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 아들 장영실을 발탁한 세종

  • 등록 2025.07.07 12: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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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5113]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장영실(蔣英實)은 그 아비가 본래 원(元)나라의 소주(蘇州)ㆍ항주(杭州) 사람이고, 어미는 기생이었는데, 공교(工巧)한 솜씨가 보통 사람에 뛰어나므로 태종께서 보호하시었고, 나도 역시 이를 아낀다. (가운데 줄임) 이제 자격궁루(自擊宮漏))를 만들었는데 비록 나의 가르침을 받아서 하였지마는, 만약 이 사람이 아니더라면 암만해도 만들어 내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들으니 원나라 순제(順帝) 때에 저절로 치는 물시계가 있었다 하나, 그러나 만듦새의 정교함이 아마도 영실의 정밀함에는 미치지 못하였을 것이다.“

 

 

위는 《세종실록》 61권, 세종 15년(1433년) 9월 16일 기록된 세종의 말로 세종이 기생의 아들 장영실을 쓰게 된 얘기를 하고 있으며, 장영실이 원나라 것보다 훨씬 정밀한 저절로 치는 물시계를 만들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세종의 용인술은 뛰어난 과학 영재 장영실을 발탁하고 장영실이 세종시대의 과학화를 이끌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종의 뛰어난 지도력은 ‘집현전’에서 그 상징성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종은 자신도 학문이 뛰어난 지도자였지만, 홀로 결정하려고 하지 않았음은 물론 집현전 같은 정책기구에서 배출된 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반영하려고 노력했음이 《세종실록》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고 합니다. 이 말은 세종의 용인술이 이 시대에서 여전히 유효한 명언임이 드러나는 말입니다.

 

 

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pine9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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