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과 다산, 두 독서 천재의 이야기

2022.03.21 11:47:31

《세종처럼 읽고 다산처럼 써라》, 다이애나 홍, 유아이북스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책도, 글도 많은 시대다. 읽을거리가 넘쳐나고 블로그와 같은 1인 미디어가 발달한 요즘 같을 때는 독서도 글쓰기도 참 쉬울 것만 같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대부분 정보를 영상과 이미지로 흡수하면서, 오히려 읽고 쓰는 활동은 뜸해져 간다. 짧은 글과 이미지, 영상에 익숙해지다 보니 긴 글을 읽어내는 문해력은 오히려 떨어졌다는 평가다.

 

이 책, 다이애나 홍의 《세종처럼 읽고 다산처럼 써라》는 조선 역사상 가장 유명한 다독 군주 세종과 다작 선비 다산의 사례를 통해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의욕을 활활 불타게 하는 책이다. 세종과 다산의 사례를 풍부히 인용하면서도 다른 역사적 인물이나 지은이의 개인적 경험도 함께 녹여내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편이다.

 

 

세종은 조선 임금 가운데 그 누구보다 독서를 즐겼다. 게다가 즉위하고 처음으로 한 말이 “의논하자.” 일 정도로 토론 또한 즐겼다. 특히 일종의 독서 토론인 경연(經筵)을 워낙 좋아해, 태종이 30회의 경연만 참가한 것에 견주어 세종은 1,898회나 참가했다. 경연은 임금과 신하가 함께 고전을 읽으며 현안을 풀어가는 조선의 독특한 정치 방식이었다.

 

이 토론에서는 거의 계급장을 떼다시피 한 격렬한 토론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훈민정음 반포를 놓고 벌인 세종과 최만리의 논쟁은 서로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고, 최만리는 고개를 들어 세종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그러나 세종은 묵묵히 반대 논리를 듣더니 이렇게 말했다. “너의 말이 참 아름답다. 하지만 나는 다른 이유로 반대한다.”

 

파저강 토벌 논쟁에서도 세종은 북방영토를 개척하기로 마음먹었으나 신하들이 반대하자 끈질긴 설득과 논의에 나섰다. 결국 세 차례에 걸친 대논쟁을 통해 파저강 토벌이 결정됐고, 그 과정에서 토벌의 명분과 전략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져 마침내 토벌은 성공할 수 있었다.

 

또한 세종은 즉위한 뒤 8년 되는 해인 1426년, 처음으로 사가독서(賜暇讀書)를 실시했다. 이는 일종의 ‘독서 휴가’로, 젊은 문신들에게 휴가를 주어 자기 집이나 조용한 곳에서 독서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19세기 영국 빅토리아여왕도 관료들에게 3년에 한 번씩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는 ‘셰익스피어 베케이션(Shakespeare Vacation)’을 주었다니, 역시 동서양을 막론하고 시대를 이끄는 지도자는 독서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다산 역시 독서를 한시도 게을리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다산의 삶은 22살부터 40살까지 나라를 위해 일했던 시기, 40살부터 58살까지 귀양 생활을 한 시기, 58살부터 75살까지 평범한 노년 생활을 했던 시기로 나뉜다. 인생의 절정에 달했을 나이인 40살, 그때부터 18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하면서 삭혀야 했던 분노와 고독은 가히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그는 외로울 때마다 글을 썼다. 강진에서 마련한 거처인 ‘사의재(四宜齋)’에서 지내던 때에는 혼자 책을 읽고 쓰면서 읍내 아전의 아이들이나 가르쳤을 뿐, 대화할 만한 상대가 없었다. 그는 글을 쓰며 막힌 숨통을 틔웠고, 시를 쓰며 학문적 자극을 받고 시름을 달랬다.

 

그렇게 나온 것이 책 500권이다. 1년에 28권가량을 쓰는 초인적인 필력을 발휘한 것이다. 물론 이것은 다른 책을 읽으며 좋은 구절이 나오면 가려 적는 ‘초서(抄書)’ 독서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비록 다산의 인생은 유배로 꺾였으나, 어쩌면 이 유배로 그는 단지 유능한 관료로 남았을 운명에서 불세출의 학자가 되었으니 전화위복이 된 셈이라고도 하겠다.

 

(p.25-26)

(세종) “책은 내 안의 두려움과 아득함을 위로하고 어루만져 주었다. 책 읽기는 평생을 해야 할 숙제와 같은 것이니, 하루하루 헛되이 보내는 날 없이 책을 곁에 두고 보았으면 좋겠다.”

 

세종이 토로한 대로, 지은이 또한 두려움과 아득함에 시달리던 때가 있었다. 지은이는 남편의 부도로 18년 동안 운영했던 학원을 정리하고 실업자가 됐을 때, 세상이 온통 암흑으로 변했다고 회고한다. 세상이 너무나 무서웠던 시기, 무서움과 두려움을 잊기 위해 매달린 것이 책이었다.

 

(p.132)

외로울 때마다 읽었고, 흔들릴 때마다 읽었다. 책은 날마다 습관처럼 세포에 기억되고 근육에 기억되었다. 은행에 저축이 늘어나듯 나의 독서 근육도 단단해졌다. 책은 산삼보다 힘이 셌다. 어느 순간 나는 가시밭길 지나 무성한 숲을 만나고, 사막을 지나 오아시스를 만났다.

 

그래서 지은이도 외롭고 흔들릴 때마다 책을 읽다 보니 어느새 가장 힘든 시기를 지나, 지금은 어엿한 작가로 제2의 인생을 살게 되었다. 평화로운 시기에 읽는 책도 좋지만, 이렇게 절박한 시기에 하는 절박한 독서는 한 사람의 인생을 구하기도 한다.

 

세종과 다산이 보여주는 넓고도 깊은 독서의 세계. 물론 세종처럼 읽고 다산처럼 쓰면 좋겠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그대로 따르는 건 어렵더라도, 그 자세와 정신만이라도 다시 한번 새겨보면 좋겠다. 혹시 지금 아득한 어둠 속을 걷고 있다면 더더욱 책을 펼쳐보자. 어느새 가시밭길은 끝나고 무성한 오아시스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우지원 기자 basicfor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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