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마을에서 평창강을 내려다 보는 쾌감을 맛보며

2021.10.15 10:58:25

평창강 따라 걷기 6-3

[우리문화신문= 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 강 따라 조금 내려가면 강 건너편에 넓은 둔치가 보인다. 커다란 풍차도 보이고. 거기가 백일홍 축제장이다. 평창읍에서는 100만 그루의 백일홍을 심어놓고서 9월에 백일홍 축제를 연다. 나는 몇 년 전에 손자 둘을 데리고 가서 백일홍 축제를 재미있게 구경한 경험이 있다. 아쉽게도 2020년에는 코로나 때문에 축제가 취소되었다.

 

 

평창군의 각 읍면에서는 경쟁하듯이 축제를 개발하였다. 봉평면은 메밀꽃 축제가 유명하고, 진부면은 겨울에 송어축제를 한다. 평창읍은 가을에 백일홍 축제, 대화면에서는 여름에 더위사냥 축제를 개최한다. 이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사람이 많이 몰리는 축제는 단연코 봉평면의 메밀꽃 축제이다. 메밀꽃 축제는 1999년부터 시작하였다. 메밀 재배 면적으로 보면 전북 고창 학원농장의 메밀밭이 훨씬 더 넓다. 고창 외에도 장흥, 하동, 강촌, 제주도에도 메밀밭이 있고 메밀꽃 축제가 열린다. 그렇지만 봉평에는 이효석이 있기 때문에 메밀꽃 축제의 대명사는 봉평이다.

 

평창강 따라 조금 내려가자 2개의 매우 짧은 터널이 연달아 나온다. 터널을 지나자 유동리 표시석이 나온다. 버드나무가 많이 있으므로 버들골이라고도 하고 유동리(柳洞里)라고 한자로 표기한다. 유동리는 평창읍에서 4km 떨어진 곳에 형성된 마을이다. 마을의 형국은 앵무새가 버드나무 가지에 집을 짓는 ‘앵소유지형(鶯巢柳枝形)’ 명당이다. 마을에는 강원도 문화재 자료 30호로 지정된 5층 석탑이 있다. 이날의 답사길에서는 벗어나 있는데, 나중에 한번 찾아가 보아야겠다.

 

 

 

유동리 표시석에서 조금 내려 가면 한국농어촌공사 유동양수장이 왼쪽에 나타난다. 여기에서 우리는 도로를 따라가지 않고 둑방길로 접어들었다. 둑방길을 따라 한참 가면 다시 도로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는 것을 나는 사전 답사 때에 확인해 두었다. 둑방길에서는 차소리 대신에 강물소리가 들리므로 걷는 사람에게는 매우 편안한 길이다.

 

강 건너편 녹색 산을 바라보면서, 물소리를 들으면서, 가끔 대화하면서 걷다 보니 쉼터가 나타난다. ‘평창강 유원지’라고 커다란 바위에 글씨가 새겨져 있다. 강가로 내려가 우리는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평창강에는 바위도 미남인가 보다. 잘 생긴 커다란 바위 하나를 발견하고 가까이 가서 사진을 찍었다.

 

 

 

잠시 쉬는 동안 해당이 춘흥(春興)을 이기지 못하고 판소리를 한 곡 하였다. 판소리 수궁가 중에서 ‘범 내려온다’는 대목을 구성지게 불렀다. 일행 중에는 소리꾼들이 5명이나 있기 때문에 추임새가 절로 나왔다. 가양은 주위에 흐드러지게 핀 봄꽃들의 이름을 부지런히 설명하고 있다. 멀리 전남 신안군 비금도에서 올라온 봉만호 선생은 강가로 내려가 걸으면서 신록의 강산이 만든 고요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감상하고 있다.

 

내가 은곡 선생에게 걸망 속에 막걸리 있으면 같이 먹자고 말했더니, 오늘 아침에 집에서 나오면서 서두르다보니 막걸리 가져오는 것을 깜박했단다. 은곡의 작은 걸망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궁금했다. 그의 허락을 받고 걸망을 열어보았다. 1회용 면도기 하나, 칫솔 하나, 그리고 작은 톱 하나가 들어있었다. 음료수나 과자는 없었다. 은곡에게는 톱이 필수품이란다. 직업이 목각 공예이기 때문에 다니다가 그럴듯한 나무가 보이면 잘라서 가져온단다. 전문가는 역시 다르다.

 

우리는 3시 15분에 다시 출발했다. 둑방길 양쪽에 일부러 심은 듯한 작은 나무들이 줄지어 있었다. 잎을 관찰해보니 작은 아카시아 잎 모양이다. 이 분야 전문가인 가양에게 물어보니 산초나무란다. 산초는 추어탕 먹을 때에 넣는 향신료이다.

 

한참 걷다 보니 둑방길이 끝난다. 둑방길이 끝나는 지점에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 나무 옆의 표시판을 보니 수령이 500년인 느릅나무이다. 소나무나 느티나무가 보호수인 것은 많이 보았지만 이렇게 큰 느릅나무 보호수는 처음 본다.

