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강도 주춤주춤 잰걸음을 치는 저녁

2022.10.22 11:56:22

정용국, <아득하다>
[우리문화신문과 함께 하는 시마을 110]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아득하다

 

                                               - 정용국

 

   “모롱이 개암 열매 제풀에 떨어지고

    상강도 주춤주춤 잰걸음을 치는 저녁

    부뚜막 개다리소반엔 시래깃국 두 그릇

    노부부 살강살강 그릇을 비우는 사이

    빈 마을 휘돌아 온 살가운 바람 한 올

    홍적세(洪績世) 까만 시간을 되짚고 돌아왔다“

 

내일은 24절기 가운데 열여덟째 절기 ‘상강(霜降)’이다. ‘상강’은 ‘서리가 내린다.’라는 뜻으로 벌써 하루해 길이는 노루꼬리처럼 뭉텅 짧아졌으며, 이때는 무서리가 하얗게 내리고, 만산홍엽(滿山紅葉) 단풍의 계절이다. 1961년 10월 24일 치 동아일보에 보면 “누렇게 시든 가로수 잎들이 포장한 길 위에 뒹굴고, 온기 없는 석양이 빌딩 창문에 길게 비치면 가을도 고비를 넘긴다.”라며 상강을 이야기한다.

 

 

예전 농부들은 다 익은 호박을 거둘 때 아무리 급해도 반드시 상강을 지나 첫서리를 한 번 맞히고 나서 땄다고 한다. 그것은 서리를 맞혀야 겨우내 썩지 않고 보존되기 때문이다. 또 국화차는 서리를 맞힌 꽃잎이어야 향이 진하다.

 

여기 정용국 시인은 그의 시 <아득하다>에서 “노부부 살강살강 그릇을 비우는 사이 / 빈 마을 휘돌아 온 살가운 바람 한 올 / 홍적세(洪績世) 까만 시간을 되짚고 돌아왔다”라고 노래한다. 얼굴에 주름이 깊게 패인 노부부는 개다리소반에 놓인 그저 소박한 시래깃국을 비우고 있다. ‘홍적세’란 빙하기를 이름하는 말이 아니던가?

 

그 빙하기의 길고 어두운, 까만 시간을 되짚고 돌아온 바람이란 표현이 재미나다. 고통과 고뇌를 깊게 겪어보고 이겨낸 노부부에게 있어서는 홍적세(洪績世)를 되짚고 돌아온 바람마저도 넉넉하고 따뜻하다. 인생에서 노부부란 맛난 호박죽을 쑬수 있는 늙은호박이요, 진한 가을 향기를 선사하는 가을 국화 같은 모습이 아닐까?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김영조>

 

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pine9969@hanmail.net
Copyright @2013 우리문화신문 Corp. All rights reserved.

서울시 영등포구 영신로 32. 그린오피스텔 306호 | 대표전화 : 02-733-5027 | 팩스 : 02-733-5028 발행·편집인 : 김영조 | 언론사 등록번호 : 서울 아03923 등록일자 : 2015년 | 사업자등록번호 : 163-10-00275 Copyright © 2013 우리문화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ine996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