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만리, 훈민정음의 반면교사(反面敎師) ①

2022.10.13 11:21:07

중국에 대한 철저한 사대사상을 가진 당시의 지식인들
[‘세종의 길’ 함께 걷기 102]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학교 명예교수]  세종 시대의 인물을 살피고 있는데 한글날이 들어있는 10월이다. 훈민정음 창제의 반대를 외친 최만리를 끄집어내 조명해보자. 결코 인간 최만리가 아닌 역사 속의 최만리라는 인물의 주장에 대해 생각해 보는 일이다.

 

최만리(崔萬理, ?∼1445)는 세종의 핵심 관서인 집현전에서 약 25년을 근무해 실질적인 장관인 부제학에 오르고 청백리로도 뽑혔다는 사실로만 보아도 높은 평가를 받을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인 한 민족의 문자 결정에서는 바르지 못한 주장을 내세운 것이라 할 것이다. 왜 그럴까? 지구상에 존재하는 여러 인종이나 민족은 한 예로 언어가 영어나 러시아어로 통일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고유의 문화[방식]를 가지고 공존하여야 한다는 법칙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훈민정음이 백성을 위한 것임을 거꾸로 밝혀준 반면교사로서의 최만리의 역할이 있 있다. 최만리의 주장을 통해 당시 그 시대 지성인의 사상[생각]과 그 한계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음과 같은 점에 주목해 읽어보자.

 

㉮ 당대 지식인의 기본 사상, ㉯ 그 지식을 가지고 보는 세상에 대한 인식, ㉰ 중국에 대한 인식, ㉱ 임금과 신하의 관점의 차이, ㉲ 역사 속의 시대정신 등이다.

 

훈민정음은 크게 세종의 백성사랑 정신과 연결되어 있다. 훈민정음 창제와 언문 책자 발행의 시기적 개요를 보자.

 

· 세종 14년 : ‘모름지기 백성이 금법(禁法)을 알게 하여 두려워하게 함이 옳겠다. <삼강행실도>를 통해 임금과 신하사이, 아버지와 자식 사이, 부부 사이의 넘지 말아야 할 선 등 모범적인 사례 105가지 그림과 글[한문]로 해설.’ (《세종실록》 14/11/7)

 

· 25년 12월 30 : 언문 28자 지어. 훈민정음의 창제.

 

· 26년 초수리 온천 행: 훈민정음 보완 작업.

 

· 27년 :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조선왕조의 창업을 노래함.

 

· 28년 9월 상순 : 훈민정음 반포.

 

· 28년 : 《훈민정음 해례본》

 

· 29년(1447)에 《동국정운(東國正韻)》이 편찬 끝났는데, 이 책은 곧 《운회거요(韻會擧要)》 국역 사업의 연장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 세종 말과 세조 초 사이 : 언해본.

 

· 세종 31년 : <월인천강지곡>. 한글 금속활자로 지은 불교 찬가.

 

· 1910년대 : 주시경 선생 중심. 훈민정음을 한글로 부르기로.

 

· 1989. 6.21 :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맹퇴치상 제정.

 

· 1997. 1 : 훈민정음 세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훈민정음 반포서문

 

세종 28년 9월 29일 훈민정음 반포를 선언한다. 본문과 그 뜻을 보자.

 

나랏〮말〯ᄊᆞ미〮 中듀ᇰ國귁〮에〮달아 文문字ᄍᆞᆼ〮와〮로〮서르ᄉᆞᄆᆞᆺ디〮아니〮ᄒᆞᆯᄊᆡ : 異乎(이호)/ 자주

이〮런젼ᄎᆞ〮로〮어린〮百ᄇᆡᆨ〮姓셔ᇰ〮이〮니르고〮져〮호ᇙ〮배〮이셔〮도〮 : 欲言(욕언)/ 수단

ᄆᆞᄎᆞᆷ〮내〯제ᄠᅳ〮들〮시러〮펴디〮몯〯ᄒᆞᇙ노〮미〮하니〮라〮 : 不通(불통)/민본

내〮이〮ᄅᆞᆯ〮 윙〮ᄒᆞ〮야〮어〯엿비〮너겨〮 새〮로〮스〮믈〮여듧〮字ᄍᆞᆼ〮ᄅᆞᆯ〮ᄆᆡᇰᄀᆞ〮노니 〮 : 新制(신제)/ 變易(변역)

사〯ᄅᆞᆷ마〯다〮ᄒᆡ〯ᅇᅧ〮수〯ᄫᅵ〮니겨〮날〮로〮ᄡᅮ〮메〮便뼌安ᅙᅡᆫ킈〮ᄒᆞ고〮져〮ᄒᆞᇙᄯᆞᄅᆞ미〮니라 : 편어일용/쉬움

 

훈민정음 반포 서문만 보더라도 세종의 정치사상 또는 이념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자주, 백성사람, 새로운 제도, 편의 등의 통치 이념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세종의 사상이 압축된 선언이라 할 것이다.

 

최만리 등이 언문 제작의 부당함을 아뢰다.

 

 

훈민정음을 반포한 몇 달 뒤 세종 26년 2월 20일(1444) (이하 현대어로 풀어쓴다)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 등이 상소하기를, “언문(諺文)을 제작하신 것이 지극히 신묘하와 만물을 창조하시오나, 오히려 의심되는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전제를 펼친다. 그리고 여섯 가지를 나열한다. (모두 중요하여 상소문은 전부 1이다.)

