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백성사랑으로 이룬 세계 으뜸글자 '한글'

2021.10.09 11:13:23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해마다 10월이 되면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세운 날을 기리는 <개천절>이 있고, 세종임금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날을 기리는 <한글날>이 있다. 또 그 밖의 기념일로 셋째 토요일 문화의 날, 25일 독도의 날, 5일 세계 한인의 날, 15일 체육의 날 등 문화강국답게 10월은 기림의 날이 많다. 그 가운데 더욱 의미 깊게 새겨야 할 <한글날>을 맞아 한글과 세종임금 이야기를 해 보자. 한국인치고 한글을 모른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한글이 왜 세계 으뜸글자로 추앙받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계 많은 언어학자, 한글을 으뜸글자로 추켜세워

 

세계 언어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글을 으뜸글자로 추켜세운다. 1886년 한국에 와서 외국어를 가르치고 광무황제(고종)의 외교 자문을 맡으면서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외국인’ 독립운동가 헐버트(Homer Bezaleel Hulbert) 박사는 131년 전 미국 언론에 올린 기고문에서 “알파벳과 비슷한 훈민정음은 완벽한 글자다. 조선어(훈민정음) 철자는 철저히 발음 중심이다. 영국이나 미국에서 오랫동안 갈망하고 학자들이 심혈을 기울였으나 성공을 거두지 못한 과제가 조선에서는 수백 년 동안 현실로 존재했다”라고 평가했다.

 

 

또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다이아몬드(Jared Diamond) 교수는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글자는 훈민정음이다.”라고 했으며,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언어학자인 레디어드(Gari Keith Ledyard) 교수는 “훈민정음은 세계 문자 사상 가장 진보된 글자다. 한국 국민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문자학적 사치를 누리고 있는 민족이다.”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언어학자 제임스 매콜리(James David McCawley) 교수는 한글날만 되면 언어학자로서 으뜸 글자를 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친구와 친지, 제자들을 불러 잔치를 하곤 했다.

 

한글이 으뜸글자인 까닭은?

 

그러면 세계의 많은 언어학자가 한글을 으뜸글자로 치켜세우는 까닭은 무엇일까? 먼저 한글의 특징 가운데 중요한 것은 과학적이며 철학이 담긴 글자라는 데 있다. 한글 닿소리(자음)는 소리를 낼 때 발음기관의 생긴 모양을 본떴기 때문에 과학적이라 하는 것이며, 홀소리(모음)는 하늘(ㆍ)과 땅(ㅡ)과 사람(ㅣ)이 담겨 있기에 철학적이라고 평가한다.

 

또 한글은 배우기 쉬운 글자다. 한글은 가장 발달한 낱소리(음소)글자면서 음절글자의 특징도 아울러 가지고 있다. 한글은 글자 하나하나가 낱소리(하나의 소리)를 표기하는데, 홀소리와 닿소리 음을 합치면 글자가 되고, 여기에 받침을 더해 사용하기도 한다. 또 글자는 질서정연하고 체계적인 파생법으로 만들어졌다. 특히 홀소리(모음)는 ㅏ에서 점을 사방으로 돌리면 ㅓ, ㅗ, ㅜ가 되며 획을 하나 더 붙이면 ㅑ, ㅕ, ㅛ, ㅠ가 된다. 세상에 이렇게 체계적인 글자가 어디 있으랴! 게다가 한글은 필기체, 인쇄체의 구분이 없고, 대ㆍ소문자의 나눔이 없어서 배우기가 매우 쉽다.

 

 

《훈민정음》 해례본에 있는 정인지의 꼬리글에는 "슬기로운 사람은 아침을 마치기도 전에 깨칠 것이요, 어리석은 이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라고 쓰여 있을 정도다. 하지만 한글의 특징 가운데 더 중요한 것이 따로 있다.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서 한자와는 서로 잘 통하지 못한다.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 싶어도 그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것을 가엾게 생각하여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모든 사람이 쉽게 익혀서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 한다."라고 훈민정음의 머리글은 말하고 있다. 세종은 한문에 능통하여 굳이 다른 글자가 필요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절대군주의 지위에 있는 자신의 글자 기득권을 내려놓고 오로지 백성을 사랑하여 백성과 함께 나누는 마음으로 한글을 창제했다는 점이야말로 훈민정음 곧 한글의 위대함을 말해주는 것이다.

