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우리나라 사람치고 동작동 국립묘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6.25 전쟁 때 전몰한 국군장병들을 한 곳에 안장하기 위하여 1955년에 국군묘지로 설치되었지요. 그러다가 1965년 국립묘지로 격을 높이면서 독립유공자, 순직 경찰관, 대통령 등도 이곳에 묻혔습니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을 위해 공이 큰 사람들이 묻혀 있는 곳이지요. 그런데 이곳에 이런 것과는 성격이 전혀 다른 무덤이 있습니다. 바로 중종의 후궁 창빈 안씨의 무덤도 이곳에 있습니다. 그러면 언뜻 “왜 창빈 안씨의 무덤도 이곳에 모셨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건 아닙니다. 원래 창빈안씨의 무덤이 먼저 이곳에 있었습니다.
처음 이곳에 국립묘지를 설치하던 당국자는 국립묘지와 상관없는 창빈안씨의 무덤을 다른 곳으로 쫓아내고픈 생각을 하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오랜 세월 이곳에 먼저 터를 잡고 있던 임금의 후궁을 쫓아낼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창빈 안씨는 중종의 후궁일 뿐만 아니라 선조의 할머니이기도 합니다. 곧 1567년 명종이 자식이 없이 죽자 후계 왕의 결정권을 쥐고 있던 명종비 인순왕후는 창빈 안씨의 손자인 하성군을 임금으로 즉위시켰기에 임금의 할머니가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창빈안씨는 그 이전인 1549년에 이미 죽었으므로 자기 손자가 임금이 되는 모습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창빈 안씨는 원래 양주 장흥에 묻혔었는데, 아들 덕흥대원군이 풍수가들의 말을 듣고 그다음 해 이곳으로 이장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창빈안씨의 무덤을 동작릉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는데, 아마 나중에 손자가 왕이 되니까 사람들이 동작릉이라고 높여 부르기도 하였던 모양이지요. 하긴 창빈안씨의 무덤에는 다른 후궁들 무덤과는 달리 신도비도 있습니다. 이 또한 선조가 나중에 세워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국립묘지 안에는 이밖에 호국지장사(護國地藏寺)라는 절도 있습니다. ‘호국’이라는 단어가 붙으니까, “호국영령들을 위해 절도 창건했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이 절도 국립묘지 이전부터 이곳에 있었던 절입니다. 원래 절 이름은 그냥 ‘지장사’였습니다. 지장사는 670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역사가 오랜 절입니다. 원래 처음 이곳에 국군묘지를 만들 때는 이 절을 쫓아내려고 하였답니다. 창빈 안씨의 무덤은 차마 중종의 후궁이자 선조의 할머니의 무덤이라 쫓아내지 못하였지만, 절은 그보다 만만하니까 쫓아내려고 하였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지장사 뒤에는 조계종이 있는데 절도 호락호락하게 쫓겨나겠습니까? 하여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이었던 청담대사가 담당자와 협상을 하여 절을 지켜냅니다. 그 대신 절 이름 앞에 ‘호국’도 붙이고, 현충원에 안장된 호국영령들을 위해 기도도 하고 제례도 올려주기로 한 것이지요. 그러니까 지장사가 국립묘지의 원찰(願刹)이 된 것이네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지장사가 창건될 당시의 이름은 화장사(華藏寺)였답니다. 비록 한자는 다르지만, 호국영령들이 모두 화장(火葬)하여 이곳에 안장되었으니, 지장사는 창건될 당시부터 이곳에 국립묘지가 들어설 것을 예견하였던 것은 아닐까요? 하하! 우리말 발음이 같아 순전히 억측해보았습니다.
참! 지장사도 창빈안씨의 무덤과 관련이 있습니다. 선조 할머니의 무덤이니, 최소한 1년에 한 번 이상은 이곳에서 제사를 지냈을 것 아닙니까? 그래서 제사에 쓰일 두부를 지장사에서 만들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지장사를 물거품 포(泡) 자를 써서 조포사(造泡寺)라고도 불렀다나요. 혹시 다음에 국립묘지에 갈 일이 있으면 창빈안씨의 무덤과 호국지장사도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호국지장사에는 맛있는 샘물도 솟아 나오기에 주변 동네 사람들이 통 들고 물 받으러도 많이 옵니다. 가시면 샘물로 목도 축이시면서 황금빛 달이 알을 품은(금계포란) 명당 중의 명당이라는 국립묘지의 산세도 살펴보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