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어느덧 해는 뉘엿
산 그림자 내려온다
마음 둔 청춘 남녀
스리슬쩍 다가서고
저만치 횃불 그림자
사람들은 너울너울
거, 앞에 키 큰 양반
고개 좀 숙여보소
섬에 나고 섬에 자라
이런 구경 처음이오
막걸리 동이 째 내온
객주집 인심도 좋아
어디서 두런두런
쇠판 돈 털렸다네
먼 곳 악다구니
괭쇠 소리에 잦아들고
춤판은 무르익는데
돌아갈 집은 멀다

▲ 춤판은 무르익는데 돌아갈 집은 멀다 (그림 오희선 작가)
<해설>
드디어 제4과장 승무과장까지 달려왔다. 이쯤이면 오광대 구경도 슬슬 절정으로 치달을 준비를 한다. 이 시는 오광대놀이를 쓴 것이라기보다 광대놀이 벌어지는 장마당 풍경을 노래한 것이다. 처음 시작할 때는 햇볕이 제법 따가울 때였는데 이제 뉘엿뉘엿 해가 기운다.
오일장은 파장이지만 놀이마당은 이제부터다. 제 물건 팔기에 여념 없던 장꾼들도 이곳에 눈길 주고, 한가득 한가위 대목장을 본 사람들도 이 판에 몰려든다. 제법 술맛도 나고 흥타령도 구성지다. 으레 이 바닥에선 청춘남녀 간 스리슬쩍 사랑의 불꽃이 싹트기도 한다. 객주집 전등 켜지고, 싸움도 일어나고, “거, 앞에 키 큰 양반 / 고개 좀 숙여보소” 하며 본격적인 놀이 즐길 준비를 한다.
문제는 꼭 이즈음에 사달이 나기도 한다. 군중 속에서 “소 판 돈 털렸다!”라고 외치는 사람, 이제 길도 어두운데 집에 가자고 조르는 사람 등등 장엔 물건도 각양각색이지만 사람도 가지가지 빛깔로 어우러진다. 오늘 장 구경 한번 잘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