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의 고종 망명 계획

2021.11.07 11:28:55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75]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우당 이회영과 범정 장형의 발자취를 찾아서》를 보면 우당이 고종 망명 계획을 세우고 실천에 옮기다 고종이 갑자기 붕어하는 바람에 실패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원래 이규설의 신한혁명단에서 1915년 고종 망명을 추진하다가 실패하였는데, 우당은 1918년 11월 자신의 아들 이규학이 고종의 조카딸과 신부례를 올리는 것을 기회로 삼아 고종의 망명을 다시 시도합니다.

 

신부례란 신부가 시집에 와서 처음으로 올리는 예식이라고 하는데, 우당은 신부례를 올리는 것을 기회로 고종과 접촉하여 망명을 타진하려고 한 것이지요. 그렇기에 아들 이규학이 이미 3년 전에 고종의 조카딸과 결혼하였지만, 고종 망명을 추진하면서 이때 신부례를 추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고종의 시종 이교영을 통하여 고종에게 망명을 타진하였고, 고종으로부터 흔쾌한 승낙도 받습니다. 당시 고종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가 발표되자 이에 고무되어 망명을 결심하였다고 합니다.

 

 

고종이 이렇게 망명을 결심하자 우당은 홍증식과 함께 고종의 측근인 전 내부대신 민영달을 만나 의사를 타진합니다. 민영달은 황제의 뜻이 그러하다면 자신도 분골쇄신하더라도 황제의 뒤를 따르겠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우당과 민영달은 북경에 행궁을 마련하고 바닷길로 고종을 탈출시킬 계획을 세웁니다. 이때 민영달은 행궁 구입자금으로 5만 원도 내놓습니다. 일제가 내민 남작 작위도 거부하였던 민영달이니 이런 거금도 선뜻 내놓았군요.

 

그런데 이들의 계획은 고종이 1919년 1월 21일 갑작스럽게 죽는 바람에 좌절합니다. 고종이 갑자기 죽자, 고종이 독살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시중에 퍼졌습니다. 고종이 죽기 전날 숙직한 인물이 하필이면 이완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완용이 고종의 시중을 들던 두 명의 나인에게 독이 든 식혜를 고종에게 올려 고종을 독살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완용은 입을 막기 위해 두 나인도 살해하였다는 것이구요. 실제로 고종이 죽은 지 얼마 안 되어, 당시 고종의 시중을 든 나인 중 한 명은 감기에 걸려, 한 명은 기침하다 피를 토하고 죽었다는데, 역시 석연치 않은 죽음입니다. 그렇기에 고종의 인산일에 일어난 3.1 운동이 전국적인 만세운동으로 퍼져나간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렇게 고종의 망명 계획이 수포가 되자, 3.1 운동 후 태어난 상해임시정부는 고종의 아들 의친왕의 망명을 추진하였었지요. 이때는 1919년 11월 11일 의친왕이 압록강을 건너 안동(지금의 단동)까지 오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를 눈치챈 일제가 안동역에서 의친왕을 체포하는 바람에 실패하였지요. 고종이 그렇게 죽지 않고 계획대로 망명에 성공했다면 그후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아무래도 고종은 망명계획을 눈치챈 일제와 일제의 주구 이완용에 의해 살해당하였다는 강한 의심을 지울 수 없습니다.

 

 

양승국 변호사 yangaram@lawlog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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