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검계!
이름만 봐도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가? 오늘날의 조직폭력배와 유사한 검계는 도성 안팎의 사람들을 벌벌 떨게 만든 조선 후기의 비밀 폭력조직으로, 양반 세력가의 자제들도 많이 가담해 온갖 나쁜 일을 저지르곤 했지만, 그 누구도 쉽사리 손을 대지 못했다.
그러나 포도대장 장붕익에게는 어림도 없었다. 장붕익은 26살 때 무과에 급제한 뒤 조선 영조 때, 오늘날의 경찰청장 격인 포도대장으로 활약하며 검계를 일망타진했다.
그는 전조선 후기 유명한 포도대장 집안이었던 인동 장씨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기운이 넘치고, 작은 일에 얽매이거나 남에게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 장하현은 숙종 때, 장붕익은 영조 때, 손자 장지항은 영ㆍ정조 때 각각 포도대장을 지냈으니 가히 포도대장 명문가라 할 만했다.
이 책 《포도대장 장붕익 검계를 소탕하다》은 장붕익이 1725년~1735년 포도대장으로 있던 시절, 포도청에서 실제로 벌어졌거나 일어났을 법한 사건을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춰 재구성한 책이다. 장 대장의 참모 격인 김 종사관, 특별 대원인 이 포교와 팔봉, 남이, 막동이 등이 등장해 각종 범죄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조선 생활사 가운데서도 포도청과 관련한 내용은 읽을 기회가 별로 없는 만큼,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포도청의 이모저모를 정리해보았다.
# 포도청에는 어떤 사람들이 일했을까?
포도청의 우두머리는 ‘포도대장’이다. 포도대장은 지금의 서울 부시장 격인 한성좌윤이나 한성우윤 가운데 임명했다. 포도대장 밑에는 사건을 조사하거나 임금에게 올릴 문서를 작성하는 ‘종사관’과 더불어 말단 포도군사(포졸)를 거느리고 순찰을 도는 ‘포교’가 있었다. 참, 여자 경찰도 있었다! 잘 알려진 사극 ‘다모’의 이름에서 보듯, 조선시대 여자 경찰은 ‘다모’라 불렸다. 다모는 주로 여성이 연루된 범죄를 수사했다.
# 지금의 ‘체포영장’ 같은 게 있었을까?
그렇다. 보통 포교들은 ‘통부’라는 신분증을 꼭 가지고 다녔다. 단단한 나무조각인 통부는 중간에 포도대장의 서명을 새기고 반으로 잘라서 한쪽은 포교가, 다른 한쪽은 포도대장이 갖고 있었다. 이 통부는 범인을 잡을 때 내보였는데, 평민을 잡을 때만 쓰고 양반을 잡을 때는 쓰지 못했다.
그러나 그냥 통부가 아닌, 대궐 안 임금 호위 관청인 선전관청에서 발급해 준 ‘자주 통부’를 쓰면 양반을 수색할 때도 쓸 수 있었다. 포교들은 이 ‘자주 통부’를 한번 받으면 반납하지 않고 계속 사용하는 기지(?)를 발휘했다.
# 조선시대 감옥은 어땠을까?
조선시대 감옥은 ‘전옥서’라 했다. 지금처럼 징역형이 없었던 그 당시 감옥은 죄인이 잡혀서 어떤 벌을 받을지 정해지기 전에 임시로 갇혀있는 곳으로 지금으로 말하면 구치소 격이었다. 전옥서는 입구의 솟을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에는 옥졸들이 사무를 보거나 머무는 사령청이 있고, 왼쪽에는 죄수들이 식사를 준비하는 부엌이 있었다.
더 안쪽으로 가면 높은 담장으로 둥글게 쌓은 원옥이 여자 옥, 남자 옥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특이한 점은 매일 먹을 밥을 주지 않아 죄수들 스스로 밥을 해 먹거나 가족들이 먹을 것을 가져다주어야 했다는 점이다. 예나 지금이나 요리실력은 필수다(!)
#조선에도 조직폭력배가 있었을까?
물론이다. 조선의 조직폭력단, ‘검계’는 주로 고관 댁에서 일하는 노비나 청지기, 관아의 하급 관리, 양반집 자제들이 모여 결성했다. 검계는 몸에 칼자국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었고, 주로 낮에 자고 밤에 돌아다녔으며, 희한하게도 맑은 날에는 나막신을, 비 오는 날에는 가죽신을 신었다.
삿갓을 눌러쓰고 그 위에 구멍을 뚫어 사람들을 내다보았기에 그들의 얼굴을 정확하게 본 사람이 별로 없었다. 또 품속에 날카로운 칼을 가지고 다니며 아무 때나 칼부림을 했다. 이들의 악랄한 만행에 당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양반 세력가의 자제가 꽤 많이 포함되어 제압하기가 쉽지 않았다.
물론 조선에서도 범죄자들과 경찰 사이의 밀고 밀리는 싸움은 치열했다. 그러나 과학수사가 발달한 시대가 아니었기에 범인의 자백에 의존할 때가 많았고, 자백을 받으려 참혹한 고문이 가해진 것은 지금 생각해도 안타깝다. 그래도 장붕익 같은 명 포도대장이 있었던 시절에는 조선 백성들도 조금이나마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 책의 단점은 각 사건 구성이 그다지 치밀하지 못하고 조금 어설픈 느낌이 든다는 데 있다. 더욱이 이 책의 더 큰 문제는 사실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책에서는 장붕익이 조선 영조 때, 53살에 뒤늦게 무과에 급제해 80살에 오늘날의 경찰청장 격인 포도대장으로 부임한 그가 세상을 떠나는 90살까지 포도대장으로 활약했다고 썼다. 하지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 찾아보면 장붕익은 죽은 때가 1735년으로 만 나이로는 60살에 불과하다.
더 명확한 사실은 《영조실록》 40권 영조 11년 3월 13일 기록 “훈련대장 장붕익의 졸기”에 보아도 장붕익이 세상을 뜬 날은 60살 되던 해인 1735년 3월 13일이 분명하지 않은가? 60살만 돼도 벼슬아치에서 물러나던 조선시대, 90살까지 포도대장으로 활약했다는 기술에 아연실색할 뿐이다. 대형출판사 ‘사계절’이 낸 책으로 단순한 오탈자나 잘못이 아닌 사실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펴낸 것은 큰 잘못임이 분명하다.
다만, 이 책은 흔치 않은 포도청의 일상을 재미있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일독할 값어치가 있다. 특히 드라마 ‘다모’를 재밌게 봤던 시청자에게는 더욱 추천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