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경기 과천시에서 열린 제17회《전국 경기소리 경창대회》관련 이야기를 하였다. 출전자의 수가 많다고 해서 권위있는 대회는 아니라는 점, 과천대회의 본선은 경기 12좌창 중에서 긴 곡이든, 짧은 곡이든 1곡을 완창(完唱)하는 조건이란 점, 영예의 대상은 ‘적벽가’를 선택한 강원도 인제 출신의 장은숙 명창이 차지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본선 무대에 오른 경연자들의 수준 못지않게, 과천의 경창대회는 국악계의 모범적인 대회로 운영되어 왔다는 점이 객관적인 평가다. 그래서일까? 출전자들은 참여하고 싶은 대회로 평가하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당일 학생부의 전반적인 평가는 예년 수준이었지만, 명창부 경연자들의 기량수준은 매우 높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 가운데서도 이번 대회에서 장원에 오른 장은숙은 네 번째 도전 무대에서 드디어 그 뜻을 이루었기에 남다른 감회를 느끼고 있다. 당일 본선에서 그가 부른 곡은 ‘적벽가(赤壁歌)’였다. 이 곡은 12좌창 가운데서도 가장 길고 어려워 대부분이 피하는 소리인데, 그는 의외로 여유있는 호흡을 유지하면서 경기 좌창의 특징적 창법으로 그 긴소리를 깔끔하게 이어나갔다. 특히, 요성(搖聲, 떠는 소리)이나 퇴성(退聲, 흘러내리는 소리나 꺾는 소리), 추성(推聲, 밀어 올리는 소리) 등 적벽가에 나오는 특징적 표현들을 자연스럽게 표출하고 있어서 그 공력이 돋보였다.
그가 이름있는 대회에서 장원에 올라 경기소리의 명창이 된 배경은 대체 무엇일까? 대부분은 집안 식구들이나 일가친척, 또는 그가 살던 마을에 유명한 소리꾼이 있어 그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가 소리와 맺은 특별한 인연이란 무엇일까?
장은숙은 보통의 또래보다 조금 늦은 고등학교 시절에, 지금의 스승인 이유라 명창의 공연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그 이후 소리꾼의 길을 걷겠다는 결심을 굳혔다고 한다. 그의 기억이다.
“그때, 저의 스승 이유라 명창님이 곱디고운 하얀색 한복을 입고, 드라이아이스가 깔려있는 무대로 나와 경기제 ‘정선아리랑’을 부르시는데, 그 한(恨) 맺힌 목소리로 이어가는 가락들이 저의 가슴 속을 깊숙히 파고들었나 봐요. 그날 이후, 제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미 전통민요에 대한 새로운 싹이 자라나기 시작했지요. 다른 학생들보다는 다소 늦게 소리공부에 뛰어들었지만, 그만큼 더 큰 노력과 열정으로 소리에 매진하여 동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회고한다.
그는 조금만 마음이 불편해도 노래를 부르며 이를 해소하였고, 조금만 컨디션이 떨어져도 우리 민요로 마음을 달래는, 곧 소리와 얘기하고, 소리와 소통하며 지내왔다고 한다. 이제 그에게 있어 소리는 그 일부가 아니라, 전부가 되어버렸고, 그에게 있어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의 말을 듣고 있으면 장은숙처럼 진정으로 소리를 사랑하고 좋아하는 젊은이도 드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에게 몇 마디 물었다. 가장 좋아하는 소리를 소개한다면?
“제가 처음 접한 분야가 경기민요이기에 경기민요를 좋아하고 있지요. 그 가운데서도 소리의 짜임새와 곡의 완성도가 높은 ‘경기제 정선아리랑’을 즐겨 부릅니다.”
우리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정선아리랑’은 원래 강원도의 대표적인 소리로 ‘정선아라리’가 원래의 이름이다. 이 노래는 강원도 정선 지방에 전승되는 민요로 1971년, 강원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는데, ‘아라리’나 ‘아라리 타령’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비 기능요이지만, 모심기나 논밭에서 일할 때는 노동요로도 부른다.
또한, 이 노래는 강원도를 중심으로 그 주변에서 폭넓게 불리고 있으며, 이 지역을 아라리, 또는 메나리권이라고 부른다. 전라도 지역의 ‘진도아리랑’, 경상도 지역의 ‘밀양아리랑’과 함께 강원도의 ‘정선아리랑’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아리랑으로 널리 퍼져 있다.
이 ‘정선아라리’에 포함되는 노래들은 긴아라리, 자진아라리, 노랫말을 촘촘히 엮어나가는 엮음아라리가 있으며 그 노랫말은 800여 수 이상이 된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주된 내용은 아무래도 남녀의 사랑과 이별, 그리고 자신의 신세 한탄 등등 다양하며, 또한 부르는 사람에 의하여 즉흥적일 수도 있다. 노랫말의 형식은 2행이 한 짝을 이루는 장절 형식에 여음이 붙어 있는데, 그 대표적인 노랫말은 다음과 같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그런데 이 소리는 1946년 대한국악원 시절, 정선 공연 길에 김옥심이 처음 만들어 부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김옥심은 한정자, 장국심. 윤일지홍 등과 함께 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뒤, 원곡 그대로 부르지 않고, 경기민요의 창법이나 표현법으로 고쳐 부르기 시작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시켰는데, 세상에서는 이 노래를 일러 ‘경기제 정선아리랑’이라 구분지어 말하고 있다.
이 노래와 함께 장은숙이 강원소리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까닭은 그의 스승 이유라 명창과의 추억이 함께 담겨 있기에 그러하다. 그가 좋아하는 강원소리로는 여러 악곡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그의 고향 소리인 인제의 ‘숯가마 터 닦는 소리’와 ‘등치기 소리’를 꼽는다. 이 노래는 숯을 만들 때, 불렀던 소리로 느린 장단에서 빠른 장단으로 넘어갈 때, 흥과 신명을 맛보게 되는 소리다. 이 소리는 이유라의 <강원소리, 잃어버린 소리를 찿아서>라는 음반 1집에 수록되어 있다. (다음 주에 계속)