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마음 - 동ㆍ서양 마음

2022.08.11 11:56:57

[‘세종의 길’ 함께 걷기 98]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학교 명예교수]  

 

세종과 동ㆍ서양의 마음 읽기

 

세종 시대의 인물을 살피고 있는데 앞선 연재에서 하경복을 두고 세종이 대하는 마음을 엿보았다. 이에 세종의 ‘마음’에 대한 생각에 이어 ‘마음’에 대한 동ㆍ서양의 논리를 살피고 가보자. 먼저 간단히 ‘세종의 마음’ 그 가운데 ‘의지’에 대한 마음 한 구절을 보고 이어가자.

 

용심력 : 함길도 경력(經歷, 도평의사사 소속인 경력사의 으뜸 벼슬) 이사철(李思哲)이 하직하니, 불러 보고 말하기를 ‘나의 족속(族屬)은 모두 학문을 모르므로, 네가 학문에 힘쓰는 것을 깊이 아름답게 여겨 내가 오래도록 집현전(集賢殿)에 두고자 하였으나, 너는 시종(侍從)한 지가 오래되어 나의 지극한 마음을 아는 까닭에, 특별히 너를 보내어 그 임무를 전적으로 맡기는 것이니, 너는 가서 게을리하지 말라’ 하니, 사철이 아뢰기를, ‘소신이 본디부터 사물(事物)에 정통하지 못 하와 잘못 그르칠까 두렵습니다.’ 하매, 임금이 말하기를, ‘너의 자질(姿質)이 아름답다는 것을 아노니 하지 않으면 그만이거니와, 만약 마음과 힘을 다한다면 무슨 일인들 능히 하지 못하리오, 하고, 이어 활과 화살을 하사하였다. (《세종실록》 22/7/21)

 

하지 않으면 그만 이려니와 만약 마음과 힘을 다한다면 무슨 일이든 하지 못하리오, 하며 이에 너의 자질이 아름답다고 덧붙인다. 근면, 성실 이는 세종의 격려이며 마음이다. 마음인 정심(正心)의 기록을 보면 조선 조 초기(태조~성종)는 73건, 중기(연산군~현종)는 282건, 후기(숙종 이후)는 125건이다. 조선조 경향을 보면 조선 중기 세종의 마음에 대한 논의가 많은 것이 보인다. 중종 이후의 지행합일의 양명학의 영향일 수 있을 것이다.

 

 

실록에서는 심학이 중종 8년 1513년이 되어서야 거론된다. 세종 이후 60여 년이 지난 뒤의 일이다. 중종이 야대(임금이 밤중에 명망 있는 신하를 불러 《경서》와 《사기》에 적힌 나라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 강론하도록 하던 일)에 나가 치도를 논하는 가운데 검토관 정사룡(鄭士龍)이 “송나라 이종(理宗)이 비록 임금의 도리를 다하지는 못하였으나, 《강목(綱目)》을 강론하게 하고, 또 《강목》을 국자감에 보내 펴내게 하였으니 이학(理學)을 높인 임금이라 이를 수 있습니다.” 하자 임금이 말했다.

 

심학 중요 : 지금도 이학을 아는 사람이 있느냐? 하매, 참찬관(參贊官) 이자화(李自華)가 아뢰기를, 근자에 이학을 아는 자는 적어서 오직 김응기 한 사람뿐입니다. 제왕의 학문은 심학(心學)을 중하게 여기는 것이니, 다스리는 도가 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했다.(《중종실록》 8년, 1513, 9월 20일)

 

이 글을 인용하는 것은 세종 때 일반론으로 다루던 ‘마음’, ‘마음학’이 마치 세종이 강조해서 그렇게 된 듯 조선 중기 이후 ‘심학’으로 강화되는 모습을 보고자 해서였다. 이후 이어 조선 중기에는 이기(理氣) 논쟁이 있게 된다.

 

이어 동ㆍ서양의 마음에 대한 논의를 살펴보자.

 

동양의 마음 읽기

 

동양에서의 마음은 대전제로 내 안에 ‘참 나’가 살고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 ‘참 나’가 자각되어 움직이면 거기서 사랑, 용서, 겸손, 관용, 감사, 해학 등과 같은 인간의 아름다움이 표출되는 것이다. 그리고 전현대와 현대의 문명의 차이는 집단 ‘거짓 나’(에고)와 에고(개체로서의 나)의 바탕 위에서 형성된 것이다. 한 예로 환경파괴가 그 가운데 한 영역이다. 인간의 욕망이 도[道, 자연]를 파괴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탈현대의 문명 건설의 전략은 첫째로 세속의 한 가운데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유교는 가정생활을 위시한 세속의 한 가운데를 좋은 마음의 장으로 여긴다. 둘째 강점은 마음공부가 일상생활에서의 마음공부로 활용할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셋째 장점은 유교의 마음공부가 누구나 어떤 수준의 사람도 참여할 수 있다는 접이다. 사람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공경하는 마음을 갖고 대하는 것 역시 마음만 먹으면 되는 것이다. 겸손한 자세도 해보면 그 효험을 즉각 느낄 수 있다.

