라들이 일제히 나를 주목하고 있었다. 만들어진 질문이 아니라서 가슴 속에 있는 답을 한 것 같다.

“본 사업은 대한민국의 기술력과 캄보디아의 인력을 융합하여 협업을 통해 사업 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지속적으로 지원을 해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언젠가 캄보디아도 스스로 문화유산을 복원해야 하기 때문에 협업을 하면서 수행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끄덕임을 보고 속으로 ‘아, 다행이다’고 생각했다. (P.384~385)

 

마지막으로, 인도차이나반도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독자라면 부록도 놓치지 말자. 현장에서 각종 맛집과 정보를 두루 섭렵한 연구원들이 추천하는 여행지이니 믿을 만하다. 특히, 캄보디아 여행 추천 코스는 한국문화재재단에서 앙코르 유적 복원 1차 사업 종료를 기념해 특별히 관심 있는 일반인들을 모집해 캄보디아 여행을 기획했을 당시의 여행 일정을 보여주고 있다. 필자도 2018년 당시 이 여행 공고를 보고 신청하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가지 못했기에, 이렇게 여행 코스를 보며 조금이나마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었다.

 

 

서문에 쓰인 것처럼 18인의 문화유산 ODA 담당자들이 코로나19를 만나 불행히도(?) 기록할 기회가 오고야 말았고, 그 덕분에 이처럼 열과 성을 담은 책이 나올 수 있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런 역작을 이끌어낸 진옥섭 이사장, 그리고 아낌없이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해준 18인의 연구원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문화유산 ODA가 무엇인지도 모르던 ‘무’에서 복원된 유적이라는 ‘유’를 창조해 낸 18인의 연구원들이 앞으로도 현장에서 많은 활약을 할 수 있도록, 무한한 응원과 지지를 보낸다.

 

《난생 처음 떠나는 문화유산 ODA 여행》 / ODA 18인 지음 / 문보재 / 16,000원

 

 

우지원 기자 basicfor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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