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그 겨울의 시
- 박노해
문풍지 우는 겨울밤이면
윗목 물그릇에 살얼음이 어는데
할머니는 이불 속에서
어린 나를 품어 안고
몇 번이고 혼잣말로 중얼거리시네
오늘 밤 장터의 거지들은 괜찮을랑가
소금창고 옆 문둥이는 얼어 죽지 않을랑가
뒷산에 노루, 토끼들은 굶어 죽지 않을랑가
아 나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낭송을 들으며 잠이 들곤 했었네
찬바람아 잠들어라
해야 해야 어서 떠라
한겨울 얇은 이불에도 추운 줄 모르고
왠지 슬픈 노래 속에 눈물을 훔치다가
눈산의 새끼노루처럼 잠이 들곤 했었네
우리 겨레는 더불어 사는 일에 익숙했다. 전해오는 얘기로는 예부터 가난한 사람이 양식이 떨어지면 새벽에 부잣집 문앞을 말끔히 쓸었다. 그러면 그 집 안주인이 아침에 일어나서 이를 보고 하인에게 “뉘 집 빗질 자국인가?”하고 물었다. 그런 다음 말없이 양식으로 쓸 쌀이나 보리를 하인을 시켜서 전해줬다는 얘기가 전한다. 그런가 하면 보릿고개에 양식이 떨어진 집의 아낙들은 산나물을 뜯어다가 잘 사는 집의 마당에 무작정 부려놓는다. 그러면 그 부잣집 안주인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곡식이나 소금ㆍ된장 따위를 이들에게 주었다.
물론 부잣집에서 마당을 쓸라고 한 적도 없고, 산나물을 캐오라고 한 적도 없었다. 그리고 쌀이나 보리를 건네주는 것은 마당을 쓸거나 나물을 캐온 데 대한 보수나 대가가 아니라 부자들이 가난한 이들을 돌볼 줄 아는 따스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를 위해 부자들은 서로 약속이나 한 듯 가을에 곡식을 거둬들이면 “농곡(農穀)”이라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곡식을 따로 비축해 놓았다.
그밖에 까치밥 남기기, 고수레 뿌리기, 입춘공덕행(입춘에 아무도 몰래 좋은 일 하기), 담치기(어려운 이웃의 담 너머로 곡식을 던져 넣는 일), 이레놀음(쌀을 성의껏 거두어 먹거리와 술을 마련하여 마을 어른들께 드리고 어려운 이웃과 함께 나누는 풍속) 등 아름다운 풍속과 함께 이웃과 더불어 살았던 우리 겨레였다. 여기 박노해 시인은 그의 시 <그 겨울의 시>에서 할머니가 자기를 품어 안고 “오늘 밤 장터의 거지들은 괜찮을랑가 / 소금창고 옆 문둥이는 얼어 죽지 않을랑가 / 뒷산에 노루, 토끼들은 굶어 죽지 않을랑가”라고 중얼거리며 이웃을 걱정했다고 한다. 박 시인은 이를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낭송이라고 노래한다.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김영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