 

백성사랑을 몸소 실천했던 세종임금

 

세종임금의 백성사랑은 훈민정음 창제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곳곳에 백성사랑의 흔적들이 보이는데 특히 백성들에게 시간을 나눠줬다는 것도 그냥 넘길 수 없다. 그 당시 시간을 측정하고 알리는 것은 임금 고유 권한이었다. 그런데도 세종은 오목해시계를 만들어 누구나 볼 수 있게 사람들이 많이 다니던 혜정교(현재 교보문고와 광화문우체국 사이에 있던 다리) 길가에 세우고 시간을 백성들이 스스로 알 수 있게끔 했다. 그것도 훈민정음을 창제하기 9년 전에 만든 오목해시계는 한자 모르는 백성과 어린아이까지 배려한 것이었다.

 

 

오목해시계를 양반들만 알던 한자로 써놓으면 일반 백성에겐 그림의 떡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을 묘시(卯時) 곧 새벽 5~7시는 토끼, 진시(辰時) 곧 7~9시는 용, 사시(巳時) 곧 9~11시는 뱀, 오시(午時) 곧 11~1시는 말처럼 그림으로 표시해 놓은 것이다. 그런데 요즘 복원했다는 대다수 오목해시계에는 이런 그림이 있지 않아 원래 세종의 뜻을 살리지 못했다. 세종임금은 자신의 시간을 백성에게 나눠준 위대한 임금이다.

 

또 음악에도 뛰어난 지식을 가지고 있던 세종은 세종악보를 창안한 것은 물론 직접 ‘봉래의’라는 음악을 만들어 냈다. 그 봉래의(鳳來儀)는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관현악(管絃樂)으로 지은 방대한 춤곡으로 봉래의 가운데 ‘여민락(與民樂)’이라는 음악도 있다. 여기서 ‘여민락(與民樂)’이란 뜻은 '백성과 즐거움을 함께한다.'라는 뜻으로 세종은 심지어 음악을 만들 때도 ‘백성사랑’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분이다.

 

 

세종임금의 백성사랑은 《세종실록》 곳곳에 기록된 많은 얘기들에서도 드러난다. 세종은 들판을 지나가다가 농부를 보면 말에서 내려 걸어갔음은 물론 일산(햇빛가리개)까지 치우도록 했으며, 벼가 잘되지 않은 곳에선 반드시 말을 멈추어 농부에게 까닭을 묻고 마음이 아파 점심을 들지 않고 돌아오곤 했다.

 

이렇게 세종임금은 절대군주면서도 백성을 끔찍이 사랑한 임금이다. 그 업적 가운데 한글 창제는 역대 그 어떤 임금이 이룬 업적 보다 위대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훌륭한 업적을 이룬 성군임에도 세종임금 생가터(준수방, 현재 종로구 통인동)에는 기념관 하나 없이 길가에 작은 표지석 하나 세워뒀으며, 탄신일인 5월 15일은 생가가 아닌 무덤 곧 경기도 여주 세종대왕 영릉(英陵)에서 숭모제전(崇慕祭典)을 열고 있다.

 

 

게다가 세계 으뜸글자 ‘한글’은 국내 곳곳의 영어 상가 간판에 자리를 내준지 오래고, 이른바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은 잘난 체를 위해 외국어 등 어려운 말 쓰기를 예사로 하며, 정부의 행사에까지 영문과 한자를 섞은 이상한 글자를 만드는 등 푸대접을 일삼고 있다. 제발 575돌 한글날은 지하에서 세종임금이 한탄하지 않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pine9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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