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우리나라 성씨에는 외국에서 온 성씨가 많습니다. 아무래도 가장 많은 것이 중국에서 온 성씨지요. 그리고 고려 때, 원나라 지배를 받으면서 몽골인을 선조로 하는 연안 인씨 등이 있으며, 임진왜란 때 귀순한 김충선(사야가)을 시조로 하는 김해 김씨처럼 일본에서 들어온 성씨도 있구요. 그런가 하면 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에 공을 세운 이지란(쿠란투란티무르, 청해 이씨)처럼 여진족에서 들어온 성씨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성씨와는 별로 관계가 없을 것 같은 서양인의 피가 들어간 성씨도 있습니다. 덕수 장 씨의 시조 장순룡은 원나라 때, 고려에 정착한 회회족입니다. 원나라는 중앙아시아의 회회족을 제2계급으로 하여 자기들 통치에 이용하였는데, 소위 말하는 ‘색목인(色目人)’이 이들입니다.

그리고 하멜 일행이 조선에 표착하였을 때 하멜과 함께 탈출하지 않고 강진군 병영면에 주저앉은 네덜란드 선원들이 있는데, 이들을 시조로 하는 병영 남씨도 있습니다. 병영 남씨는 한국에 정착한 지 400년이 안 되어 이목구비를 보면 아직도 어딘가 서양인의 흔적이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외에 고려 말에 베트남 왕족이 고려로 귀순해 와 성씨를 받은 화산 이씨가 있습니다.

신일용 작가는 《우리가 몰랐던 동남아 이야기》에서 화산 이씨에 관해서도 얘기를 합니다. 11세기에 이공온(李公蘊)이 전임 레왕조를 몰아내고 리(李)왕조를 열었습니다. 조선과 같은 이씨 왕조네요. 임금 이름도 한자로는 태조(리타이또), 태종(리타이똥), 성종(리딴똥), 인종(리난똥) 등으로 우리와 같이 이름의 임금이 많고요. 그런데 6대 영종(안똥)부터 임금들이 요절하여 외척이 실권을 휘두릅니다. 신 작가는 왕들이 외척에 의해 암살당한 것이 아니겠냐고 합니다. 리왕조에는 리왕조의 유일한 여왕도 있는데, 8대 혜종이 외척의 등쌀에 왕위를 물려준 딸 소황(치우호앙)입니다.

그런데 소황은 그대로 리왕조의 마지막 임금이 되었습니다. 당시 외척 실세인 진수도(짠투도)는 소황을 자기 조카와 혼인시키고 1년 뒤, 1225년 소황으로 하여금 남편에게 왕위를 양보하도록 합니다. 이리하여 리왕조가 멸망하고 진(짠)왕조가 문을 엽니다.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하였을 때도 고려 왕족들에 대한 학살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이 학살을 피해 고려왕족인 왕(王)씨들 중에 옥(玉)씨나 전(田)씨로 성을 바꾼 사람들도 있다고 하고요. 베트남에서도 마찬가지로 진수도는 혜종을 자살하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장례식에 모인 리왕조 일가를 암살했다고 합니다.

이때 혜종의 삼촌인 이용상(리롱뚜엉)이 일가를 데리고 망망대해로 도주합니다. 1975년 베트남 패망 뒤 수많은 보트피플이 있었는데, 이제 보니 이용상 일행이 원조 보트피플이네요. 이렇게 바다로 도피한 리롱뚜엉 일행은 이리저리 떠돌다가 고려에 도착합니다. 당시 고려의 왕은 고종이었는데, 고종도 무신들에게 쥐어 살던 때라 동병상련을 느끼었는지 이들을 후히 대접합니다. 그리고 이들을 황해도 옹진군 화산면에 정착하도록 하였으니, 이들이 화산 이씨가 되는 것이지요.

화산 이씨는 몽골군이 한반도를 침략하였을 때 전공을 세우기도 하였답니다. 그리고 현대에 와서 우리나라가 1992년 베트남과 국교 정상화를 할 때, 화산 이씨 종친회가 가교역할을 하였다는군요. 베트남에서도 화산 이씨를 환대하여, 해마다 리 왕조가 출범한 음력 3월 15일이면 종친회 간부들을 기념식에 초청한다고 합니다. 2018년에는 당시 응웬 부 뚜 주한 베트남 대사가 선조인 화산 이씨의 흔적을 찾아 경상도 영주와 봉화를 방문하기도 하였답니다.

오늘날에는 귀화 성씨가 훨씬 많아졌습니다. 국제화 시대인 요즈음 200만 명이 넘는 외국인들이 국내에 들어와 살다 보니 귀화 성씨가 많아진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의 귀화 성씨 가운데 제일 많은 성씨가 나온 나라가 어디일까요? 바로 필리핀이라고 합니다. 무려 145개의 귀화 성씨가 있다고 하네요. 예로부터 우리나라를 단일민족국가라고 하였는데, 이젠 그런 말은 사용하지 말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