 

유교 인간의 특징에서 유교는 ‘인간이란 누구나 성인(聖人)이 될 수 있는 존재’라고 가정한다. 그러면서 인간의 자연적 본성, 감각적 즐거움, 부귀와 명예를 근본적으로 인정한다. 인간 기본 욕망의 충족은 유교적 이상사회의 중요한 요소이고 인간다운 삶의 전제로 여긴다.

 

또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정감에 대한 태도도 비슷하다. 인의예지 발현으로서의 사단(四端) 곧 측은해하는 마음[惻隱之心], 부끄러워하는 마음[羞惡之心], 사양하는 마음[辭讓之心], 분별하는 마음[分別之心]은 물론이고 기쁨, 분노, 슬픔, 즐거움과 같은 정감에 대해서도 결코 이를 근본적으로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유교에서는 이런 정감들이 주어진 상황에 맞게 발현되어야 함을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삶의 궁극적 목표나 추구의 대상으로 섬겨온 것은 아니다. 욕망에 대한 긍정과 추구는 그것이 도(道)와 어긋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만 용인되었다.

 

유교에서의 궁극적인 것은 본성의 실현이다. 유교 사상가들은 인간에 내재한 본성을 성(性)이고 불렀으며 성은 인간이 도덕적 행위를 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유교 마음공부의 특징은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유교는 연속적이고 점진적인 존재 변화를 가정한다. 둘째 유교 마음공부의 궁극적인 목표는 중용에 도달하는 것이다. 셋째 유교는 사회 속에서의 수행을 강조하며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는 삶의 모든 영역이 중요한 수행처가 된다. 넷째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에서 드러나듯이 유교마음 공부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회의 성화(聖化)를 이루는 것이다. (참고: 홍승표, 유교 마음공부의 탈현대적 함의)

 

서양의 마음 읽기

 

서양에서의 마음 읽기는 다양하다.

 

먼저 ‘마음과 몸’ 관계의 탐구가 있다. ‘마음과 뇌의 동일설’에서 마음 중심, 육체의 행동주의 등이 있다. 그리고 마음의 의식(意識)이나 자아(自我)의 관점에서 개인의 인지, 지각, 인격의 문제와 집단의식(集團意識)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더불어 마음에 대한 과학과 철학적 관심으로 자기제어, 정신질환과 사회성에 관심을 보였다.

 

그 중 현대의 도구적 이성(理性)과 인간 · 사회 소통과의 관계로 하버마스의 논리를 보자.

 

* 하바마스의 마음 논리

 

독일의 현대철학자 하바마스(1929~ )는 마음을 의사소통 행위라고 설명한다. 이 글의 취지와 통하는 바가 있어 설명해보자.

 

현대에서는 이제 옛 이성(理性)이 아니라 신이성이라는 것이다. 보통 이성을 이용하여 상대를 설득하려는 것이 일반적인데 어디까지나 열린 태도로 상대의 말을 듣고 함께 무언가 쌓아 올리려는 태도가 그러하다는 것이다. 상대를 설득만 하려는 것이 도구적 이성이라면 상대와 합의를 이루려는 것은 ‘의사소통 이성’이라는 것이다.

 

상대를 인정하는 일은 상대를 존중할 때 가능하다. 도구적 이성에서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기만책을 쓸 수도 있으나 의사소통 이성에서는 상대를 이해시키고 승인을 얻어내야 한다. 이에 하바마스 3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첫째 참가자와 같은 언어수준을 가진다. 시민과 이야기할 때는 시민 수준에 맞추어야 한다.

둘째 사실로서 진실이라고 믿을 것만 이야기한다.

셋째 모든 당사자가 대등한 입장이 된다.

 

하바머스의 의사소통 행위의 특징은 논의하는 것에 따라 서로 생각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숙의(熟議)를 하게 되고 이를 기초로 ‘숙의 민주주의’를 제청하게 된다. 합의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것이다.(참고 : 소천인지-小川仁志 ‘철학용어사전, SBceative, 2019)

 

 

김광옥 수원대학교 명예교수 kokim9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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