 

 

한가한 도로를 따라 걷다 보니 약수리가 나온다. 약수리(藥水里)는 조선시대 약수역(藥水驛)이 있던 마을이다. 피부병에 탁월한 효험이 있는 약수가 있어 약수리라고 하였다. 옛날 이 약수가 문둥병을 고쳤다는 소문이 퍼져 많은 나환자들이 몰리자 지역주민이 약수를 막아버려 약수가 끊겼다. 그러다가 약수초교 맞은 편에 조성된 공원에 약수를 다시 복원하였다.

 

 

약수리를 지나 조금 더 가다가 오른쪽에 있는 쉼터를 만났다. 입탄리라는 표시석이 보인다. 이름 없는 돌탑 2개를 쌓아놓았다. 정자도 하나 있다. 그런데 산과 연결되어 있는 쉼터라면 샘물이 있을 법한데 물이 보이지 않는다. 샘이 있던 흔적만 있다. 주민에게 물어보아도 물은 없단다. 수도라도 하나 만들어 놓으면 좋으련만. 순간적으로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뜨거운 물과 믹스커피 2봉을 가져왔기 때문에 믹스 커피를 만들었다. 은곡과 나는 믹스커피를 마셨다. 다른 사람들은 생수를 마셨다. 믹스커피는 의외로 인기가 없었다.

 

 

쉼터를 출발하여 조금 걷자 멀리에 성 필립보 생태마을이 보였다.

 

 

도로의 왼쪽에 성필립보 생태마을이 나타났다. 천주교의 사제로서 강연 잘하기로 유명한 황창연 신부가 생태마을을 운영하고 있다. 후문에 차단기가 있었지만 우리는 틈새로 걸어 들어갔다. 건물이 나타나고 개들이 짖어댔지만 무시하고 그냥 언덕을 올라갔다. 나는 생태마을에 여러 번 왔다간 적이 있다. 언덕을 올라가면 넓은 마당에 커다란 성당 건물이 나타난다.

 

 

 

마당 왼쪽에 사제 김창린 필립보(1926~2012)의 흉상이 서 있다. 수원 교구 소속이었던 김창린 신부는 황신부가 신학생 때 본당 신부로 모셨던 분이다. 김창린 신부는 황신부가 이곳에 생태마을을 만들려고 동분서주할 때, 자금이 모자란다는 말에 평생 모아둔 장학금을 선뜻 내준 분이란다. 흉상 밑의 좌대에 아래와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반백 년 하느님 나라 선포하시고

평창강 휘감아 돌아가는 이곳에

영적 쉼터 마련하여

삶에 지친 모든 이에게

행복 선물하신

호랑이 신부님을 그리워하며

2013. 5. 17

 

 

나는 황창연 신부의 강연을 CD를 사서 들어본 적이 있다. 황신부의 강연은 특히 노인들에게 인기가 있다. 그 분 말씀의 핵심은 “여러분들은 이제까지 자식들 키우느라고 고생만 하였다. 이제는 자기 자신에게 투자할 시기이다. 관 살 돈만 남기고 자신을 위해 다 쓰고 죽으라”는 내용이다.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깨뜨리는 새로운 내용이다.

 

 

인터넷 백과 사전인 ‘나무위키’에서는 황창연 신부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1992년 가톨릭 사제 서품을 받았다. 세례명은 베네딕토. (필자 주: 베네딕토는 영어 발음에 충실한 번역이고 천주교 신자들은 필립보라고 부른다.) 2106번째 한국인 신부. 수원교구 소속 사제로서 2004년부터 성 필립보 생태마을 관장으로서 평창에서 살고 있다. 무공해 농산물을 생산하여 ‘생태맘 청국장’을 판매하면서 전국적으로 강연을 다니고 있다. 가톨릭 평화방송 “황창연 신부의 행복 특강”시리즈로 유명해졌다. 2013년부터 아프리카 잠비아의 무푸리라 지역에서 해외 생태마을을 추진하고 있다. 2017년 가수 비와 배우 김태희의 혼인성사 때 주례 사제였다.“

 

평창강을 내려다보면서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고 있는데, 갑자기 웬 남자 두 명이 나타나더니 야단을 친다. 지금 코로나 때문에 출입 금지인데 왜 들어왔느냐고. 빨리 나가란다. 그래서 일단 미안하다고 말하고서 옆문으로 나가겠다고 했더니, 빨리 차를 빼란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차가 없는데요. 그 남자가 어이없어 한다. 차단기를 내려 놓았는데, 어떻게 들어왔느냐고 묻는다. 걸어서 들어왔다고 말했더니 어리둥절하는 표정이다. 우리는 걸어서 평창강 답사를 하는 중이고, 옆문으로 해서 응암리로 나가겠다고 설명하였다. 산으로 이어지는 옆문은 내가 여러 번 가본 적이 있다. 본당 옆문 쪽에 수십 개의 항아리가 있다. 청국장 원료를 담아둔 항아리일 것이다. 4시 20분에 생태마을을 빠져 나왔다.

 

 

<계속> 

 

 

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muusim222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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