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치욕스러운 역사입니다만, 명성황후는 일제의 흉계에 의해 무참히 죽어간 조선의 국모입니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 일제는 조선을 강제 병합했고 식민지로 만들었기 때문에 명성황후 유물은 남은 게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2010년 10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펴낸 《명성황후 한글편지와 조선왕실의 시전지》를 보면 명성황후가 쓴 많은 한글편지와 아름다운 시전지(시나 편지를 쓰는 종이)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여기 실린 고려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이기대 학술연구 교수 글에 따르면 현재까지 찾아진 명성황후 편지는 모두 134점 정도이며 이 편지글은 오늘날 귀한 유물입니다.
![명성황후가 시전지에 쓴 한글 편지와 편지봉투(오른쪽)](http://www.koya-culture.com/data/photos/20230104/art_16746308589779_eb6015.jpg)
그동안 실물이 확인된 황실 여성 최초의 한글편지는 인목대비 김씨(선조 비) 것이 있으며, 이밖에 남아있는 것은 장렬왕후 조씨(인조 비), 인현왕후 민씨(숙종 비), 인선왕후 장씨(효종 비), 혜경궁 홍씨, 순명효황후 민씨(순종 비) 등이 쓴 편지가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당시 한문에 찌든 사대부가와는 달리 한글을 살려 편지를 썼고, 교지 글도 한글로 쓰는 등 글줄깨나 하던 학자들 대신 한글을 사랑하였으며 이것은 그동안 한글 연구와 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명성황후 한글편지와 조선왕실의 시전지》에 소개된 편지를 보면 명성황후의 심정이 잘 드러나며, 몸이 아픈 것을 하소연하는 내용도 있습니다. 아마도 명성황후는 이 편지를 받던 조카 민영소를 상당히 신뢰했던 듯합니다. 이 책에 실린 아름다운 시전지들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슬기말틀(스마트폰)이란 문명의 이기 탓에 거의 편지를 잊고 지내지만 명성황후가 쓴 한글편지는 손으로 쓴 편지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