 

1. (하나) 우리 조선은 조종 때부터 내려오면서 지성스럽게 대국(大國)을 섬기어 한결같이 중화(中華)의 제도를 준행(遵行)하였는데, 이제 글을 같이 하고 법도를 같이하는 데 언문을 창작하신 것은 보고 듣기에 놀랍습니다. 말하기를, ‘언문은 모두 옛 글자를 본뜬 것이고 새로 된 글자가 아니라.’ 하지만, 글자의 형상은 비록 옛날의 전문(篆文)을 모방하였을지라도 음을 쓰고 글자를 합하는 것은 모두 옛것에 반대되니 실로 의거할 데가 없사옵니다. 만일 중국에라도 흘러 들어가서 혹시라도 비난하여 말하는 자가 있사오면, 어찌 대국을 섬기고 중화를 사모하는 데에 부끄러움이 없사오리까?

 

의견 : ㉮ 음운에 대한 근거가 약하다, ㉯ 중국이 알까 두렵다. 철저한 중국 섬기기로 사대사상의 극치다. 군사적인 면에서의 사대는 국제질서를 위해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생활이나 문화에 있어서까지 사대가 확대된다는 것은 영혼 없는 나라가 되고 백성이 될 것이다.

 

1. (둘) 예로부터 구주(九州, 중국전토)의 안에 풍토는 비록 다르오나 오직 몽고(蒙古)ㆍ서하(西夏, 11세기에 건립되어 13세기 초까지 번영을 누린 티베트계 탕구트족의 왕국)ㆍ여진(女眞)ㆍ일본(日本)과 서여진의 종류가 각기 그 글자가 있으되, 이는 모두 오랑캐의 일입니다. 옛글에 말하기를, ‘중국으로 오랑캐를 변화시킨다.’ 하였고, 중국이 오랑캐로 변한다는 것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 이제 따로 언문을 만드는 것은 중국을 버리고 스스로 오랑캐과 같아지려는 것으로서, ... 어찌 문명의 큰 잘못이 아니오리까.

 

의견 : 가) 역시 중국 사대사상이고 나) 다른 글자를 가지면 민족이 이류가 된다는 주장이다. 글자를 만든다는 것의 기본 취지를 이리도 이해 못하는 학자의 마음이 안타깝다.

 

 

1. (셋) 신라 설총(薛聰)의 이두(吏讀)는 비록 야비한 속된 말이오나, 모두 중국에서 통행하는 글자를 빌어서 토씨에 쓰였기에, 이두를 쓰는 자는 모름지기 문자에 바탕을 둬야 능히 의사를 통하게 되는 때문에, 이두로 인하여 문자를 알게 되는 자가 자못 많사오니, 또한 학문을 일으키는 데에 한 도움이 되었습니다.

 

‘언문을 시행하여 임시방편을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더디고 느릴지라도 중국에서 통용하는 문자를 습득하여 길고 오랜 계책을 삼는 것만 같지 못하다.’라고 할 것입니다. .., 어찌 따로 야비하고 상스러운 무익한 글자를 창조하시나이까? 만약에 언문을 시행하오면 관리된 자가 오로지... 언문만을 습득하고 학문하는 문자를 돌보지 않아서 관리가 둘로 나뉠 것이옵니다. 27자의 언문으로도 족히 세상에 입신(立身)할 수 있다고 할 것이오니, 무엇 때문에 힘들여 성리학(性理學)을 연구하려 하겠습니까?

 

이렇게 되오면 수십 년 후뒤에는 문자를 아는 자가 반드시 적어져서, ..언문에만 능숙한들 장차 무엇에 쓸 것이옵니까. 우리나라에서 오래 쌓아 내려온 학문을 숭상함의 교화가 점차로 땅을 쓸어버린 듯이 없어질까 두렵습니다.

 

... 옛것을 싫어하고 새것을 좋아하는 것은 고금에 통한 우환이온데, 이번의 언문은 새롭고 기이한 한 가지 기예(技藝)에 지나지 못한 것으로서, 학문에 방해됨이 있고 정치에 유익함이 없습니다.

 

의견 : ㉮ 우리 것 깎아내리기, ㉯ 이두는 약간의 효용성은 있었으나 한문에 비해 끝내 부족하다는 논리를 편다. ㉰ 이번 언문은 학문에 방해됨이 있고 정치에 유익함이 없다. 이는 글자가 담는 내용이 문제이지 글과 내용의 차이를 모르는 듯하다. ㉱ 세종의 문자로 백성이 가질 기술과 지식의 함양 같은 미래를 보는 눈이 없는 것이다.

 

최만리의 한계

 

최만리의 상소문 6개 조항 가운데 먼저 3개를 보았는데 여기까지 나타난 최만리와 당시 지식인의 정신문화는

 

㉮ 중국에 대한 철저한 사대사상이 있었다. 사대도 그 범위가 있겠지만 정치, 외교에서 국제 질서의 하나로 관례를 지켜가며 예의와 질서를 지키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문화, 정신 의식까지 중국에 의존하려 한 것은 사대가 아니고 정신적 종속이라고 할 것이다.

 

㉯ 문자, 언어의 특성을 모르는 자세인 듯하다. 각 나라가 다른 언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지역에 따라 사람들이 밥, 양고기, 밀을 먹는 것처럼 살아가는 것은 같으나 그 수단에서는 다르다는 것을 무시하는 의견이라 할 수 있다. 다른 글자를 가지면 민족이 이류가 된다는 주장은 언어ㆍ문자에 대한 이해 부족이라 하겠다.

 

㉰ 임금과 신하는 백성과 나라의 앞날을 보는 눈높이에 차이가 있다.

 

당시 성리학에 매몰되어 있는 지식인의 융통성 없음과 시대를 읽는 정신의 한계를 절감하게 된다.(최만리-계속)

 

 

김광옥 수원대학교 명예교수 kokim9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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