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국의 가을

2022.10.26 12:48:27

수국, 그 자태만을 기억하며 자연 속으로 보내주자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70]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이미 많은 나뭇잎이 옷을 갈아입고 어디론가 부지런히 가고 있다. 10월도 마지막 주로 접어들자 곳곳의 단풍이 화려하게 물들어 눈과 마음을 취하게 한다. 마치 이들 단풍이 곧 멀리 떠날 것이라는 생각 대신에, 영원히 우리 주위에 머물어줄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드는 느낌이다. 그만큼 서울 시내 어디나 수목이 많아져 곳곳에 단풍이 황홀하게 물들어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며칠 전 상강이란 계절의 변환점을 지났기에 이들은 곧 우리 곁을 떠날 것임을 부정할 수가 없다.

 

 

가을의 서글픔을 말없이 대변하는 것으로 수국이 있다.

 

지난 5월부터 서서히 피기 시작해 청초하면서도 화려한 용모를 자랑하던 수국이 어느 틈엔가 색깔이 변해가기 시작해 이제는 완연히 누런 갈색으로 변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젊은 날의 그 기품을 생각하면 볼품이 없어진 얼굴이 불쌍해 보이는 것은, 모든 생명이 걸어가는 길이기에 새삼 서러워할 일은 아니라 하더라도, 쓸쓸한 마음이 드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기억하는가? 5월 말 시작된 푸릇푸릇한 꽃의 잔치를?

 

 

 

 

 

수국이란 중국 이름 수구(繡球) 또는 수국(水菊)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보며, 옛 문헌에는 자양화(紫陽花)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높이는 1m 정도인데, 잎은 마주 달리고 두꺼우며 난형 또는 넓은 난형이고 윤기가 있는 짙은 녹색이다. 길이 7∼15㎝, 너비 5∼10㎝로서 털이 없고 끝이 뾰족하며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관상용으로 흔히 가꾸고 있는데, 특히 절 경내에 많이 심고 있다. 중국에서 들어온 것이라고 보며 예로부터 재배했다.

 

 

 

 

기도가 잘 안 되는

여름 오후

수국이 가득한 꽃밭에서

더위를 식히네​

 

꽃잎마다

하늘이 보이고

구름이 흐르고

잎새마다

물 흐르는 소리​

 

각박한 세상에도

서로 가까이 손 내밀며

원을 이루어 하나 되는 꽃

 

혼자서 여름을 앓던

내 안에도 오늘은

푸르디 푸른

한 다발의 희망이 피네​

 

수국처럼 둥근 웃음

내 이웃들의 웃음이

꽃무더기로 쏟아지네

 

                         ... 이해인 '수국을 보며'

 

우리 아파트의 정원에도 많이 심어져 그동안 눈을 즐겁게 했던 이 꽃이 점차 색깔이 변하고 시드는 것을 보는 것은 즐거움이었다가 괴로움이었다. 꽃이 피기 시작한 초기의 수국은 녹색이 약간 들어간 흰 꽃이었다가 점차로 밝은 청색으로 변하여 나중엔 붉은 기운이 도는 자색으로 바뀐다.

 

토양이 강한 산성일 때는 청색을 많이 띠게 되고, 알칼리 토양에서는 붉은색을 띠는 재미있는 생리적 특성을 갖는다. 그래서 토양에 첨가제를 넣어 꽃 색을 원하는 색으로 바꿀 수도 있고, 꽃잎처럼 보이는 부분이 사실상 꽃받침이라서 암술과 수술이 꽃 속에 없다. 반음지 식물로 비옥하면서도 습기가 많은 곳을 좋아하고 이런 곳에서는 땅에서부터 여러 개의 줄기가 나와 자연스럽게 보기 좋은 수형을 이루어 커다란 꽃이 피게 된다.

 

 

 

 

수국과 비슷한 특성을 갖는 수종으로는 산수국이나 탐라수국이 있는데, 우리나라 향토 수종으로서 초여름에 산을 찾는 사람들이 황홀해하는 꽃나무다. 다만 산수국이나 탐라수국은 일반 사람들이 구별하기 쉽지 않게 꽃이나 나무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이들은 남보라색으로 아름다울 뿐 아니라 꽃 가장자리는 수국처럼 암술과 수술이 없는 무성화가 피고, 안쪽으로는 수술과 암술을 완벽하게 갖춘 결실 가능한 작은 꽃들이 피는 것이 수국과는 다르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이 그런 색깔의 차이를 놓고, 수국이냐 아니냐 헷갈리기도 한다. 며칠 전 한 절에 갔을 때 구순의 부모님도 누렇게 변한 수국을 보며 수국이냐 아니냐 논쟁을 하시다가 직접 가보기도 하는 촌극이 있었다. 그럴 때 내가 수국이라고 강하게 말씀드리니 그래도 고개를 저으셨는데 그럴 정도로 변화가 많은 꽃이다. 그런 멋진 수국이 이제 겨울로 접어들면서 윗부분 또는 지상부가 서서히 말라가는 것이다. 곧 전부 말라서 죽을 것인데 그러한 변화를 하면서도 의연하게 꼿꼿이 서 있는 모습이 의연하기도 하고 처연하기도 한 것이다.

 

 

 

'우리 생활 속의 나무'라는 글에서 정연관 씨가 지적한 대로 수국은 마치 초본류와 같이 보잘것없는 나무지만 여름날 더위를 식혀 줄 만한 시원스럽고 아름다운 꽃으로 우리를 즐겁게 해주고 이제, 꽃잎이 다 마르고 떨어지면 약재로도 쓰인다고 하니 우리 곁에 꼭 있어야 할 소중한 나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수국의 모습에서, 사철을 살아가는 식물은 생명력을 읽게 되는 것이, 모든 피조물이라는 것이 태어나면서부터 한창 성장을 해서 아름답게 자신을 드러내다가 조용히 결실과 저장으로 이어지는 존재라는 것을 확인시키며, 그 윤회의 과정을 통해 대자연의 큰 마음을 읽으라는 것이다.

 

白露變淸霜 흰 이슬이 찬 서리로 변하는 계절

江潭摧衆芳 강 언덕 뭇 방초(芳草)들 꺾여 쓰러지네

風塵老騏驥 풍진 세상 천리마들 하릴없이 늙어가고

矰弋到鸞凰 화살 맞아 떨어지는 난조(鸞鳥)와 봉황(鳳凰)

 

                                              .. 장유(張維. 1587∼1638)

 

이제 서리가 내리는 계절을 지나며 모든 꽃과 일이 말라서 자연으로 돌아갈 수국에 대해 우리는 그 자태만을 기억하며 자연 속으로 보내주자. 서리가 내리고 찬 바람이 불면 우리는 수국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꽃을 보내주어야 할 시간을 맞는다. 그러나 그것은 누구처럼 한탄할 일만은 아니다. 그 속에서 깨달음을 얻을 일이다. 자연은 그렇게 늘 우리에게 성찰의 고마움을 제공하고 있다.

 

 

이동식 인문탐험가 ld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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